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금지한 ‘공교육정상화법’ 제대로 작동하고 있나 [왜냐면]

한겨레 2024. 9. 1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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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파친코'에서 '젊은 선자'를 연기한 김민하 배우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만약 공교육정상화법을 제대로 시행하고 있다면, 선행학습 없이도 현행 교육과정을 충실히 따라가면 충분히 원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어야 한다.

공교육정상화법 제4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학교의 교육과정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선행학습으로 인한 부작용을 예방, 시정할 수 있도록 조사·연구·개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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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해 11월16일 오전 청주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릴레이 기고 ‘변호사들의 교육 이야기’ ⑤

양세원 | 변호사

드라마 ‘파친코’에서 ‘젊은 선자’를 연기한 김민하 배우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연기력은 물론,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어로 자신의 생각을 자신감 있게 표현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러 번 인터뷰 영상을 돌려보았을 정도다. 그는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어린 시절부터 영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꾸준히 영어 교육을 시켰으며,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어머니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부모가 자녀에게 교육을 시키는 것은 오직 자녀의 더 나은 미래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임을 다시금 느꼈다.

한때 영어 조기 교육은 부모들에게 중요한 이슈였다.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입학시키기 위해 1, 2살부터 알파벳을 쓰고 읽는 훈련을 시작해야 했고, 가정에서 영어 노래와 영상, 영어 도서 읽어주기를 통해 아이에게 영어를 노출시키는 방법들이 유행했다. ‘엄마표 영어’를 전문적으로 컨설팅하고, 커리큘럼까지 제공하는 이들도 온라인에 등장했다.

최근 들어 부모들에게 더욱 중요한 과목은 수학으로 보인다. 수능에서 영어 과목이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학생들의 성적이 수학에서 갈리기 때문이다. 수학을 잘해야 원하는 대학과 전공에 진학할 기회가 생긴다. 이로 인해 선행학습의 필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4살부터 초등학교 과정의 선행을 시작해,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반복 학습을 통해 내신 성적을 높이는 전략이 보편화하고 있다. 최근 필자가 참석한 한 수학학원의 설명회에서도 바로 이러한 내용을 담은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는 사교육에만 국한한 논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표 수학’ 커리큘럼 역시 같은 선행학습의 로드맵을 따르고 있다. 다만, 사교육의 틀을 벗어나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하는 보다 즐거운 선행학습을 추구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실제로 4살부터 초등학교 1학년 문제집을 푸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학생이 중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1, 2학년 수학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 학습하는 방송 장면에서 수학 선행학습의 현실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수학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을 수 없는 것인가? 이것이 부모들이 인지해야 할 현실이라면 수학 교육 과정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닌가? 즉, 4살부터 시작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여러 번 반복 학습하는 형태로 교육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학업 성취를 위한 유일한 길이 아니라는 점은 2014년 9월12일 시행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하 공교육정상화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법은 선행학습의 부작용을 인식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제정한 것으로, 학교 시험에서 학생들이 배운 교육과정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 출제를 금지하고 있다(공교육정상화법 제8조 제3항 제1호). 또한, 입학 전형에서도 해당 학교 교육과정의 범위를 넘지 않아야 한다(공교육정상화법 제9조 제1항).

만약 공교육정상화법을 제대로 시행하고 있다면, 선행학습 없이도 현행 교육과정을 충실히 따라가면 충분히 원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선행학습 없이도 성취할 수 있다는 메시지와 현행 교육을 잘 이수하는 방법론에 대한 정보는 찾기 어렵다. 공교육정상화법 제4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학교의 교육과정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선행학습으로 인한 부작용을 예방, 시정할 수 있도록 조사·연구·개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제는 이 법이 제대로 작동하여, 사회 전반에서 선행학습보다 현행학습을 충실히 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낳는다는 확고한 메시지가 들려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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