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의 위대한 이웃]아기 똥 기저귀와 황호희씨
“내 소명은 아기 똥 기저귀 갈아주기.”
아기의 똥 기저귀를 갈아주는 자신의 손이 그녀는 만족스럽다. 그런데 그 손은 관절염으로 아침에 잠에서 깨면 손가락이 못처럼 뻣뻣하다. 죔죔을 20~30분 정도 하고 나야 손을 조금씩 쓸 수 있다. 죔죔, 죔죔….
6년 전, 활동지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그녀는 기도했다. ‘장애를 가진 아기를 만나게 해주세요. 장애를 가진 아기가 자라는 데 제가 도움이 되고 싶어요.” 기도대로 그녀는 장애를 가진 아기는 만났다. 그런데 다 큰 아기였다. 혼자 힘으로는 일어나 앉을 수도 없는 다 큰 아기를 돌보는 일이 그녀의 몸을 쓰러뜨릴 만큼 힘들어 그녀는 다시 기도했다. “제 기도를 도대체 어떻게 들으신 거예요? 저도 몸이 아픈 사람이라는 걸 잘 아시잖아요.” 그녀는 섬유근통이라는 지병을 앓고 있어서 독한 약을 매일 다섯 차례 먹어야 한다.
벌써 헤어졌어야 ‘맞는’ 다 큰 아기와 헤어지지 못하고, 세상의 시선으로 보자면 ‘틀린’ 노년을 살고 있는 그녀(1963년생). 10대 때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할머니 밑에서 자란 그녀는 부모로부터 자신이 버려졌으며 그로 인해 ‘버려질 거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자랐다. 저 친구도 결국 나를 버릴 거라는 불신으로 그녀는 단 한 명의 친구도 진심으로 사귀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나” “아무 곳에도 필요 없는 나”. 그녀는 자신이 “없어도 되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자신을 세상에서 없애고 싶었다. 그런 욕구 안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바람이 숨어 있었다.
20대 때도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병원 응급실에서 깨어나며 그녀는 자신처럼 자살을 시도하다 실려 온 사람들이 어떻게 다뤄지는지 보고는 다시는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누가 나를 안 버릴까?” “누가 나를 안 떠날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내 옆에 있으면 싶었다. 날 안 버릴 사람, 날 안 떠날 사람을 간절히 갈망하는 그녀에게,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봉사를 갔던 영아원의 아기들이 떠올랐다. “서로 품을 차지하려고 경쟁하듯 기어와 안기던 아기들, 안겨 떨어지지 않던 아기들, 그 아기들의 잊히지 않는 눈빛.” 그 눈빛이 그녀를 장애인들에게 이끌었다. 그들은 그녀를 기다려주고, 그녀를 떠나지 않았으며, “너도 필요한 사람”이라는 기쁨을 주었다. “내가 빵 하나 주면, 너도 빵 하나 주는 관계”가 싫은 그녀에게 깨끗한 행복감을 주었다.
결혼을 하고 남매를 낳고 키우며 끔찍한 위기가 왔었다. 지독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호희야, 너 뭐 할 때 행복했어?” 그러다 “빛이 보이네. 저 빛을 따라서 올라가면 내가 뭘 해야 하지?” 그리고 만난 다 큰 아기.
“내게 왜 다 큰 아기를 주셨을까?” 궁금하던 그녀는 강길웅 신부님의 강론을 듣게 됐다. 가난한 집의 맏이로, 심부름을 도맡고 간질을 앓는 여동생을 도맡아 업어주고 돌봐야 했던 신부님은 어른이 돼 물었다. “엄마, 그 힘든 일을 왜 나한테만 시켰어요?” 엄마의 대답은 “네가 잘하니까. 너를 믿으니까”였다.
‘네가 잘하니까’, 그 소리가 그녀의 마음에서 들려왔다. “엄마는 어린 자식에게 들 수 있는 걸 들려줘요. 그럼 어린 자식은 자신이 엄마를 도와주고 있다는 뿌듯한 마음에 신이 나서 들고 가요. 지병이 있는 몸이지만 내가 들 만하니까, 내게 다 큰 아기를 준 거예요.”
다 큰 아기를 만난 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 안에 울고 있는 아기다. 엄마가 보고 싶어 마루에서 눈물이 흥건히 고이도록 울다가 잠든 아이다. “내가 애기들이 심하게 울고 나서 잠들 때 내는 소리를 낼 때가 있어요. 주눅 들고 슬프고 외로운 아기가 내 안에 있구나! 그래서 네 숨소리가 이렇구나, 숨 쉬는 게 이토록 힘들구나.”
다 큰 아기와 헤어질 때를 그녀는 “알 수 없다”. 그때가 오늘은 아니라는 것만 안다.
“누구도 기다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집착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뭔가를 바라지 않고, 누구도 판단하지 않으며” 그녀는 오늘도 죔죔을 30분쯤 하고 난 손으로 다 큰 아기를 일으켜 세우고 머리를 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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