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기업 중심 복합시설 설계… GH ‘직주락학’의 도시 만든다 [지방기획]
금토동 일대 GH 등 공공기관 개발사업
첨단산업 분야 대상 자족시설 용지 분양
사업계획서 평가해 입주기업 공모 방식
글로벌 기업 유치 위한 환경 조성 방점
관련 유망학과 이전 광역 캠퍼스 기대
창업생태계·휴식 갖춘 ‘워라밸 도시’로
#1. 지난 1월 경기 성남시 판교글로벌비즈센터.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이곳에서 열린 ‘제3판교테크노밸리’(스타트업플래닛) 발표회에서 “제1·2판교테크노밸리와 함께 제3판교테크노밸리에 스타트업 천국의 심장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2. 제3판교가 관심을 끄는 진짜 이유는 새로운 판 짜기에 있다. 기존 개발의 틀을 과감히 깨고 앵커·등대 기업을 중심으로 도시설계에 나선 것이다.
2021년 첫 삽을 뜬 경기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제3판교 용지(공공주택지구)에선 경기주택도시공사(GH)와 경기도, 성남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들이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동쪽 1구역과 서쪽 2구역으로 나뉘는데, 1구역은 주로 LH가 자족시설 용지로 개발하고 2구역에는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선다. 주목할 곳은 2구역 동북부 경부고속도로 인접 지역의 GH 기업용 자족시설 용지이다. 이곳에는 GH가 구상하는 연면적 50만㎡ 규모의 스타트업플래닛이 들어선다. 스타트업과 앵커·등대 기업, 대학, 상가, 주거시설 등을 아우르는 복합시설로 ‘직주락학(職住樂學·사는 곳에서 일하고 즐기고 배운다)’의 가치를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
GH가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판교에서 본격적인 세 번째 테크노밸리 조성에 나선다. 판교테크노밸리의 성공 신화를 이어갈 제3판교테크노밸리 건설이 추진되면서 첨단 반도체 등 관련 기업들 사이에선 입주를 위한 물밑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GH는 첫 단추를 끼우기 위해 제3판교테크노밸리의 자족시설 용지 1만1900㎡에 대한 첫 분양 사업설명회를 11일 판교 글로벌비즈니스센터에서 열었다. 대상은 시스템반도체, 정보통신기술(ICT), 로봇, 인공지능, 게임 등 첨단산업 분야 기업들이다. GH는 9월에 사업자 설명회, 10월에는 용지 분양을 위한 공모를 진행한 뒤 연말까지 최종 사업자 선정을 마칠 예정이다. 선정된 사업자는 내년 1분기에 감정가격으로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다. 자족시설 용지는 기업 입주를 위한 땅으로, 신도시나 택지개발지구의 자족 기능을 높이기 위해 1995년 도입됐다.
GH와 함께 제3판교 사업을 추진하는 LH의 경우 자족 용지 공급에 ‘관례’가 된 추첨 매각 방식을 적용했으나 ‘벌떼입찰’이란 뒷말만 남겼다. 지난 6월 1100억여원짜리 부지(9747㎡)에 대한 추첨에는 입찰자 약 180명이 몰려 입찰 보증금만 약 9000억원을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한 시행사는 신청 자격이 법인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주어지는 점을 이용, 공동 시행사 임직원까지 동원해 당첨된 사실이 알려졌다. 한 투자회사는 당첨자에게 5000억원가량의 유동화 자금을 융통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에 GH는 추첨방식으로 민간에 매각하는 대신 사업계획서를 평가해 입주기업을 선발하는 공모 형식을 택했다. 제1·2판교테크노밸리를 보완해 글로벌 연구개발(R&D)특구를 완성하기 위한 노림수이다.
GH 관계자는 “추첨방식으로는 검증을 통해 유망 기업을 유치하는 게 어려워 공모 방식의 분양을 택했다”면서 “반도체와 로봇, 인공지능 등 선도기업 유치에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와 GH는 제3판교테크노밸리를 직주락학의 4가지 주제로 조성한다. 직(職)은 글로벌 기업 유치에 유리한 환경 조성에 방점이 찍혔다. 연면적 50만㎡ 가운데 시스템반도체와 AI 등과 관련된 앵커기업에 10만㎡(20%), 스타트업 및 연구소에 7만㎡(14%)를 각각 배정한다.
판교의 높은 집값 탓에 직장·주거가 분리된 청년들을 위해 7만5000㎡(15%)에는 공공기숙사 1000호를 공급한다. 주말이나 야간에 공동화 현상이 빚어지고, 사회초년생이 직주근접에 불편을 겪는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기업과 대학의 반응은 뜨겁다. GH의 분양 담당자는 “매출 2조원대 시스템반도체 업체, 매출 3000억원대 반도체 장비업체 등 20여곳이 추가 정보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도는 산업통상자원부와 공동으로 ‘판교 팹리스(반도체 설계·개발 전문회사) 집적단지’ 조성을 위해 관련 학과의 이전도 고려하고 있다. 대학이 들어서게 될 공간은 연면적의 10%(5만㎡)로 알려졌다. GH는 이곳에 2030년 개교를 목표로 대학생·대학원생 1000여명의 배움터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7일 열린 대학 대상 설명회에는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국외대, 아주대 등 14개 대학 관계자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도는 공모를 추진해 늦어도 11월까지 우선협상 대학교 선정 등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후 대학 이전설립계획 수립과 교육부 승인이 진행되며 2029년까지 GH가 시공을 마치면 첨단 학과들이 입주하게 된다.
이처럼 제3판교에 대학 유망 학과들이 광역 캠퍼스 형태의 대학촌을 이루면 대학 정원이 동결된 수도권에 영국 대학도시 케임브리지와 같은 의약·메모리칩 산학협력 단지 형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대학 운영에 드는 비용 일부는 GH가 자체 예산을 투입하기로 해 연구인력 공급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세용(사진) 경기주택도시공사(GH) 사장에게 제3판교테크노밸리(스타트업플래닛) 건설은 GH의 저력을 안팎에 알릴 좋은 기회이다.
김 사장은 11일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스타트업플래닛에서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과 인재를 양성하는 구조를 만드는 등 새로운 시도를 벌이겠다”고 말했다.
단발적 기업 유치에 그치지 않고 기업들이 서로 소통하며 혁신 성장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기업 유치를 위해 법인세 등 세제 혜택이나 주거 시설 지원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스타트업을 유치하기 위한 ‘당근책’으로 공공기숙사 조성을 꼽았다. 직주근접을 넘어선 직주일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제3판교에 구상 중인 스타트업플래닛은 혁신 주체들이 일하고 즐기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전용기숙사 1000호 외에 제3판교 공공주택 등이 일자리 연계형으로 공급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사장은 ‘스타트업플래닛의 디자인 당선작들이 미래도시를 연상시킨다’는 질문에는 “유수의 설계사무소들이 경쟁해 창의적 작품들을 내놓았고 이를 사업계획에 반영했다”면서 “연말쯤 3개의 당선작 가운데 하나를 최종 선택해 스타트업플래닛을 혁신과 기회의 공간으로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성남=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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