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위대한 통치자 ‘울루그 베그’를 위한 변명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2024. 9. 1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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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티무르 제국 술탄, 수학·천문학 등 학문 장려
아들 반란에 비극적 사망…별을 보듯 타인 바라봐야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마르자 무함마드 타라가이 빈 샤루흐’가 그의 본명이다. 하지만 그는 ‘위대한 통치자’라는 뜻의 ‘울루그 베그’라는 애칭으로 더 알려져 있다. 중앙아시아의 여러 스탄 중 하나인 우즈베키스탄의 역사 도시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이름이자, 이곳을 다녀온 여행객이라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이름일 것이다. 14세기 후반, 중앙아시아와 현재의 이란 이라크,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일대를 포함하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티무르의 손자이자 티무르 제국의 4대 술탄이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당대 일대를 호령하던 이슬람제국의 술탄이라는 자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는 침략과 정복의 역사 속에서도 과학을 발전시키고 후속 세대를 위한 학문을 장려한 특별한 군주다. 무엇보다 당시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던 사마르칸트 외곽에 천문대를 건설해 천문학을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중앙아시아 최대 규모이자 가장 정밀한 천문관측소로 인정받는 이 천문대는 그의 학문과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구와 열정의 상징이기도 하다. 울루그 베그는 통치자로서 학문의 발전을 장려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수학과 천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학문을 닦은 학자였다.

그의 이름을 딴 ‘울루그 베그 천문대’에는 ‘육분의’(파크리 색스턴트)의 일부가 남아 있다. 이는 별의 궤도를 측정할 수 있는 당대 최고 규모이자 가장 정밀한 도구로 평가받는다. 이 도구를 이용해 그는 1018개의 별을 관측하고 목록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는 1년의 길이를 365일 6시간 10분 8초로 추정했는데, 오늘날의 기술로 계산한 결과인 365일 6시간 9분 9.6초와 1분도 차이가 나지 않는 놀라운 정확성을 보여준다. 이런 이유로 후대 천문학자들은 달 표면의 분화구와 소행성에 울루그 베그의 이름을 붙이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새롭게 발견된 공룡의 이름에도 그의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다.

수학과 과학, 천문학뿐만 아니라 울루그 베그는 언어에도 능통했다. 아랍어 페르시아어 트루키예어 몽골어 등 4개 언어에 능통했고, 어느 정도 중국어도 구사했다고 한다. 제국의 술탄이었지만, 그는 통치와 더불어 학문 연구를 병행했고, 현재의 대학과도 같은 마드라사에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 어쩌면 그는 정복과 전쟁보다 평화를 더 소망했는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위대한 통치자’라는 애칭과 달리 그의 삶은 비극적으로 끝난다. 3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재위 동안 울루그 베그는 과학적으로 더 큰 위상을 쌓았으나, 결국 암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겉으로 내세운 명분이 무엇이든, 실제로는 아버지를 죽이고 더 큰 권력을 차지하려는 아들의 욕망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압달은 아버지를 살해했지만, 자신도 재위 6개월 만에 암살당하고 만다.

울루그 베그가 자식 교육을 소홀히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당대 술탄으로서 한계였을까? 아니면, 그가 자식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했던 것일까? 우리는 정확한 내막을 알 수 없다. 다만 마지막 죽음만으로 그를 비극적 인물이라든지 가엾은 인물로 단정지어 버린다면 진정으로 불쌍한 인물이 되고 말 것이다. 그의 삶은 그 자체로 위대하며, 그는 자신 삶의 많은 부분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후손들은 ‘위대한 통치자’라는 칭호를 부여함으로써 그를 향한 애정과 존경을 표한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거울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유아기 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직 걷거나 일어서지도 못하는 불완전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시선으로 스스로를 완전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실제로 수십 개의 거울을 앞에 두고 자신을 들여다봐도, 내 모습은 온전히 보이지 않는다. 반면, 타인은 선명하게 드러나고 자연스레 분석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이런 사실을 알기에 타인의 삶을 평가하지 않으려 아무리 애써도, 울루그 베그의 마지막은 그저 가련하고 안타깝다. 그러나 자식이 어찌 부모의 뜻대로 될 수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 울루그 베그는 우리에게 또 다른 위로를 남긴다. 그처럼 위대한 학자조차 자식을 온전히 알지 못했는데, 세상의 모든 부모가 자식의 삶을 어떻게 알고 책임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부모의 권위와 역할이 끝없이 추락하고, SNS와 미디어 등 수많은 외부 영향력이 작용하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이제는 자식이 빗나간 삶을 산다는 이유만으로 고통받는 부모에게 ‘자식 교육’을 탓하는 비수를 꽂아서는 안 된다.


수백 년 전 울루그 베그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올려다본 그 하늘 아래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이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힘겹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별을 바라보듯 사람을 바라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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