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19] 달 한 모금 마시고 소원을 빌고
달맞이하다
다다미에 쏟았네
꽃병 속의 물
つきみ たたみ はな みず
お月見や畳にこぼす花の水
달이 차오르니 바야흐로 한가위가 다가오고 있다. 어린 날에는 추석날 밤 할머니 손을 잡고 신기하도록 크고 선명하여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보름달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면 할머니는 “자, 어서 소원을 빌어야지. 한가위 달님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신다”라고 하시면서 달이 구름 뒤로 사라질세라 당신도 소원을 비셨다.
“달님, 올해도 우리 아이들이 그저 건강하게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할머니는 진지했다.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비셨다. 어린 내게도 그 정성이 전해졌다. 그러면 그날 밤 달님은 정말로 특별한 힘을 발하는 것만 같아서 나도 간절히 바라는 한 가지를 달님에게 빌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언제나 내가 원하는 걸 빌었는데, 할머니는 자식들 자손들 잘되기만을 소망했다.
일본에도 음력 8월 15일 밤이면 달을 올려다보는 의식이 있다. ‘쓰키미(月見)’라고 한다. 달을 본다. 글자 그대로다. 아름다운 달을 보며 그 순간을 즐긴다. 봄에는 꽃을 보고(하나미·花見), 겨울에는 눈을 보며(유키미·雪見), 가을에는 달을 본다. 특히 한가위 보름달은 연중 가장 곱다. 옛사람은 강에 배를 띄워 달구경에 나서거나 툇마루에 앉아 술과 경단을 놓고 멋들어진 달을 감상했다. 이때 마시는 술을 쓰키미자케(月見酒), 먹는 경단을 쓰키미단고(月見団子)라고 한다. 술잔에는 달이 담겨 있고, 경단은 하늘에 걸린 보름달을 작게 빚은 듯하다. 맑은 달 한 모금에 달 바라보고, 달콤한 달 한 조각에 달 바라본다. 소원은 빌지 않는다. 그저 그윽하게 바라볼 뿐.
이 하이쿠를 쓴 다카하시 아와지조(高橋淡路女·1890~1955)는 근대화 초기에 등장해 두각을 나타낸 여성 시인이다. 십오야 보름달이 휘영청 떴고, 불 꺼진 다다미방 안에서 달을 보고 있었으리라. 창가 앞 책상에 턱이라도 괴고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아름다운 달에 마음을 빼앗겨 넋을 놓고 보다가 문득 옆에 놓인 꽃병을 손으로 쳐서 다다미에 꽃의 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어머! 한순간 흐르는 물방울까지 눈에 보이는 듯한 한 줄 시다. 찰나의 정물화. 그저 그것이 다인, 가을날 풍경. 저런, 얼마나 달이 아름다웠으면! 괜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가올 한가위 보름달을 기다리게 된다. 덧붙여 달님에게 속삭일 소원도 생각해 두자. 할머니 말씀대로 한가위 달님은 정말 용하다. 어릴 때 달님을 바라보며 내가 늘 빌었던 소원은 “작가가 되게 해주세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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