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댐도 철거해야 하는데…” 양구는 부글부글

박수혁 기자 2024. 9. 1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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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뉴스]소양강댐으로 고통받은 양구군, 수입천댐 건설에 전면 반대
물 필요 없고, 홍수 안 나는 지역에 왜 네번째 댐을 짓는가
댐 건설 예정지인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수입천에서 만난 박종수(사진 오른쪽)씨와 신철우 수입천댐 건설 반대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이 환경부의 일방적인 수입천댐 건설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육지 속의 섬으로 고립돼 80년 동안 피해를 겪고 있는 양구에 또 다른 댐을 추가로 건설하겠다는 것은 주민들에게 죽으라는 것과 같습니다.”

2024년 8월28일 오전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에서 만난 박종수(61)씨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944년 전력생산을 위해 화천댐이 건설되면서 양구읍 군량리와 공수리, 상무룡리 등이 수몰됐고, 1973년에는 소양강댐이 준공되면서 양구 남면 등이 물속으로 사라졌다. 1989년에는 인근에 평화의댐까지 생겼다. 사방이 댐이다. 지금까지 참았으면 충분하다. 더는 양구 주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마라.”

이미 댐 3개로 둘러싸인 `육지 속의 섬’

박씨 주위에는 ‘댐 때문에 못 살겠다. 있는 댐도 철거하라!’ ‘방산면 말살 댐 건설을 즉각 철회하라!’ ‘청정지역 양구 지키기! 수입천댐 결사반대!’ ‘삶의 터전 수몰시키는 환경부를 사형에 처한다!’ ‘고향을 잃게 하는 졸속행정! 당장 중단하라!’ ‘소양강댐, 화천댐, 평화의댐, 이번엔 수입천댐! 양구 말살 정책 포기하라!’ ‘방산면 주민 다 죽이는 수입천댐 백지화하라!’ 등이 적힌 펼침막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접경지역인 양구군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박씨가 사는 방산면뿐 아니라 양구읍과 동면 등 양구군 전역이 ‘폭풍 전야’와 같은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환경부가 7월30일 기후 대응을 위해 새로운 댐 건설 후보지 14곳을 선정해 발표했는데, 이 가운데 양구 수입천댐도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양구 수입천댐은 14개 댐 후보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저수량이 1억㎥에 이르고, 이는 동양 최대의 다목적댐으로 유명한 소양강댐 규모의 29분의 1에 이릅니다.

또다시 댐 건설이 추진된다는 소식에 방산면 전체가 벌집을 쑤신 분위기입니다. 방산면은 2001년 정부가 발표한 밤성골댐 건립 계획 탓에 통째로 물에 잠길 위기에 처했다가 주민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삭발 투쟁과 가두행진, 궐기대회 등을 전개하는 등 극렬하게 반대한 끝에 2007년에야 밤성골댐 건설 취소를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양구지역 곳곳에 수입천댐 건설 백지화를 요구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는 모습.

댐 건설 예정지 인근에서 만난 주민 김월성(49)씨는 댐 건설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김씨는 10여 년 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두타연 가까운 곳에 집을 짓고 농지를 사서 이제 겨우 자리잡은 상태였습니다. 김씨는 “댐이 생기면 피땀을 쏟아 기반을 마련한 이곳을 떠나야 한다. 마을주민들과 9월 초부터 두타연 앞에서 비무장지대(DMZ) 평화의길 쉼터도 운영할 계획인데, 댐이 생기면 두타연이 없어진다니 누가 여길 오겠냐”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주민 유승철(63)씨는 수입천댐이 오직 수도권만을 위한 댐이라고 성토하고 나섰습니다. 유씨는 “수입천댐은 지역 주민에게는 아무런 이익이 없다. 댐 주변 지역 지원은 외면한 채 양구 물을 끌어다가 수도권 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인데 수도권 주민은 일류 국민이고, 양구 주민은 삼류 국민인가”라고 지적했습니다. 신철우 수입천댐 건설 반대추진위원회 부위원장도 “양구는 이미 2021년 수입천 상류인 동면 비아리에 댐을 건설해 안정적으로 용수를 공급받고 있고, 그동안 장마와 태풍을 겪을 때마다 전국 곳곳이 수해로 난리가 났어도 방산면은 별다른 수해를 겪지 않았다. 우리에겐 용수 공급과 홍수 조절을 위한 댐이 필요 없다”고 말했습니다.

수도권에 필요한 댐, 왜 강원도 양구에 짓나

정부에서 추진하는 일이지만 지역의 여당 정치인들도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소속인 서흥원 양구군수와 한기호 국회의원(춘천·철원·화천·양구을)은 정부 발표 직후 국회까지 찾아가 계획 철회를 요구하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서흥원 양구군수는 “환경부의 수입천댐 건설 발표는 주민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도 무시하는 정책”이라며 “주민들은 더 이상 불합리한 희생 강요를 받아들일 수 없고 계획을 철회할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기호 의원도 “국가 발전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강원도는 늘 희생하고 피해를 감수해왔다”며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정부 차원의 대책도 없이 양구군에 또다시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한다면 군민들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결사항전을 다짐했습니다.

2024년 8월12일 수입천댐 건설에 반대하는 양구 주민들이 강원도청 앞에서 환경부 규탄 집회를 여는 모습.

수입천댐 건설로 천혜의 자연환경이 훼손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양구군 대표 관광지인 두타연 수몰이 대표적입니다. 두타연은 60여 년 동안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던 지역으로 2013년 환경부가 생태관광지역으로, 2014년에는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한 곳입니다. 특히 생태환경이 그대로 보존돼 비무장지대 희귀 동식물을 쉽게 관찰할 수 있고, 천연기념물인 열목어와 산양의 최대 서식지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또 수입천은 풍부한 자연환경과 수려한 경관에다 금강산에 가는 옛길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부 쪽은 “한강권역은 소양강·충주댐 여유 물양 부족과 장래 용수 수요 증가 등의 영향으로 생공용수가 부족해질 전망이다. 수몰되는 지역은 민통선 이북으로 민가 수몰 피해도 거의 없고 댐에서 직접 취수하지 않아 상수원보호구역 등 규제도 받지 않는다. 또 기존 댐 후보지 안 외에 하류 4㎞ 지점으로 위치를 조정하면 두타연 수몰을 피할 수 있는 대안도 있다”며 추가 댐 건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소양강댐이 있는 춘천에서는 소양강댐 준공 50돌을 맞아 2023년부터 댐 건설로 인한 피해를 제대로 보상받기 위한 법 제정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번지고 있습니다. 춘천과 화천, 양구, 인제 등 소양강댐 인근 4개 시·군 지방의원들은 ‘소양강댐 피해지역 공동대책위원회’까지 꾸렸습니다. 박기영 소양강댐 피해지역 공동대책위원장은 “고향 잃은 수몰민, 댐으로 인한 주변지역 냉수·안개 피해 등과 같은 희생을 더는 참을 수 없다. 이에 반해 댐 관리자와 수도권 주민들은 천문학적 편익을 얻고 있다. 이제는 피해 지역과 함께하려는 의지와 실천이 필요한 때”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양구군 등, 댐 피해 보상받으려는 법 제정 추진

춘천·철원·화천·양구갑이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은 “정부의 댐 건설 발표가 댐 주변 지역의 주민이나 지방자치단체와 제대로 된 협의도 없이 되고 있다. 댐이 건설되면 마을 수몰과 경작지 감소, 지역 단절, 물류비 상승, 댐 주변 규제로 인한 재산권 침해 등 심각한 피해가 있지만 지금까지 주변 지역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주민들이 원치 않는 댐 건설 계획부터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통보하는 것은 불행과 분란의 시작일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글·사진 양구=박수혁 한겨레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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