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로 빠져"도 알아듣는 AI···50개 언어 통·번역[스케일업리포트]
구어체 대화 특화 솔루션 주목
글로벌 OTT에 초벌 번역 제공
화자 성별까지 고려 정확성 높여
작업시간 최대 25배 단축 효과
대규모 행사·중계 때 도입 기대
“삼천포로 빠져버렸네.”
한국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이 대사는 대화가 엉뚱한 방향이 흘러갈 때 사용된다. 구글로 이 말을 영어로 번역하게 되면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I fell into Samcheonpo.”라는 황당한 결과가 나온다. 이러한 구어체 번역의 어려움을 AI 기술로 해결하는 스타트업이 바로 엑스엘에이트(XL8)다.
정영훈(사진) XL8 대표는 11일 서울 광화문 트윈트리타워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AI 기술은 전 세계의 언어 장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자사 솔루션은 콘텐츠 자막 번역은 물론 실시간 통역까지 지원해 글로벌 미디어·콘텐츠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밝혔다.
2019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설립된 XL8는 AI를 통해 영상 속 구어체 대화를 번역해준다. 번역 가능한 언어 수가 50개를 넘는다. 세계 최대 미디어 분야 번역·더빙 서비스 업체인 아이유노미디어그룹과 협업관계를 맺고 유수의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제공하는 초벌 번역을 맡고 있다. 이 번역 솔루션 ‘미디어캣’을 사용 중인 고객사는 50여 곳에 이른다.
정 대표는 “OTT가 등장하기 전에는 할리우드 영화 속 영어 대사가 다양한 국가의 현지어로 번역되는 게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다양한 국가에서 제작되는 콘텐츠가 온라인 플랫폼에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는 만큼 번역해야 하는 양이 너무 많아졌다”면서 “번역가만으로는 방대한 콘텐츠 시장에 대응할 수 없어 앞으로도 자동화 솔루션의 도입은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XL8이 처리한 데이터는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매달 번역하는 영상 콘텐츠가 6만 시간이 넘고 지금까지 번역한 영상 콘텐츠의 총 길이가 100만 시간에 달한다. 올해 초만 해도 누적 번역 데이터가 50만 시간이었는데 1년도 안돼 2배로 불어난 셈이다.
정 대표는 “영상을 업로드하면 몇 번의 클릭만으로 자동으로 대사를 추출해 타임코드를 맞추고 대사를 원하는 언어쌍으로 번역한 뒤 원하는 음성으로 더빙작업까지 지원한다”면서 “이 기술은 편리하고 일원화된 번역 솔루션으로 자리잡았으며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글로벌 콘텐츠 번역의 질적, 양적 성장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XL8 기술의 경쟁력은 통·번역의 정확성이다. 회사에 따르면 경쟁사 대비 40% 더 정확하다는 평가다. 정 대표는 “일반적인 AI 번역 솔루션은 구어체보다는 문어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XL8는 구어체에 특화된 플랫폼”이라며 “자사 AI 모델은 학습할 때 문서나 글자 데이터를 배제한 덕분에 구어체에 특화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정 언어는 물론 화자의 성별까지 고려한 번역이 가능하다는 점도 XL8의 기술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비용 및 시간 절감도 XL8 솔루션의 강점이다. 영화 한 편을 사람이 직접 번역하는 경우 최대 400시간이 걸리는 반면 XL8를 도입했을 때엔 16시간으로 확 줄어든다. 작업 시간을 최대 25배 단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 대표는 “여전히 글로벌 콘텐츠 산업에서 AI 기술의 도입은 초기 단계이며 앞으로 AI를 통해 번역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더욱 극단적으로 짧아질 수 있다”면서 “최종 검수 작업 등 사람의 손을 완전히 거치지 않는 번역도 점차 활성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XL8는 이러한 기술력을 살려 실시간 통역 솔루션 ‘이벤트캣’도 선보였다. 올해 치러지는 미국 대선을 맞아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 대표는 “미국에는 스페인어만 구사하고 영어를 잘 모르는 히스패닉이 상당히 많은데 인구 통계적으로 볼 때 히스패닉이 선거에서 스윙 보터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추세를 고려할 때 선거 캠페인 실시간 중계 때 XL8 솔루션이 도입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통역 솔루션은 한국에서도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외국 연사들이 찾는 대규모 행사나 강연에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솔루션이 이어폰이 달린 번역기를 대체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교육용 영상이나 글로벌 기업의 사내 강연 등에도 XL8 솔루션이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정 대표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2015년 컬럼비아대에서 컴퓨터사이언스 박사학위를 취득하기까지 언어 장벽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토종 한국인이었던 내가 미국에 와서 바보가 되는 곳은 대학원 연구실이 아니라 오히려 동료들과 퇴근 후 맥주 한잔하면서 나누는 대화 속 온갖 속어였다”면서 “언어 문제에 관심을 갖던 내가 구어체 번역 솔루션의 필요성을 체감한 건 이 때문”이라고 돌이켰다.
XL8에는 구글 검색팀 출신 정 대표 외에 애플 출신 AI 전문가들이 포진해있다. 세상에 없던 기술을 만들자는 일념 아래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AI로 미국에서 널리 쓰이는 솔루션을 개발해냈지만 더 이상 AI가 ‘대단한’ 기술은 아니라는 게 정 대표의 진단이다.
그는 “정보기술(IT) 회사가 컴퓨터를 잘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듯이 이제는 AI도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면서 “앞으로는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AI 기업만이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실리콘밸리에선 AI 투자의 가성비가 높지 않다는 회의론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만큼 AI 기술만으로 투자를 잘 받을 수 있는 시점은 지났다”고 부연했다.
XL8의 누적 투자 유치 규모는 150억 원이다. 지난해 9월 100억 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받았다. 연말까지 500만달러(약 67억 원) 규모의 시리즈A 브릿지 투자 유치를 추진 중이다.
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사진=권욱 기자 ukkwo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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