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유골이라도…” 월미도 선주민들, 74년의 염원

이승욱 기자 2024. 9. 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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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당시 폭격으로
민간인들 희생·고향서 쫓겨나
11일 인천중구 월미공원에서 한인덕 월미도귀향대책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승욱기자

“미군 폭격으로 집에 있던 아버지는 완전히 타버렸지. 식별이 안 되니까 어머니가 치아 안쪽에 표식으로 아버지를 알아보고 집 앞에 대충 가매장을 했어.”

11일 오전 9시30분 인천 중구 월미공원에서 만난 정지은(81)씨 공원 내 제물포마당을 한쪽을 가리켰다. 정씨가 옛날 집 위치로 지목한 곳에는 뱃머리를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돼있었다. 항구도시 인천을 상징하기 위해 만든 조형물이지만 정씨는 이 조형물을 볼 때마다 옛 생각이 나 마음이 아프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미군 군부대가 이곳에 들어서면서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최소한 아버지 유골이라도 좀 보관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군부대를 만들면서 유골을 바다로 싹 밀어버렸는지 아직도 월미공원 어느 한 곳에 묻혀있는지…”

정씨가 말한 미군의 인천 월미도 폭격은 인천상륙작전이 있기 5일 전인 1950년 9월10일 아침 7시부터 3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이날 미군은 네이팜탄을 투하하고 기총소사(항공기에서 기관총을 쏘는 일)를 진행했다고 한다. 북한군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인천 상륙에 방해될 주요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민간인의 피해가 컸다. 2008년 3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미군의 월미도 폭격으로 100여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씨 가족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외갓집이 있던 인천의 옛날 송도로 피난을 갔다. 피난 생활 중 정씨의 부친은 집에 있던 현금 등을 가져오기 위해 월미도에 들어갔다가 북한군에 잡혔다고 한다. 이후 월미도 폭격과 인천상륙작전이 발생한 뒤 정씨의 모친이 집에 가서 부친의 주검을 발견했다. 정씨는 “송도 감나무에서 월미도를 보니까 막 불이 나고 난리였다”며 “어머니가 그 광경을 보고는 ‘이놈 자식아 니 아버지 돌아가시는가 보다’라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월미도에 걸어갔다 오신 것”이라고 말했다.

유정복 인천시장과 정해권 인천시의장, 양용모 해군참모총장이 헌화를 위해 월미도원주민희생자위령비 앞에 서있다. 인천시 제공

폭격 당시 9살이었던 이애자(82)씨는 월미도 폭격으로 둘째 오빠를 잃었다. 이씨는 “아침이 되기 전에 갑자기 폭탄이 떨어져서 온 가족이 바닷물이 빠진 갯벌을 통해서 도망을 갔다”며 “나랑 쌍둥이 언니가 계속 늦어지니까 둘째 오빠가 우리 둘을 빨리 데리고 오려고 하다가 폭탄을 맞아서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결국 나랑 언니를 끌고 갯벌을 빠져나온 뒤 의식을 잃었고 10일 정도 뒤에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죽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전쟁 뒤에도 트라우마 탓에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고 한다. 이씨는 “쉰살이 넘어서도 비행기 소리가 들리면 무서웠다”며 “당시 기억이 떠오르고, 그때 우리 둘째 오빠가 아니라 내가 죽었어야 했다”고 했다.

이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고향인 월미도로 돌아가지 못했다. 전쟁 뒤 월미도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폭격에서 생존한 주민들은 고향에서 쫓겨났고 미군이 철수한 뒤에는 해군이 주둔했다. 2001년에는 인천시가 해군으로부터 해당 땅을 사들인 뒤 월미공원을 조성했다.

주민들은 월미도 원주민의 희생을 기리고 생존자들의 귀향을 위해 1997년 월미도 귀향대책위원회를 조직했고, 2007년부터 인천 중구 월미공원에서 매년 월미도 희생자 위령제를 열어왔다. 2021년에는 위령비를 세웠고 지난해에는 위령제에 해군 참모총장과 해병대 사령관 등 군 고위 장성이 참석하기도 했다. 올해도 11일 월미공원에서 추모 및 헌화행사를 했다. 이날 한인덕 월미도귀향대책위원장은 “월미산에 올라 우리 유족들이 둘러앉아서 앞바다를 바라보며 또 나날이 발전, 변모해가는 고향의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한 마음으로 망향가를 합창하는 날이 오길 손꼽아본다”고 말했다.

다만, 이날 추모식에서는 대규모로 진행되는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김복영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장은 “(월미도 폭격 등이) 대한민국의 자랑이 될 수 있나. 미군과 해병대가 이곳을 어떻게 만들었냐”며 “이 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모두 사랑하는 가족이었고 인천시민, 대한민국 국민이었다”고 말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편 인천시는 지난해 진실화해위의 집단희생·적대세력사건 집중 조사사업의 목적으로 월미도 미군 폭격사건 구술채록 사업을 진행했다. 인천시가 월미도 미군 폭격과 관련해 이 같은 구술채록 사업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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