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망신살

차동욱 동의대 행정학과 교수 2024. 9. 1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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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욱 동의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 2월 설 연휴에 성묘 겸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은 교통체증이 심했다. 차에 타고 있던 4명의 가족이 모두 지쳐갈 때, 조수석에 앉아 있던 둘째가 가족의 사주를 인터넷 무료 사이트를 이용해 봐 주면서 지루함을 떨쳐 냈다.

온 가족을 웃게 만든 건 내 사주였다. “아빠는 50대까지는 원하는 일이 성사가 잘 안 된대요. 그럭저럭 되어 가다가도 주위의 누군가가 방해를 놔서 마지막에 일이 틀어진다네요. 60대가 인생의 황금기래요.”

여기까지는 몇 년 전 호기심에 신점을 봤을 때도 들었던 이야기다. 웃음은 그다음에 터졌다. “그런데 망신살이 들어온다네요.” 아내가 박장대소를 하고, 운전하느라 긴장하고 있던 첫째도 깔깔대고 웃고, 나도 호탕하게 껄껄 웃었지만, 찝찝함이 남았다. 인생의 황금기에 들어오는 망신살은 도대체 뭔가? 뒤늦게 잘 나가는 듯하다가 결국 망신당하고 끝난다는 소린가?

망신살(亡身煞)은 ‘패가망신(敗家亡身)’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흉살(凶煞), 즉 불길한 운수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주팔자가 운명결정론이 아니듯이 망신살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다른 사람까지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망신살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사주에 망신살이 있는 사람의 특징은 일단 똑똑하고 호기심이 많은 것이라고 한다. 지식을 습득하고자 하는 열정이 매우 강한데 고집이 세다 보니 독선적으로 보일 때가 많다고 한다. 지적 욕구가 강한 만큼 박학다식한데, 그 빅데이터 급의 지식을 외부로 표출해야만 하는 성격이라서 오지랖 넓게 남의 일에 간섭하고 지적을 하다 구설수에 휘말리는 일이 많아진다.

경상도 사투리에 ‘안다이 똥파리’란 표현이 있다. ‘안다이’는 아는 체를 심하게 하는 사람을 지칭하고, ‘똥파리’는 사투리 표현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싫어하는데도 종횡무진으로 사람들 틈에 끼어드는 이를 말한다. 종합하자면 주위의 사람들이 싫어하는데도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주변 일에 끼어들어 아는 체를 하고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는 자이다. 이 ‘안다이 똥파리’ 같은 언행을 스스로 자제하지 못할 때, 망신살은 본인이나 본인 가족의 한없는 부끄러움이라는 결말에 이르게 한다. 다시 말하면, 요즘 유행어인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안 좋은 망신을 당하고, 역으로 낄끼빠빠를 잘하면 망신살이 오히려 사회적 성공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내 삶에 망신살이 들어온다는 것은 내 행동이 남들에게 잘 보이는 시기가 찾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배우로서 무대에 서 있고, 불 꺼진 극장 안에서 무대만 비추는 조명이 나를 향해 있어서 관객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수 있지만, 나는 관객석이 어두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황이 망신살이 들어 온 시기다. 한편으로는 창피할 수 있지만, 최선을 다해 관객을 즐겁게 해주고 감동을 준다면 나의 삶은 사회적 성공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 망신살이 강하게 들어 온 사람 중 대표적인 이가 대통령 부부일 것이다. 대통령의 망신살은 많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이다. 특히 대통령의 부인이 많은 국민이 영부인의 삶을 지켜봐 주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지켜보는 국민의 다수는 그다지 즐겁지가 않다. 영부인이 ‘낄끼빠빠’가 잘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부인이 명품백을 받는 영상은 말 그대로 망신살을 뻗치게 한다. 게다가 검찰은 이 명품백이 ‘접견을 위한 수단’이라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당당하게 공표한다. 국민이 검찰에게 바라는 것은 법을 어긴 황족 앞에 개작두를 대령시키는 포청천의 기개인데, 영부인에 대한 의혹들을 덮고 사뿐히 즈려밟고 가도록 해주는 카페트의 역할을 하고 있다. 대통령 부부와 검찰은 당당한데, 국민이 뻗치는 망신살에 찔려 부끄러워 죽을 판이다.


진시황식 분서갱유는 물론 불가능하고, 기록조작에 의한 기억 왜곡도 불가능한 디지털 시대에 대통령 부인의 영상과 검찰의 말이 역사로 기록되어 계속 기억될 텐데 이 부끄러운 기억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국민만이 가져야 하는지 한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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