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묘한 '고구마 쿠데타' [책이 된 웹소설 :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

김상훈 기자 2024. 9. 1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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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돌아간 현대인
미래를 알아도 할 수 없는 것들
대체역사물에서 주인공은 쉽게 독재를 결정하지만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에서는 어려운 길이다.[사진=펙셀]

역사의 '만약'을 다루는 대체역사 장르에서 독재는 필요악 내지 차선으로 취급된다. 혼란기를 정면돌파하기 위해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아서다. 그래서 대체역사 작품은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독재자 주인공이 많다.

'앙금고라니' 작가의 웹소설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를 접하면 '또 다른 독재자 이야기' 란 인상을 받는다. 제목에서부터 쿠데타 필요성을 강조한다. "제국주의에 조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가 군부를 장악해야 한다"는 작품 소개도 독재자 꿈나무 주인공의 전형적인 생존 논리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독자가 막상 작품을 읽으면 이와 완전히 다른 내용을 마주한다. 가장 먼저 접하는 표지부터 극심한 혼란이 가득할 것을 암시한다. 주인공은 한 손에 권총을 들고 시선은 총을 향하고 있다. 그 눈빛에는 결단 대신 깊은 불안과 망설임이 서려 있다. 실제 작품은 앞선 생각과 다른 전개를 보여준다.

이야기의 시작은 현대에서 살아가던 청년 '김민재'가 조선 말기 무관 '김시혁'에게 빙의하면서 펼쳐진다. 김민재는 ROTC 출신의 역사학도로, 일본군의 경복궁 습격 당시 경복궁에 주둔해 있던 평양 출신 군관 김시혁의 몸으로 깨어난다. 처음에는 혼란에 빠지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치욕적인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압제 아래에 의미 없는 저항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나는 그런 것에 맞서야 하는 스스로의 다짐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운명의 실타래가 우리의 몰락을, 또는 우리의 멸망을 가리킬지라도… 그 운명에 저항하는 방법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항하는 자, 꺾이지 않는 자들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 필요할테니 말이다.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 중

그러나 1894년의 현실은 그의 결심을 실현하기에 결코 만만치 않다. 당시 조선은 외세의 압박과 내부의 혼란 속에서 방향을 잃어가고 있었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기존 대체역사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단번에 권력을 장악하고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김시혁은 군사적 지식과 미래의 안목을 가지고 있지만, 일개 군관일 뿐이어서 명확한 한계가 따른다.

[사진=ARC 제공]

작품은 이런 한계를 반영하듯 다소 느리게 진행된다. 김시혁은 빙의된 이후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단순한 무대가 아니다. 작품은 특히 현실적인 발전 방향을 보여주는데, 사단 하나 제대로 무장할 수 없는 열악한 현실이 강조된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고종과의 불편한 동거다. 고종은 군주로서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 하고 김시혁은 미래 지식으로 조선을 근대화하고자 한다. 고종은 김시혁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그를 경계하며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 한다.

김시혁 역시 군주인 고종의 권위를 무시할 수 없기에, 두 사람은 협력과 갈등을 반복하는 불안정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 작품에서 끝없는 '우상향'의 쾌감을 느끼긴 힘들지만, 대신 독자는 김시혁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오는 특별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김시혁은 시대적 혼란과 복잡한 상황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모색한다.

이처럼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는 빠르고 강력한 국가 건설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전개로 다가온다. 마치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가다 '방지턱'을 만나는 듯한 전개에 인상이 찌푸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고구마' 전개를 참고 천천히 변화하는 조선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면 점진적인 성장 속에서 오는 깊은 몰입감과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거다.

김상훈 더스쿠프 문학전문기자
ksh@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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