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과 이재명만 이득? ‘지구당 부활’ 둘러싼 ‘대권 잠룡’들의 셈법
오세훈‧홍준표‧조국‧이준석, ‘정치 퇴행’ 한목소리…“양당 주류 좋은 일”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거대양당의 수장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회담 테이블에서 한목소리를 낸 '지구당 부활'에 본격 시동을 걸고 있다. 이를 두고 잠재적 대권 잠룡들은 일제히 "제왕적 대표제를 강화한다(오세훈 서울시장)" "거대양당 정치인만 좋은 일(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지역 유착 발생이 우려된다(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며 반발심을 드러냈다. 정치권에서도 지구당 부활이 결국 대권에서 '한동훈-이재명' 양자구도를 굳히는 반면, 양당 비주류나 군소정당 후보들의 입지는 좁힐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0년' 전으로 회귀? '지구당 부활' 집중하는 韓‧李
최근 거대양당 지도부는 지구당 부활에 박차를 가하는 분위기다. 지난 1일 진행된 여야 당대표 회담에 이어, 9일 국회에서 열린 지구당 부활 주제 토론회에서도 양당은 공감대를 확인했다. 한동훈 대표는 "지구당이 돈 문제에 약하다지만 시대가 변했다. 법 개정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걸 보증하겠다"고 자신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도 "지구당은 정치를 개혁해 시민이 더 참여하게 하는 새 정치의 장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양당이 지구당 부활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현역' 프리미엄을 줄이고 '원외'나 '정치 신인'들의 정치활동을 촉진시키는 데 있다. 앞서 지구당은 정당의 공식 지역 조직으로 20년 전까지 남아있었지만, 당시 사무실 임차료 등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면서 '돈 먹는 하마'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의 일명 '차떼기' 불법 정치자금 수수 논란이 불거지며, 결국 2004년 통과된 '오세훈(당시 한나라당 의원)법'으로 폐지됐다.
하지만 지구당을 대체한 지금의 '당협위원회(지역위원회)' 체제에서도 각종 고질적 문제들이 발생했다. 일단 당협위원회는 공식 정당 조직이 아닌 만큼 지역사무실을 운영하거나 유급 직원을 고용할 수 없다. 또 현수막을 걸 수 없는 것은 물론 후원금도 선거 기간에만 모금할 수 있다. 현역 의원들은 지역사무실을 둘 수 있어서 문제가 없는 반면, 원외 당협위원장과 정치 신인들에게는 이 같은 제약이 치명적이다. 그래서 '현역 프리미엄'이 생겨난 것이다.
양당 주류층도 이 같은 현역과 원외‧신인 간 '빈부 격차'를 강조하며 지구당 부활에 찬성하고 있다. 지구당이 생기면 원외 인사도 지역 조직을 다질 수 있게 돼 당의 전체적 체급이 커지고, 원외 신인들도 활발한 정치활동이 가능해진다는 주장이다. 관련해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지구당 부활이 청년과 신인에게 공정한 경쟁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의 김부겸 전 국무총리도 "지구당은 중앙과 지방의 소통 창구가 될 것"이라고 봤다.
이렇게 되면 한동훈‧이재명 대표의 대권 가도에도 플러스가 된다. 원내 기반이 약한 한 대표의 경우는 원외 조직이 커지면서 새로운 우군을 만드는 셈이다. 또 '위드후니'라는 온라인 팬덤에 이어 오프라인 지지 조직까지 생기면 대권 행보의 든든한 기반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재명 대표도 '개딸(개혁의 딸)'을 비롯한 온라인 지지층에 이어 오프라인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당내에서 천명해온 '당원권 강화'의 연장선도 되는 셈이다.
"韓‧李, 대권만 신경 쓰는 사이 중요 '정치개혁' 안건은 소외"
양당 비주류 대권 잠룡들은 결국 지구당 부활이 '한동훈-이재명' 양자구도 프레임을 강화시키는 만큼 달갑지 않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20년 전 지구당 부활 폐지의 주역인 오세훈 시장은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여야 대표가 추진하는 지구당 부활은 돈 정치와 제왕적 대표제를 강화한다"며 "퇴보로 유턴하는 게 바람직한 정치인의 자세인가"라고 비판했다. 대권 후보로 꼽히는 홍준표 대구시장도 지난 5월31일 페이스북을 통해 "(지구당 부활 추진은) 반(反)개혁일 뿐 아니라 여야의 정략적 접근에서 나온 말이다. 부패 위한 제도적 기틀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 등 제3지대도 지구당 부활에 대한 '손익' 계산이 분분한 모양새다. 일각에선 지구당 부활을 통해 오프라인 활동 근거를 만드는 만큼, 온라인 당원에 의존하는 군소정당에게 긍정적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온라인 정당들은 젊은 층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만큼, 지구당이 부활하면 지지 기반을 중장년층으로 넓히면서 당세를 넓힐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제3지대 입장에서도 이득"이라고 했다.
하지만 군소정당 입장에선 손해가 더 클 것이란 우려가 만연하다. 지구당 유지에 상당한 당력과 자본이 필요한 만큼 신생정당에겐 '높은 벽'이라는 이유에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통화에서 "양당은 지지율이 30%대에 이르고, 지구당별 당원들도 수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제3지대는 지지율도 한 자릿수고 당원들도 수백 명에 불과하다"며 "결국 당원 수부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다 양당으로 흡수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중앙당 지원도 필요한데, 제3지대는 여유가 없는 만큼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지구당 부활로 양당과의 격차가 커질수록 조국 대표나 이준석 의원 등 제3지대 대권주자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조국 대표도 9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발언에서 "지구당을 되살리면 민의를 더 잘 수렴할 수 있나. 결국 거대 양당 소속 정치인에게만 좋은 일"이라고 직격했다. 이준석 의원도 지난 5월 개혁신당 연석회의에서 "지구당이 부활하면 지역 토호와 유착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양당 수장이 대권 행보에만 주력하는 사이, 정작 이뤄져야 할 '정치개혁' 안건들은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재관 조국혁신당 전략기획부원장은 시사저널과 만나 "정치개혁에서 지구당 부활을 시급한 과제로 생각하는 국민들이 누가 있나. 그래서 '여의도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고립되는 것 아닌가"라며 "지구당 문제가 여야 당대표 회담의 주요 의제가 됐다는 것도 황당하다. 국민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들을 위해 싸우는 정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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