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소년 SNS 사용 금지법 만드는 호주, 우린 필요 없나
호주 총리가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이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연내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소셜 미디어가 사회적 해악을 끼친다”고 표현했다. 청소년의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이 중독성 행동을 유발하고 괴롭힘, 도박, 사이버 범죄를 낳는 등 폐단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국가 차원에서 청소년의 SNS 사용 제한을 추진하는 것은 호주가 세계 최초이지만, 각국에서 비슷한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유럽에서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1세 이하의 스마트폰 사용 금지와 15세 이하의 SNS 사용 금지 법안에 지지를 표명했다. 최근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 경찰에 체포된 것도 큰 맥락은 같다. 이탈리아에서는 14세 미만의 휴대전화 소유를 금지하고 16세 미만은 소셜미디어 계정 개설을 금지하자는 온라인 청원에 교육부 장관을 비롯해 사회 저명인사들이 앞장서 공감하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해온 미국도 바뀌고 있다. 엊그제 미국의 42개 주(州) 법무장관들은 담배나 술처럼 소셜 미디어에도 ‘청소년 건강에 유해하다’는 경고문을 달게 하는 법안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는 서한을 의회에 보냈다. 이는 ‘미국의 주치의’라고 불리는 비벡 머시 공중보건서비스단 단장 겸 의무총감이 지난 6월 제안한 것이다. 머시 단장은 “소셜 미디어가 일상을 왜곡·과장하고 유해 콘텐츠를 끊임없이 권유하면서 청소년 정신 건강이 입는 피해가 감내할 수준을 넘었다”고 경고하면서 이같이 제안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7월 말 미국 연방 상원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소셜미디어 중독으로부터 보호하는 법안 두 건을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2021년 메타(페이스북 모기업)의 서비스가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알고도 돈벌이 때문에 묵인해왔다는 내부 폭로가 나오면서 추진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아이들이 온라인 무법 천지에 노출돼 있다”는 성명을 냈다.
표현의 자유, 소셜 미디어의 효용성 등을 주장하면서 이 같은 규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세계적 분위기는 급변하고 있다. 미국의학협회 연구에 따르면 하루에 3시간 이상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청소년은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두 배로 높아진다.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스마트폰에 노출되면 뇌가 강렬한 자극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어린이 및 청소년의 스마트폰 및 소셜 미디어 중독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심각한 수준일 것이다. 과기부에 따르면 청소년(만 10~19세) 10명 중 4명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다. 심지어 유·아동(만 3~9세)도 4명 중 1명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에 속해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 및 소셜 미디어 몰입을 막는 법안이 전 세계에서 가장 시급한 나라가 한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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