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과학계 기관장 공모, 이대로 둘 건가

이준기 2024. 9. 1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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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ICT과학부 부장

과학계가 새 기관장 인선을 위한 공모 시즌에 돌입하면서 뒤숭숭하다. 매번 반복되는 일이지만, 최근의 공모 양상을 보면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원칙도 없고, 기준도 없는 그야말로 중구난방식 공모라 이름 붙일 만하다. 다른 공공기관 공모와 비교하긴 그렇지만, 과학계 기관장 공모 과정에서 벌어지는 후진적이고 비정상적 모습은 바뀔 기미 조차 없어 보인다.

유독 과학계 기관장 공모는 매번 늦게 시작한다. 기관장의 공식 임기가 끝나고 최소 3개월이 지나야 겨우 공모를 시작하는 게 고착화된지 오래다. 공모가 늦어지는 특별한 이유도 없다. 공모 시작까지 하세월이 걸리기 일쑤다.

늦어지는 공모 탓에 우스갯소리로 과학계 기관장 임기는 사실상 4년(3년+후임 기관장 선임될 때까지 대략 1년)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임기가 다 돼 새 기관장을 선임하기 위한 공모를 준비하려다 상위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사인(?)이 떨어지지 않아 당초 계획대로 시작하지 못하는 기관도 여럿이다. 기관장 공모에 보이지 않는 윗선(?)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정황인 셈이다.

지난 2월 임기가 끝난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총장 공모는 아직도 깜깜무소식이다. 기관장 최종 선임까지 3개월 이상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UST 총장은 기존 임기 4년에 추가 1년을 더해 사실상 5년 임기가 되는 셈이다. 지난 1월 임기 만료된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공모는 추석 명절 이후에야 새 기관장이 선임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임기 3년에 후임 기관장 선임까지 9개월 더 근무하고 퇴임하는 기형적 공모가 되고 말았다.

이런 비정상적 공모 진행은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모 출연연 기관장 공모 기간 중 해당 기관의 원장을 지냈던 전직 인사가 소셜미디어에 후임 원장이 내정됐다는 소식과 함께 그의 전공을 알리는 일이 있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후임 원장으로 거론된 인사의 비상식적인 행동이다. 그는 기관이 보유한 고(古)문서를 퇴직 후에도 수차례 반납 통보를 받았음에도 돌려주지 않다가 해당 기관이 경찰에 고발하자 그제서야 반납하는 상식 이하의 돌출 행동을 보였다. 아무리 원칙과 기준이 없는 기관장 공모라지만, 이런 사람을 한 기관을 대표하는 자리에 선임하는 우(愚)를 범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공모 시작 전에 정치인 출신 인사가 기관장으로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오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지금까지도 낙점된 인사가 가장 강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어 내정설이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우주항공청으로 이관된 이후 처음으로 진행되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기관장 공모에서도 대학교수 출신의 외부 인사가 내정됐다는 소문이 파다한 상황이다.

고질적 병폐인 내정설에 더해 유난히 이번 정부에선 이른바 '네편, 내편' 편 가르기가 기관장 공모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올초 모 출연연 기관장 공모에서는 3배수 후보에 포함된 인사가 대선 당시 민주당 관련 과학기술 정책 모임에 참여했다는 투서가 접수돼 결국 기관장에 선임되지 못했다.

또한 3년 임기동안 기관 경영을 잘해 재선임 자격을 갖추고도 진보 정권에서 선임된 기관장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연임이 불발된 기관장만 6명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 선임 기관장=연임 불가'라는 등식이 새롭게 성립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말에 선임된 과학계 기관장들의 임기가 다가오면서 이 숫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공모제 도입 이후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비정상으로 점철돼온 과학계 기관장 선임 제도를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하는 이유다. 아쉽게도 과기정통부는 기관장 공모 개선에 의지가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과학계 혁신방안에 기관장 선임 제도 개선은 포함되지 않았다. 한 과학계 기관장은 이런 얘기를 했다. "기관장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며, 기관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고. 과연 이런 역할에 적합한 과학계 기관장을 선임할 수 있는 제도가 작동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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