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조달 왜 中企만"… 재지정 놓고 중견기업 반발
담합·품질 저하로 취지 무색
올해 말 품목 재지정 앞두고
아스콘·PVC 수도관 등 12개
산업부, 지정 제외 의견 제출
중견련 "기업성장 가로막아"
中企 "최소 안전망 확대를"
중견기업 A사는 최근 미래 신사업으로 전기차 충전장치 핵심 기술을 개발해 상용화에 매진해왔다. 하지만 전기차용 충전장치가 내년부터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신사업은 전면 재검토 대상이 됐다. A사 관계자는 "공공조달 시장 의존도가 높은 일부 업종의 중견기업은 대체 시장이 없어 인력 감축과 기업 분할 등을 통해 덩치를 줄여 오히려 중소기업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초기 시장 형성 단계인 신산업 품목은 수출을 위해 국내 시장에서의 납품 실적이 필수인데, 중견기업은 신제품을 개발해도 조달 시장에 참여할 수 없어 애로가 크다"고 호소했다.
'아스팔트 콘크리트(아스콘)' 제조업을 바탕으로 2009년 설립된 B사는 품질 개선과 신제품 개발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 설립 7년 만에 국내 아스콘 시장 1위를 꿰찼다. 2018년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 B사는 2020년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급속한 성장이 오히려 회사에 독이 됐다. 아스콘이 경쟁제품으로 지정된 탓에 관급 시장에서 수주가 뚝 끊긴 것이다. B사 관계자는 "제도적 장벽에 막혀 매출이 급감했다"고 말했다.
과도한 중소기업 보호와 기업 규모 위주 정책이 시장 왜곡과 산업 경쟁력 저해 같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순간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 또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같은 각종 규제의 대상이 되고 정책 지원 대상에서도 배제되면서다. 중견기업과 대기업은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국민경제 기여도가 높은데도, 오히려 차별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1일 매일경제 취재 결과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에 '2025~2027년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 지정 반대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전성이 중요한 전기차용 충전장치, 관급 시장 의존도가 높은 폴리염화비닐(PVC) 수도관과 아스콘, 독점 및 담합 우려가 높은 상업용 가스레인지와 콘크리트 파일을 비롯한 총 12개 제품에 대해 공공조달 시장에서 중견기업과 대기업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경쟁제품으로 지정되면 공공기관이 해당 제품의 조달 계약을 체결할 때 중소기업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대기업 또는 수입 유통업체 등에 의해 판로가 축소된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2007년 도입됐다. 중기부는 기존에 지정돼 있는 200여 개 제품이 올해 말로 효력이 만료됨에 따라 내년부터 3년간 새롭게 적용될 제품을 검토하고 있다. 10개 이상 중소기업(신산업 제품은 5개 이상 중소기업)이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 지정을 요청하면 해당 제품 분야 육성, 판로 지원 필요성 검토, 이해관계자(관계부처와 대기업·중견기업 등) 협의를 비롯한 절차를 거쳐 오는 11월 말 최종 지정 여부가 결정된다.
문제는 일부 제품에서 제도 도입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년간 경쟁이 제한되면서 참여 기업의 기술 부족과 담합 같은 도덕적 해이가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관급 시장 거래 비율이 높은 아스콘이 대표적이다. 아스콘은 공급권역이 한정돼 소규모 다수 업체가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특히 공공조달 시장의 95%가 조합 중심의 독점 공급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전국 500여 개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는 최근 중기부에 아스콘 업종을 내년부터 3년간 다시 경쟁제품에 지정해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아스콘은 2007년부터 경쟁제품으로 지정돼 아스콘 업체들은 공공조달 입찰에서 조합을 통해 물량을 배정받아왔다. 2022년 정부는 아스콘을 수도권과 충청 지역에 한해 제한적으로 중견기업에 문호를 열어준 상황이다.
반면 중견기업연합회는 내년부터 아스콘을 경쟁제품 지정에서 완전히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양균 중견련 정책본부장은 "아스콘 공급이 조합 중심 독점 구조로 기업 간 경쟁이 제한돼 품질 개선과 신기술 개발 등 관련 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본부장은 "입찰 담합과 부실 납품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를 보완하고 있지만 여전히 담합이 반복되는 등 폐해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단순한 중소기업 판로 지원을 넘어 국가 제조 기반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더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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