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혁의 극적인 순간] 세 번 놀라고 나니 세 번 고마워졌다
지난주 금요일의 일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정들이 많았다. 새벽에 눈을 떴는데 몸이 너무 피곤했다. 눈만 그대로 뜨고 있을 뿐, 몸은 잠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정신을 제대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찬물로 샤워를 했다. 그 순간, 갑자기 눈앞이 빙빙 돌았다. 나는 가만있는데 욕실만 급속도로 회전을 했다. 내가 마치 팽이가 된 것 같았다. 내 몸이 계속 좌우로 기우뚱거렸다. 그대로 엎드려서 엉금엉금 기어서 욕실을 나왔다. 이대로 쓰러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났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야 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놀랐다. 나는 전화를 하기 전에 안간힘을 쓰며 옷부터 찾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로는 전화를 간절하게 떠올렸지만, 내 몸은 간절하게 옷부터 주워 입고 있었다. 바닥을 기어다니며 여기저기 널려있는 옷을 모두 주워 입고 나서야 친구에게 전화로 상태를 알렸다. 통화가 끝난 후 심호흡을 천천히 하니까 상태가 조금씩 회복되었다. 그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는 왜 전화를 하기 전에 옷을 갖춰 입었을까.
그 놀라움은 금세 풀렸다. 어지럼이 일정 간격으로 찾아오면서, 나는 그날의 일정들을 취소하는 전화를 돌렸다. 약속을 한 지인들과 통화를 하면서 이 에피소드를 얘기했더니, 대부분 고개를 끄덕거렸다. 실은 자신들도 그런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샤워를 하다가 어지럼 증상이 찾아왔었고, 그 순간 본능적으로 옷부터 입었다는 것이다.
나는 두 번째로 놀랐다. 옷부터 입은 공통점 때문이 아니었다. 내 지인들 중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어지럼증을 겪어온 이들이 많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석증을 비롯한 다양한 증상으로 고생을 했었고, 운동과 생활습관을 통해 증상을 극복하고 있었다. 나를 만날 때마다 늘 밝은 표정과 에너지로 기분 좋게 해주던 사람들이 실은 어지럼증으로 남 모를 고생을 하고 있었다. 저마다 터득한 극복 노하우를 나에게 설명해주는 목소리들을 들으며, 마음이 울컥했다.
아마도 내가 이 증상을 겪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이들의 분투를 절대로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택시를 불러 병원을 갔다. 의사 선생님은 사흘 후에 검사 결과가 나오니 그동안 집에서 안정을 취하라고 하셨다. 언제 어지럼증이 찾아올지 모르니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라는 당부와 함께. 어지럼증이 가시지 않았기에 나는 그 당부를 철저히 지켰다. 집에 하루 종일 누워서 책을 읽고 영화를 봤다.
그러다 문득 날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세 번째로 놀랐다. 우리 집 고양이 사자와 아수라가 나를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네가 왜 지금도 집에 있느냐?’고 묻는 눈빛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늘 아침 일찍 나가서 한밤중에 들어왔다. 나보다는 애인이 더 고양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래서 고양이들은 어느새 내가 집에 없는 것이 익숙했던 것 같다. 때마침 애인은 제주도에 가서 사흘 후에 돌아올 예정이었고, 나는 사흘간 집에 누워 있을 예정이었다.
고양이들은 이틀이 지날 때까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내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러나 문득 이틀 내내 누워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슬그머니 다가와서 볼을 비비기 시작했다. 나도 뭔가 고마운 마음에 두 고양이를 이리저리 쓰다듬었다. 그렇게 왼손으로 사자를, 오른손으로 아수라를 쓰다듬으며 남은 하루를 버텼다. 가끔 천장이 빙빙 돌았지만, 양쪽 품에 고양이들의 체온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리 무섭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고 나니 다음 날 아침이었고, 천장은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았다. 스스로 걸어서 병원에 갔다. 2주 동안 약을 먹으며 상태를 보기로 했다. 다시 스스로 걸으며 집으로 향했다. 걸어가는 내내 지난 사흘의 시간이 눈앞에 흘렀다. 고맙다는 단어가 계속 떠올랐다. 처음 찾아온 어지럼을 가까스로 견뎌준 내 몸에 고마웠다. 예전부터 그런 어지럼에 시달렸으면서도 나에게는 늘 밝은 에너지만 선물해줬던 지인들도 고마웠다. 천장이 빙빙 돌 때마다 갸르릉 소리가 나는 따뜻한 체온으로 내 곁을 지켜준 고양이들 역시 고마웠다. 세 번 놀라고 나니 세 번 고마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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