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빠진 '다수결 함정' [아침을 열며]

2024. 9. 1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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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으로 구성된 우리 가족은 주말 외식 메뉴를 정할 때마다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그런데 문제는 보르다 투표법과 콩도르세 방법이 종종 다수결과는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낸다는 것이다.

다수결로는 짜장면을 먹기로 결정했던 것이 보르다 투표법을 통해서는 김치찌개가 최종 선택될 수 있고, 콩도르세의 방법을 따르면 피자가 그날의 메뉴로 결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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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세 명으로 구성된 우리 가족은 주말 외식 메뉴를 정할 때마다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한참 서로가 먹고 싶은 음식을 주장하다가 결국은 가장 많은 사람, 즉 두 사람이 공통으로 원하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결론을 내곤 한다. 원치 않는 음식을 먹게 된 한 사람은 투덜투덜하면서도 결국은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게 된다. 이처럼,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얘기되는 민주주의는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하나의 투표권을 가지고, 가장 많이 표를 얻은 선택이 최종 결정으로 확정되는 다수결 원칙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정치를 비롯한 많은 영역에서 의사결정 방식으로 다수결을 당연하다는 듯 쓰고 있지만 사실 대안은 많다. 예를 들어, 선택지들 중 각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순위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그 점수의 합계로 최종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우리 가족의 외식 메뉴 결정에 있어서 나는 가장 먹고 싶은 짜장면에 가장 높은 점수인 3점을, 두 번째로 선호하는 김치찌개에 2점을, 그리고 가장 덜 선호하는 피자에 가장 낮은 점수인 1점을 주는 것이다. 다른 가족들도 각자 선호순위에 따라 차등 점수를 매기고, 각 음식이 얻은 점수를 합산해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음식이 최종 외식 메뉴로 선택된다. 이게 '보르다 투표법'이다.

'콩도르세의 방법'도 있다. 이는 일단 선택지를 둘씩 짝을 지어 각각 맞대결 다수결을 해서 승부의 데이터를 모은 후, 올바른 순위를 추측하는 것이다. 짜장면·김치찌개·피자라는 세 선택지에서 먼저 짜장면 대 김치찌개 중 다수결에 따라 선택을 하고, 그다음으로 김치찌개 대 피자의 다수결 선택,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자 대 짜장면의 다수결 대결을 하면 승부 데이터가 나오게 된다. 200여 년 전 활동했던 프랑스의 두 학자 장 샤를 드 보르다와 마르키 드 콩도르세가 이 방법들을 고안했는데, 파리 북부지역에 이들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을 정도로 이들은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보르다 투표법과 콩도르세 방법이 종종 다수결과는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낸다는 것이다. 다수결로는 짜장면을 먹기로 결정했던 것이 보르다 투표법을 통해서는 김치찌개가 최종 선택될 수 있고, 콩도르세의 방법을 따르면 피자가 그날의 메뉴로 결정될 수 있다.

다수결은 관습과 같은 것이지 다른 방식과 비교해서 결코 우월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에서 마치 최선의 방법인 양 안이하게 채용되고 있다. '바보들의 행진'이라고 불리는 "민주당 법안 본회의 상정→국민의힘 필리버스터로 저지→민주당 필리버스터 종결안 제출→민주당 본회의 단독 표결→대통령 거부권 행사→국회 재의결 실패→처음부터 반복"이라는 정쟁의 무한 루프도 기본적으로 다수결 원칙에 기반을 두어 작동한다.

민주당은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 차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검사 탄핵 추진, 법안 단독 처리 등을 하고, 이것을 '민의'의 반영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결국 존재하는 것은 민의가 아니라 의사결정 방식에 의한 결과인 것이다(사카이 도요타카 저, '다수결을 의심한다')." 다른 의사결정 방식을 사용한다면, 선거·법안 처리 등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국민들은 김치찌개를 먹고 싶은데 다수결의 폭주에 기댄 거대 야당이 짜장면을 먹기로 결정한다면, 이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수주의에 불과하다.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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