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사라진 것에 대한 아련함…울산 장생포의 문화적 부활

성연재 2024. 9. 1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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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관련된 보고 즐길 거리 다양…수소버스 타면 편리

(울산=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울산은 명실공히 고래의 도시다.

수천 년 전 선사시대에 새겨진 울산의 반구대암각화에는 포경 장면이 온전히 표현돼 있다.

반만년 포경 역사의 막을 내린 것은 88올림픽이 계기다.

1986년 포경이 중단되기 전까지 장생포는 한국 포경 산업의 중심지였다.

포경 중단으로 이 지역은 급격히 쇠퇴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장생포의 역사적 의미와 향수를 되살리려는 시도가 주목받고 있다.

장생포가 문화적 향기 그윽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울산 장생포 고래박물관 앞의 고래 조형물 [사진/성연재 기자]

사라진 한국 귀신고래…'인디아나 존스'의 전설을 찾아서

한때 한국 포경산업의 중심지였던 장생포에 과거의 추억 가득한 고래문화마을이 들어섰다.

1900년대 초 번성했던 포경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이곳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10만2천705㎡ 규모의 부지에 들어선 23개의 건물은 각각 특색 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책방, 중국집, 선장의 집 등 다양한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를 걷다 보면 옛 장생포의 활기찬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교복점에서 빌려 입은 세라복 모양의 교복 차림을 한 기혼 커플의 모습은 흐뭇함을 불러일으켰다.

교복 차림의 커플은 동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결혼 전 연애 시절의 풋풋함을 다시 느끼는 듯했다.

'동네점빵'이라는 간판을 단 가게에서 만난 주민의 이야기는 이 마을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그의 가족이 고래잡이로 생계를 이어갔다는 이야기, 그리고 88올림픽을 앞두고 포경이 금지되면서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사연을 들려줬다.

교복을 입고 학창 시절로 돌아간 가족 [사진/성연재 기자]

마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지폐를 문 강아지상'은 당시 장생포의 번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장생포에서는 개도 1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단연 '인디아나 존스'의 실제 모델인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와 관련된 것이다.

7번째 건물인 '앤드루스의 집' 앞에서 그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앤드루스는 1910년대 '악마 고래'의 소문을 쫓아 한국에 왔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고래를 '한국 귀신고래'로 명명하면서 세계에 알렸다.

그는 장생포가 한국 귀신고래의 번식지임을 밝혀내며 한국의 고래 연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귀신고래는 1977년 이후 한국 바다에서 목격된 사례가 없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포경 산업은 장생포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

반면 귀신고래의 멸종이라는 안타까운 현실도 함께 가져왔다.

고래문화마을은 이처럼 과거의 번성과 함께 오늘날 되돌아봐야 할 중요한 과제도 함께 던져주고 있다.

고래박물관의 귀신고래 실물 모형 [사진/성연재 기자]

고래박물관·고래바다여행선

장생포는 고래를 비롯한 해양을 배경으로 한 콘텐츠의 보고다.

2005년 조성된 고래박물관이 그 대표적인 곳이다.

고래박물관은 1986년 포경이 금지된 이래 사라져가는 포경유물을 수집, 보존·전시하고 고래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제공한다.

고래박물관 3층에는 큰 고래 뼈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거대한 귀신고래 모형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3층에서 아래층으로 떨어지는 유아용 미끄럼틀에서는 아이들의 환호성이 잇따른다.

3층 전망대 방이 인상적이다.

장생포항 전망이 바라보이는 이곳에서는 5차 전망대 특별전 '8개의 미장센, 장생포의 꿈' 그립다 그리다' 전이 열리고 있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 8명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고, 일부 작가들이 바깥 풍경을 스케치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폭우로 시야가 좋지 않았지만, 작가들의 손에서는 아름다운 장생포의 모습이 담겼다.

출구 앞의 기념품 가게에는 고래를 테마로 한 다양한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고래 인형과 친환경 재생 플라스틱으로 만든 우산 등이 인상적이었다.

카페와 겸하고 있는 기념품 가게 주인이 무척 친절했다.

고래를 관찰하는 고래바다여행선 [사진/성연재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돌고래 수족관이 있는 고래생태체험관도 빼놓지 않아야 할 명소다.

관람객이 들어서면 돌고래들이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와 아는 척을 한다.

고래박물관 바로 옆은 고래바다여행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다.

고래바다여행선은 550t 규모로 뷔페식당, 공연장, 회의실, 휴게실, 수유실 등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 기업·단체 워크숍, 선상 결혼식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운항 시에는 특색 있는 공연과 함께 각종 볼거리와 게임 등도 선보인다.

고래 탐사는 제1·제3 항로로 3시간, 연안 투어는 제4 항로를 이용해 1시간 30분 소요된다.

이날은 출항과 동시에 폭우가 내려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다소 아쉬웠다.

울산시남구도시관리공단은 9월 28일과 19일 고래바다여행선 선상 파티 특별 운항도 할 예정이다.

문화의 향기로 가득한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한 장생포 문화창고 [사진/성연재 기자]

예술 향기 가득한 장생포 문화창고

생선 냄새 가득했던 수산물 가공창고가 이제는 문화의 향기로 가득한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울산시 남구 장생포에 있는 '장생포 문화창고'는 버려진 어업 창고를 새롭게 단장, 고래 도시 장생포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문화 콘텐츠로 채워진 복합문화 예술공간이 됐다.

이러한 변신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로컬100'(지역문화매력 100선)에 복합 문화공간인 '지관서가'와 함께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지관서가는 울산시와 SK가스의 협력으로 탄생한 프로젝트로, 지역의 유휴 공간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이다.

2021년 울산대공원에 1호점을 연 이후 현재 6호점까지 개관됐으며, 그중 한 곳이 바로 장생포 문화창고 내에 자리 잡고 있다.

장생포 문화창고는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매력을 선사한다.

거대한 수산물 창고의 6개 층 곳곳에서 다양한 전시회와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이 건물 3층 미디어아트 전시관에서는 인상주의 화가 모네를 주제로 한 비디오 아트 전시 '클로드 모네…빛의 시인 모네가 사랑한 순간들'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넓은 내부 공간 전체가 모네의 그림을 모티브로 한 디지털 콘텐츠로 가득 찼다.

그림 속 인물이나 배가 움직이며 배경으로 흐르는 클래식 음악과 어우러져 관람객들을 모네의 예술 세계로 초대한다.

전시회는 무료로, 10월 말까지 계속된다.

3층 미디어아트 전시관에서 열리는 클로드 모네 매체예술 [사진/성연재 기자]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다채로운 전시

또 다른 인상적인 전시는 국정교과서 삽화가로 유명한 김태형 화백의 작품전이었다.

전시장에는 많은 이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의 표지 그림을 비롯해 친숙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1916년 개성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일본 도쿄 태평양미술학교에서 수학한 후, 1942년 조선미술전람회 제21회에서 동양화 부문 입선하며 화가로서의 길을 시작했다.

그는 1946년부터 문교부(현 교육부) 편수국 위촉 화가로 교과서 삽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1976년까지 30년 동안 산수, 사회 등 전 과목에 걸쳐 삽화를 담당했다.

그의 교과서 그림들은 해방 이후 반세기 동안 한국인의 삶을 기록한 귀중한 사료로서 가치도 인정받고 있다.

문화창고의 최상층에 위치한 지관서가에서는 멀리 부두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수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는 풍경은 울산이라는 산업도시의 특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광경은 언뜻 삭막해 보일 수 있지만, 수십척의 배들이 어지럽게 정박해 있는 광경과 실내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은 묘하게 잘 어울린다.

번성했던 어업의 폐허 위에 뿌려진 문화의 씨앗이 싹을 틔워 이제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문화 공간이 되고 있다.

국정교과서 삽화가로 유명한 김태형 화백의 작품전 [사진/성연재 기자]

태화강그라스정원

바닷가쪽만 여행하기엔 울산은 너무나 큰 도시다.

우선 순천만국가정원에 이은 한국의 제2호 국가정원인 태화강국가정원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태화강국가정원 만큼 주목받고 있는 곳이 생겼다.

태화강 둔치에 조성된 생활밀착형 실외정원 '태화강 그라스정원'이다.

태화강 둔치에 조성된 생활밀착형 실외 정원 '태화강 그라스정원' [사진/성연재 기자]

산림청 생활권역2공모사업으로 국비 10억원을 유치해 조성된 이곳은 총 8천㎡ 면적에 휴게 공간과 정원 공간이 마련돼 있다.

버베나와 팜파스 그라스 등 그라스류와 다년생 초화 등 53종 3만670그루가 심겼다.

가을이면 핑크뮬리가 장관을 이룬다.

그라스류는 잡초에 강하고 매년 새롭게 싹을 피우는 다년생 식물로, 계절별 다른 색을 연출하는 장점이 있다.

이곳에는 폭 3m, 연장 1.5㎞의 황토 맨발길이 마련돼 그라스정원과 어우러진 힐링 명소가 됐다.

맨발 황톳길은 주말과 휴일이면 하루 2천여 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끄는 바람에 폭을 1.5m에서 3m로 넓히고, 길이도 1.5㎞로 확장했다. 필자가 찾은 날에도 많은 시민이 맨발 걷기를 한 뒤 수돗가에서 발을 씻고 있었다.

울산 여행을 계획한다면 태화강그라스정원을 꼭 들러보자.

도심 속 자연이 선사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기념품을 만날 수 있는 고래박물관 카페 [사진/성연재 기자]

Information

장생포 여행에는 수소 버스를 타면 편리하다.

808번 관광 수소 버스를 타는 '원스톱 남구 여행' 프로그램이 지난달 1일부터 가동되고 있다.

태화강역에서 승차한 관광객들은 장생포와 태화강전망대, 삼호철새마을까지 둘러볼 수 있게 됐다.

소요 시간은 1시간30분가량이며 수소 버스 3대가 매일 오전 7시 20분부터 밤 10시 20분까지 운행된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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