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핵발전소는 ‘안전신화’와 싸워온 주민들이다 [왜냐면]
월성원전 지역주민 이주 농성 10년 ①
김우창 |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
2024년 올해는 ‘무더웠던 여름’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무더위가 만든 새로운 기록들도 수두룩하다.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후 전국 평균기온은 25.6도로 가장 높았고, 열대야 일수도 전국 평균 20.2회로 역대 최악의 폭염 중 하나였던 2018년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혹독하리만치 더운 여름이 되면 핵발전소를 이야기하거나 비판하기는 더 쉽지 않다. 나부터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었다면 결코 이 여름을 버티지 못했기에, 탈핵·탈송전탑 이야기를 하면 어김없이 “넌 전기 안 쓰냐?”, “원시 시대로 돌아가란 말이냐?”라는 힐난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나에게 핵발전소는 다소 추상적인 도덕, 윤리와 위험만을 의미하지 않고,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만을 뜻하지도 않는다. 나에게 핵발전소란 지난 40~50년을 핵발전소와 함께 살아온 주민들의 삶과 일상을 의미한다. 핵발전소는 나에게 누출된 삼중수소로 오염된 논과 밭의 작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농부의 슬픈 눈이다. 핵발전소는 나에게 지하수를 믿지 못해 생수를 사서 음식을 하고 커피를 끓이지만, 언제까지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주민의 한숨이다. 핵발전소는 나에게 주민들이 해준 음식과 직접 기른 블루베리로 만들어준 차를 앞에 두고 ‘먹어도 될까?’를 고민했던 순간이다. 핵발전소는 나에게 결국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는 ‘안전과 위험 사이’를 평생을, 수도 없이 고민하던 주민들이 “안전해야 해, 괜찮을 거야”라며 거는 주문이다. 이 ‘안전에 대한 주문’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나 정부가 “핵발전은 깨끗하고 안전해”라고 말하는 ‘안전 신화’와는 또 다른 슬픈 주문이다. 이 효력 없는 주문에만 기대지 않고, 또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수원과 정부의 오랜 ‘안전 신화’를 깨뜨린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 핵발전소는 2014년 8월27일 이후 10년간 자신의 직함이 적힌 관을 끌며 ‘이주’를 요구하는 ‘월성원전 인접지역 주민이주대책위원회’의 삶과 운동이다.
2021년 8월 이주대책위 농성 7주년 행사 자리에서,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이게 마지막 행사 자리가 되길 바란다. 내년에는 이주를 축하하는 파티를 열자”고 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주 요구는 끝나지 않았고 올해 그들의 싸움은 10년을 맞이했다. 안 해 본 것 없고, 안 가 본 것 없고, 안 만난 사람 없는 그들, 그들은 ‘이주만이 살길이다’가 적힌 노란색 조끼를 입고 더우나, 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월요일 자신들의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10년의 싸움을 축하해야 한다고 말해야 할까? 이주대책위 10년의 싸움은 슬프고 또한 아름답다. 그들이 외쳐온 “바라옵건대, 이주”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기에 슬프고 안타까우며 처절하다. 최근 그들의 상황은 더욱 힘들어졌는데, 농성장의 전기가 끊겼고 농성장마저 철거당할 위협 속에서 그들은 ‘안전하게 살 권리’가 아닌 ‘처절하게 싸울 권리’조차 짓밟히고 있다. 함께 싸워왔던 주민들도 하나둘씩 떠나고 있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매주 “이주만이 살길이다”를 외치고 있다.
그들은 ‘안전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라는,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평범한 일상을 10년째 요구하고 있다. 그들의 싸움과 존재가 슬프고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이유는, 여전히 그들은 포기하거나 굽히지 않고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9월21일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싸워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당신에게 핵발전소는 무엇인가? 이주대책위가 수년간 끌고 멨던 관과 상여가, 그들이 수년째 입고 싸우는 노란색 조끼가,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안전한 곳에서 살기 위해 싸우는 주민들의 인정 투쟁이 당신의 핵발전소가 되어, 함께 손을 내미는 그 누군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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