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너는 부도덕하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천현우 작가·前용접 근로자 2024. 9. 1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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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서 아이랑 노는 엄마는 맘충·기초생활수급자는 진상이다?
속으로 삭여도 될 일을 인터넷 댓글창서 굳이 훈계하는 세상
易地思之 필요한 시대…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도덕적이지 않다
일러스트=이철원

대한민국 청년 직장인 대표 커뮤니티는 단연 ‘블라인드’다. 한국에서만 600만명 넘게 가입한 이 앱은 이용자의 아이디(ID) 대신 직장이 노출된다. 구조가 이러니 대기업 직장인이 발언권 얻기 쉬운 구조다. 주요 담론 또한 이직, 커리어, 면접 후기, 연봉 협상 및 비교 같은 대기업 직장인들의 먹고사는 이야기들이다. 대기업 일자리가 20%도 되지 않는 나라에서 이런 커뮤니티가 대표성을 가진 현실은 ‘평균 올려치기’라는 유행어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50%에 수렴해야 할 평균값을 상위 20%가 납치해 가는 이 현상은 소득, 재산, 학벌 같은 유형자산에만 존재하는 양 보인다. 하지만 무형의 ‘평균 올려치기’ 또한 존재한다. 인터넷에서 기승인 ‘도덕 평균 올려치기’ 현상 이야기다.

인간이 타인의 천인공노할 행동에 분노함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온갖 강력 범죄야 말할 필요도 없고, 법의 테두리를 교묘히 벗어나 이익을 챙기는 얌체 행동들을 보게 될 때 화가 날 수 있다. 예컨대 키우지도 않던 자식이 죽으면 그제야 친부모라며 나타나서 유산을 가로채는 인면수심 행태는 사람 혈압을 올리기 충분하다. ‘도덕 평균 올려치기’의 문제점은 이런 이견이 없을 극악한 행위에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단순히 자신의 이해심 부족을 도덕 문제인 양 얘기한다는 점이다.

당장 유튜브나 네이버 댓글 창만 봐도 사회적 약자를 향한 도덕적 훈계가 판친다. 카페에서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부모를 ‘맘충’이라고 매도한다거나, 기초생활수급자들을 무작정 사회악이나 진상으로 몰아가는 행태 등이다. 굳이 속으로 삭이지 않고 인터넷에 글까지 올려 조리돌리는 이유의 핵심은 두 가지. 스스로를 향한 관용과 타인을 향한 불관용이다. 그러니까 ‘저 사람은 부도덕하고 나는 최소한의 도덕심은 지녔다’는 얘기를 하는 셈이다.

그럼 남더러 부도덕의 딱지를 붙이고 다니는 이들은 정말로 도덕적인가? 알 수 없다. 다만 평균값만 따져보면 아닐 가능성이 높다. 2015년 독일 쾰른대에서 한 실험을 했다. 실험자 측에서 무작위로 스마트폰으로 신호를 보내면, 참가자들은 신호를 받을 때마다 직전 1시간 동안 자신이 한 도덕적, 비도덕적 일과 직전 1시간 동안 관찰한 다른 사람의 도덕적, 비도덕적인 행동을 적어 보내야 했다. 실험 결과 자신이 도덕적인 일을 했다고 보고한 빈도는 7%, 타인이 도덕적인 일을 했다고 보고한 빈도는 3.5%로 두 배 차이가 났다. 이 외에도 인간이 타인보다 자신을 과대평가한 심리학 실험 결과는 차고 넘친다.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의 도덕심조차 ‘평균 올려치기’하고 있는 현실이다.

충분히 사정이 있을 법한 사람들의, 아무리 나쁘게 말한들 ‘민폐’ 수준인 행위를 ‘부도덕’으로 묘사하며 도덕 평균 올려치기를 했던 결과는 사회로 돌아온다. 대한민국은 절대로 실수하면 안 되는 세상, 억울한 일이 있어도 변호하거나 받을 수 없는 국가가 된다.

만약 내가 차 타고 퇴근하다가 다른 차에 들이박혀 반신불수가 됐다고 가정해보자. 당장 내 삶이 무너져 내린 사실도 억울한데 혼자 어디론가 이동할 수가 없다. 대중교통은 휠체어 탄 상태론 도저히 못 타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를 바꿔 달라고 해도 바꿔주지 않으니 시위를 한다. 그때 만약 세상이 나더러 부도덕한 인간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눈물 나게 억울하지 않을까. 그저 나한테 벌어지지 않은 일이라며 냉소하기엔 꽤 있을 법한 가정이라 두렵다. 인터넷에서 훈계하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근질할 때면 떠올려 보자. 우린 우리 스스로의 생각만큼 도덕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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