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오디세이] 불교적 하루, 연기적 삶

경기일보 2024. 9. 1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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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 깨달음' 등 불교를 대표하는 많은 표현이 있지만 불교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이 두 표현과 업은 우리나라에서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다 보니 불교를 염세주의나 허무주의로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불교적'이라는 것은 자신의 삶을 '연기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연기를 보는 사람은 법을 볼 것이며, 법을 보는 사람은 연기를 볼 것이다'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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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감

‘중도, 깨달음’ 등 불교를 대표하는 많은 표현이 있지만 불교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의 불교는 수행과 더불어 다양한 사상과 기복적 요소까지 더해지며 더욱 복잡해졌다. 그렇기에 이러한 불교에 대한 물음에 가장 적절한 답은 아마 부처님이 깨달으신 ‘법(法)’일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법이란 무엇인가. 바로 ‘연기(緣起)’다. 연기법이라고도 하는데 ‘인과(因果)’에 대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법이다.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따른 결과가 생긴다’는 아주 간단한 법칙이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고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이 인과적 연기법에 대해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연기에는 ‘자업자득, 인과응보’라는 특별한 법칙이 있다. 자신이 지은 어떠한 원인은 업(業)이라는 결과가 돼 반드시 그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이 두 표현과 업은 우리나라에서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다 보니 불교를 염세주의나 허무주의로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법칙을 다르게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원인이 돼 다음의 결과가 되는 것이기에 지금 좋은 일을 하면 그것이 원인이 돼 좋은 결과가 반드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선물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업이 나쁜 것만이 아니라 선업과 악업의 두 종류가 있다고 하여 선업을 지으면 삼선도라는 좋은 곳에, 악업을 지으면 지옥을 포함한 삼악도에 태어난다고 한다. 즉, 선하고 올바른 삶을 산다면 그로 인해 좋은 결과가 생겨나 그 자신을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

‘불교적’이라는 것은 자신의 삶을 ‘연기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나의 모습은 어제를 비롯한 지난날의 내가 보내온 원인의 과정이다. 만약 지금이 행복하고 좋다면 지난날의 자신에게 감사해야 하고 만약 피로하고 힘들다면 지난날의 자신을 반성하고 그것을 수정하도록 정진해야 한다. 그리고 내일에 대한 기대와 꿈이 있다면 오늘의 이 하루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가깝게 살아야 한다. 그러면 이 하루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나에게 선업이라는 법의 힘을 만들어 뜯어보지 않은 선물을 전해줄 것이다.

‘연기를 보는 사람은 법을 볼 것이며, 법을 보는 사람은 연기를 볼 것이다’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있다. 잘 사는 법, 행복해지는 법의 첫 번째는 연기적 삶을 사는 것이다. 내 곁의 인연들과 화합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해 그 모든 것들과 행복해지기 위한 오늘을 산다면 내일은 반드시 행복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교적 삶의 실천이며 마음의 주인이 돼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다. 오늘은 어제의 이어짐이며 내일은 오늘의 이어짐이다. 이 시간 속에서 마음의 주인이 돼 자신의 하루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의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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