공급과잉 中철강, 저가 밀어내기… 세계시장 휘청[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2024. 9. 12.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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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침체에도 생산감축 미미
철강값 7년만 최저 “배춧값 수준”
가격 너무 낮아 관세장벽 안통해
한국도 中후판 반덤핑으로 제소

중국의 철강 공급 과잉이 전 세계를 덮쳤다. 저가 중국산 수출 공세에 남미 제철소가 문을 닫고, 철광석 가격 급락으로 원자재 시장마저 흔들린다. 2015∼2016년 ‘중국발 철강 쇼크’가 재연될 조짐이지만, 중국 부동산 경기가 수렁에 빠져 해결은 난망이다.

● 중국 철강가격 7년 만에 최저

“철강 가격이 배춧값으로 떨어졌다.” 최근 중국 내 철근 값이 t당 3000위안 수준까지 떨어지자 현지 언론에서 나오는 한탄이다. 배추 도매가격(kg당 약 3위안)과 맞먹기 때문이다. 중국 철강제품 가격은 201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 최고점(2021년 5월)과 비교하면 반 토막 났고, 올해 들어서만 25% 하락했다. 이달 초 중국 시장조사업체 마이스틸 조사에서 중국 철강사 99%는 “수익성이 없다”고 보고했다.

중국 철강산업 침체는 3년째. 2021년 말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의 채무불이행 선언을 시작으로 부동산 경기가 고꾸라진 게 원인이다. 새 건물이 올라가야 철강 수요가 생기는데, 자금난에 빠진 건설사가 새로 지어 올릴 여력이 없다. 쌓여 있는 막대한 미분양 물량을 터는 데만 몇 년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중국 신규 건설 착공은 2021년의 절반으로 줄었고, 올 상반기엔 24% 더 감소했다.

과거 철강산업의 공급과잉 위기를 해소한 건 중국의 대대적인 부동산 부양정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동산 시장이 위기의 진앙인 터라 철강 수요를 끌어올릴 마땅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 공급을 줄여야 할 텐데, 중국 철강사는 생산량 감축에 소극적이다. 상반기 중국 조강 생산량은 5억3000만 t. 전년보다 고작 1.1% 감소에 그쳤다. 가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규 공장이 많은 데다 과거 경험상 경쟁사가 문 닫을 때까지 버티는 게 상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구조조정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게 쌓인 중국산 철강제품이 바다 건너 해외 시장을 강타했다.

● 관세 장벽 뚫는 저가 공습

중국의 철강 수출은 올해 1억 t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이후 8년 만이다. 사진 출처 바오우그룹 홈페이지
7086만 t. 올해 1∼8월 중국이 해외로 수출한 철강제품 규모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6% 늘었고, 올해 말까지 1억 t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철강 수출이 1억 t을 넘어서는 건 2016년 이후 8년 만이다.

저가 중국산 철강의 공습이 시작되자 위기를 느낀 각국은 관세 장벽을 쌓기 바쁘다. 올해 들어 미국뿐 아니라 멕시코, 칠레, 브라질, 캐나다도 중국산 철강 관세를 대폭 올렸다. 베트남과 튀르키예 정부는 반덤핑 관세 부과를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한국도 현대제철이 산업통상자원부에 중국산 후판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한 상황이다.

하지만 관세로도 이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중국 내 철강 가격이 워낙 낮고 계속 떨어지기 때문이다. 위안화 약세가 이어지는 것도 중국 수출 경쟁력엔 유리하게 작용한다. 예컨대 열연 제품 가격은 중국에서 t당 3153위안(약 59만 원)으로 떨어졌지만 한국은 80만 원, 미국 690달러(약 92만 원), 일본은 10만7000엔(약 101만 원)으로 차이가 크다.

세계 2위 철강기업 아르셀로미탈은 지난달 실적발표에서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중국의 공격적인 수출”을 지적하며 “유럽과 미국 철강 가격이 모두 한계비용보다 낮아졌다”고 밝혔다. 칠레 철강기업 CAP는 1950년 설립된 칠레 최대 규모의 우아치파토 제철소를 이달 16일 폐쇄한다. 칠레 당국이 올해 4월 중국산 철강에 최대 33% 관세 적용을 결정했지만, 여전히 공정한 경쟁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 심상찮은 철광석 가격 급락

암울한 건 광산 업계도 마찬가지다. 10일 싱가포르거래소의 철광석 선물 가격은 t당 90.62달러. 올해 들어 30% 넘게 하락했고, 2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남미 제철소 문닫고… 철광석 가격 급락해 원자재 시장도 흔들

세계 덮친 저가 中철강

올 상반기만 해도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고로 가동을 멈추지 않은 중국 고객사가 철광석 주문을 늘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제철소가 적자에 시달리면서 항구에 쌓인 철광석 재고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강력한 부동산 부양책을 내놓을 줄 알았던 7월 중국 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 전회)는 소득 없이 끝났다. 중국 철강 소비의 3분의 1을 떠받치는 부동산 시장이 되살아날 거란 희망이 사라지면서 철광석 가격도 가파르게 떨어진다. 중국선물유한공사 장샤오다 애널리스트는 “철강 수요 개선의 조짐이 없어 철광석 가격 하락이 계속될 것”이라며 t당 600위안(약 84달러)을 내다봤다.

철광석 최대 수출국 호주는 비상이다. 지난달 짐 차머스 호주 재무장관은 철광석 가격이 장기적으로 t당 60달러로 떨어질 수 있다며 “연방 재정에 30억 호주달러(약 2조7000억 원)의 타격이 올 수 있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철강기업 바오우그룹의 후왕밍 회장의 발언도 비관적 전망에 힘을 싣는다. 그는 지난달 “혹독한 겨울은 우리 예상보다 더 길고, 더 춥고, 더 어려울 수 있다”며 “2008년, 2015년에 겪은 충격보다 더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5년엔 중국 철강제품 가격이 t당 1800위안대까지 떨어졌고 철광석 가격은 37달러를 찍었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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