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나라가 국민을 거지로 만들고 있다”
땀 흘려 일하는 보람 잊었다가
뒤늦게 “사우디病 벗자”는데
우린 왜 실패의 길 가려 하나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원유 매장량 1·2위를 다투는 나라 베네수엘라가 알짜배기 석유 회사를 국유화하고 거기서 나오는 돈을 국민 호주머니에 찔러주자 우리 중 일부는 반색했다. 베네수엘라식 현금 복지를 우리가 가야 할 미래라고도 했다. 그토록 입에 침이 마르게 찬미하던 이들이었지만 쓰레기통을 뒤져 연명하는 나라가 된 현실 앞에선 그들도 입을 다물었다. 다만 지금도 ‘25만원 법’ 같은 것에 매달리는 걸 보면 현금 복지의 망령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베네수엘라 사례를 보고도 미련이 남는다면 사우디를 들여다보기 바란다. 사우디는 현금 살포가 통치의 오랜 관행인 나라다.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는 생전에 행차할 때면 돈이 가득 든 상자를 들고 다녔다. 가난한 백성이 나타나 머리를 조아리면 상자에 손을 넣어 잡히는 대로 돈을 꺼내 줬다. 오늘날 돈 상자는 사라졌지만 현금성 복지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국민 40%에 이르는 사우디 빈민은 정부 지원금 덕에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다. 교육과 의료는 비록 질이 낮지만 무료이고 휘발유와 전기 등 에너지 가격은 거저나 마찬가지다. 왕실이 출연한 각종 사회보장 기금도 극빈층을 돌본다.
많은 사우디인은 땀 흘려 일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수중에 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 진출한 외국 기업은 의무고용 제도에 따라 사우디인을 법이 정한 비율대로 고용해야 한다. 한 달 내내 출근하지 않아도 자를 수 없는데 월급은 꼬박꼬박 줘야 한다. 사우디를 방문하는 외국인은 특이한 경험을 한다. 공항을 나와 택시를 타면 운전은 파키스탄인이 하고, 호텔 리셉션에서 손님을 맞는 이는 레바논인이다. 방을 청소하는 이는 필리핀 출신이다. 그들이 일할 때 많은 사우디인이 집에서 빈둥거린다. 열심히 하는 것도 있기는 하다. 사우디인은 축구 경기에 열광한다. 권선징악청 산하 종교경찰은 사회 기풍을 단속하는 것에 열심이다. 그래봐야 생산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라가 주는 현금에 길든 국민이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우디의 미래를 걱정하는 지식인들은 “나라가 국민을 거지로 만들고 있다”고 개탄한다. 월스트리트저널 편집장을 지낸 캐런 하우스가 쓴 ‘사우디아라비아’에 현금성 복지에 길든 사우디인들이 얼마나 수동적인지 보여주는 우스개가 실려 있다. 어느 날 국왕이 차량 통행량 많은 도로에 검문소를 세우고 자기 백성이 얼마나 고분고분한지 실험했다. 느닷없이 들어선 검문소 때문에 길이 막히는데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경찰을 보내 신분을 확인하게 하자 줄이 길어졌지만 이번에도 순순히 따른다. 마지막엔 극단적으로 가봤다. 행인을 줄 세우고 이유 없이 때린 다음 맞은 자에게만 신원 확인 절차를 받고 지나가게 했다. 그로 인해 줄이 더 길어지자 마침내 한 시민이 항의했다.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 이럴 땐 두 사람이 우리를 때려야 기다리는 줄이 짧아질 것 아닌가?”
원유 매장량 1위와 2위 국가가 다 이런 식이라는 사실을 가벼이 보아 넘길 수 없다. 다만 베네수엘라는 차베스에 이어 그의 노선을 따르는 마두로가 집권하며 형편없이 망가졌지만, 사우디는 차기 국왕이 될 무함마드 빈 살만이 ‘석유 이후의 사우디’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빈 살만은 현금성 복지에 중독된 ‘사우디 병(病)’을 치료하고 싶어 한다. 대처 영국 총리가 과도한 복지와 산업의 비효율로 상징되는 ‘영국병’을 어떻게 고쳤는지에도 관심이 많다. 국가 지도자가 국민에게 돈을 찔러줘서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일부 정치인은 그 길이 좋다고 한다. 그들이 멈추지 않으면 국민이 못 가게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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