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고시엔과 일본의 우익 네티즌
일본 아사히신문의 지난 8월 24일 자 지면은 왠지 불편했다. 한국을 비판하는 기사도 없었고, 싫어하는 일본 정치인이 등장한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이날 아사히신문은 흔히 고시엔으로 유명한 ‘전국 고등학교 야구선수권 대회’의 결승전 소식을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 이벤트인 고시엔의 주최사다. 지역 예선의 가십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보도한다. 전날 교토국제고가 우승했고 아사히신문(도쿄판 기준)은 이날 1면, 3면, 17·18·19면, 30·31면, 37면에 관련 기사를 배치했다.
일본인 전직 기자와 대화하다 보니 불편함의 이유가 분명해졌다. 일본인 지인은 “묘하다”며 “아사히신문의 고시엔 우승 기사엔 ‘한국’이 없다”고 했다. 아사히신문의 기사를 다시 봤다. 어디에도 ‘재일 한국인들이 돈을 모아 세운 학교’이며 ‘한국어 교가를 부른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한국’이란 단어 자체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교토국제고 고마키 노리쓰구 감독의 인물 기사에서 ‘간사이대 졸업 후, 지인 소개로 휴일에 재일 한국인의 아이들도 많이 다니는 이 학교에서 야구를 지도하기 시작했다’와 본문 기사에 ‘전신 교토한국학원’이라고 언급한 정도다.
우승팀 교토국제고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다니는 학교다. 1947년 재일 동포들이 돈을 모아 세운 민족 학교 교토국제중이 뿌리며 2003년 일본 정부 인가를 받았다. 재학생의 대부분은 일본인이며 재일 동포와 한국인도 꽤 다닌다. 한국·일본 정부가 각각 매년 10억원 이상을 교토국제고에 지원한다. 말하자면 한·일 합작 우승 드라마였다. 아사히신문이 우승팀의 이런 화제성을 몰라서 안 썼을 리 만무하다. 한국 윤석열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야구를 통해 한일 양국이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린 걸 몰랐을 리 없다.
주변에 물었더니 “아사히신문 나름의 배려 아니었을까”라는 말들이 있었다. 교토국제고 한국어 교가를 문제 삼아 소셜미디어에 혐한(嫌韓) 글을 쏟아내는 일본 일부 우익 네티즌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추정이다. 편집권은 아사히신문의 고유 권한이며 판단은 오롯이 아사히신문의 몫이다. 다만 아사히신문의 오랜 독자로서 토를 달고 싶다. 교토국제고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는 글을 쓰는 우익 네티즌이 있다면 그들을 비판하는 게 맞는다.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 뒤에 숨을 이유도 없을뿐더러, 아사히신문이 알아서 숨겨줄 이유도 없지 않은가.
아사히신문은 일본이 패전한 직후인 1945년 8월 23일 ‘우리들이 사죄하는 이유’라는 사설에서 과거 일본 군국주의 시절에 전쟁을 부추긴 본인들의 책임을 고백했다. 이후 군국주의를 견제하는 일본 지식인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됐다. 이런 아사히신문을 신뢰하는 독자에게 이날 지면은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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