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싫어하는 것을 겪지 않을 권리
명절이 다가온다. 메타인지를 총동원할 시기가 온다. 닷새 연휴 중 며칠을 가족과 함께하고 며칠은 나만의 휴가로 쓸 것인지, 무더운 날씨에 추석 선물은 무얼 준비해 어떻게 나를 것인지, 어떤 말은 덜 하고 덜 들을 수 있을지 등등 생각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역시 운전이다. 뉴스 채널들이 이전 데이터를 토대로 교통 정체 예측을 보도해주기는 하지만, 그때부턴 어쩐지 눈치싸움이 시작되는 것만 같다. “오후 4~5시 사이 귀경길이 가장 막힐 거라고 예측했으니 모두 이 시간에는 안 움직이겠지?”라는 생각에 길을 나섰다가 역시나 차량정체를 겪기도 하고, “밤 10시 이후 이동이 낫다”는 말을 금쪽같이 믿었다가 비슷한 뉴스를 본 인파와 함께 오랜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기도 한다. 도로 위에서 하염없이 보내는 시간을 싫어하지만,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시절이 왔다고 해도 이 싫은 것을 피할 도리가 없다.
싫은 말을 듣는 것을 피하는 일은 더 어렵다. 다양한 주제가 밥상에 오른다. 결혼과 진학, 출산과 같은 특정 이슈를 꺼낼 거면 돈을 내고 말하라는 우스개가 소셜미디어에서 명절마다 돌고 돌지만, 그 노하우를 실전에서 꺼낼 용기는 없다. 살면서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많다는 걸 항상 인지하지만 유독 명절에는 싫은 것을 피하고 싶은 걸 보니, 명절이 곧 휴일이라는 인식 아래서는 쉬고 싶은 욕망이 한결 더 강렬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명절을 맞아 한층 더 정교해진 보이스피싱과 스팸문자, 여기에 더해 딥페이크까지 활개를 치고 있다. 기다리던 택배 문자는 나의 데이터를 훔치기 위한 교묘한 미끼고, 알지도 못하는 외국인 여성은 “내일 모레 인천 공항에 도착한다”며 메신저를 보낸다. 에어드랍(아이폰 사용자끼리 근거리에서 데이터를 주고받는 기능)을 지하철에서 켜 두었다가는 별안간에 ‘요상한’ 사진을 받을 수도 있다. 곳곳이 지뢰밭이다. 내 사진을 내 온라인 공간에 올리는 건 엄연히 나의 자유로운 표현인데, 그마저도 어설프고 유치한 합성사진으로 참 간단하게 만들어져서는 무척 지저분하게 쓰일 수 있다고 한다. 일상 속 휴가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마저, 맘 놓고 쉬지도 못한다. 오직 좋아하는 것만 촘촘히 모아 보여주는 추천 알고리즘의 세상이지만, 우리는 취향을 가장한 불순물들을 피하지 못하고 기어이 마주치게 된다.
싫은 것을 피하기 위해 메타인지를 총동원해야 하는 노력은 왜 온전히 나의 몫이어야 할까? 사용자는 엄연히 돈을 내고 값비싼 스마트폰과 통신 서비스를 이용한다. 갈수록 개인 데이터의 가치도 높아지고 있다. 트레이드오프라고 하기에 사용자들은 이미 많이 지불했고, 피해도 쌓이고 있다. 여태껏 취향저격에 집중돼 우리의 전두엽을 자극하던 서비스들에 대해, 이제는 싫어하는 것을 겪지 않을 권리를 이야기해야 한다. 끔찍한 혐오로 치장한 댓글, 글의 내용과 상관도 없는데 늘 달리는 정치적 광고, 끝없이 도착하는 스팸문자를 일일이 신고하는 것에도 사회적인 에너지가 든다. 사용자의 돈과 데이터를 받는 이들이 애초부터 걸러내어주면 될 일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잔소리 없는 명절이 뉴노멀이 되는 것보다 어쩌면 훨씬 더 쉬운 미션일지도 모른다.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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