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고기 이어 면화까지… 실험실서 만든다

김민기 기자 2024. 9. 12.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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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그로운’ 영역 갈수록 확장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설립한 벤처캐피털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BEV)’는 탄소 저감, 재생에너지 같은 친환경 스타트업 투자를 집중적으로 한다. 그런데 BEV가 최근에 한 면화 재배 스타트업 ‘갈리’에 수백억원 투자를 해 주목받았다. 면화 재배는 엄청난 양의 물과 사람 노동력이 필요한 것으로 유명하다. 200여 년 전 미국 대표 산업이었던 면화 재배를 위해 수많은 아프리카인이 노예로 팔려온 아픈 역사가 있을 정도다. 왜 BEV가 면화 재배 스타트업에 투자한 것일까. 바로 농부의 손 대신 실험실에서 수확하는 면화 재배 기술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랩그로운(Lab-Grown·실험실에서 재배한) 분야가 실험실을 나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원조 격인 다이아몬드와 배양육에 이어 최근에는 면화를 중심으로 한 의류 분야까지 넓어진 것이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이미 친환경 소비를 중시하는 서구 선진국 젊은 층 사이에서 주얼리 대용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배양육은 여러 나라가 식용으로 승인하고 나섰다. 맥킨지 등에 따르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와 배양육 시장 규모는 2030년까지 각각 67조원, 34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그래픽=양진경

◇친환경 내세운 실험실 재배 면화

스타트업 갈리는 랩그로운 분야를 의류로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회사는 섬유의 주원료인 면화를 땅이 아닌 실험실에서 재배한다. 면화의 세포를 채취한 뒤 양분 역할을 하는 설탕을 공급하고, 자사의 유전자 기술을 활용해 특정 유전자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섬유를 뽑아낸다. 기존 섬유 생산 공정은 대량의 물이 필요하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청바지 한 벌을 만들 때 약 7000L, 티셔츠 한 장엔 2700L의 물이 사용된다. 또 세계 살충제의 약 16%가 면화 재배에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 친화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은 세계 면화 공급량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강제 노동이 이뤄지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갈리는 면화 재배 과정에서 생기는 환경·노동 문제에 주목한다. 갈리는 “자사 기술을 활용하면 물 사용량을 99%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회사는 작년 면봉·마스크 등을 만드는 일본 기업 ‘스즈란 메디컬’과 10년짜리 협력 계약을 맺었고, 지난 6월엔 영국 런던에서 인공 면화를 실제 선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 주목한 빌 게이츠의 BEV와 패션 기업 H&M, 인디텍스(자라의 모회사)로부터 3300만달러(약 442억원)의 투자 자금을 조달했다고 블룸버그 등이 지난 3일 밝혔다. 그간 누적 투자액은 6500만달러(870억원)에 이른다. 랩그로운 면화 생산 기술을 고도화해 다른 작물에도 적용할 수 있다. 모영준 전북대 작물생명과학과 교수는 “면화는 물론 커피나 카카오 같은 다른 영역으로도 확장 가능하다”고 했다.

◇랩 다이아·배양육도 상용화

국내외 주얼리 브랜드들은 시장에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속속 내놓고 있다. 이들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천연 다이아몬드 채굴에서 발생하는 환경 파괴, 노동 문제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을 내세워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가격도 천연 다이아몬드 대비 5분의 1 가격 수준으로 저렴하다.

최근엔 고압의 환경이 아닌, 대기압(1기압)에서도 다이아몬드를 합성하는 방법이 세계 최초로 개발되기도 했다. 한국 기초과학연구원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은 지난 4월 1기압, 섭씨 1025도 조건에서 다이아몬드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기존에 섭씨 1300~1600도의 고온과 대기압의 5만~6만배에 달하는 고압 조건에서 합성돼 온 걸 감안하면 획기적인 변화다. 두께 약 0.1㎜의 다이아몬드 필름을 만드는 데는 약 150분이 걸렸다고 한다.

‘실험실 고기’로 알려진 배양육도 입지를 넓히고 있다. 배양육은 동물에게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배양기에 넣고 근육세포 등으로 증식시켜 만든 고기다. 기후 문제나 식량 안보를 해결할 대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2020년 싱가포르가 세계 최초로 배양육 판매를 승인한 데 이어 이스라엘, 미국 등에서 배양육이 시판되기 시작했다. 지난 7월엔 영국이 유럽 국가 최초로 반려동물 사료용으로 배양육 상업 시장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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