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양승태 항소심 시작···쟁점은 1심 무죄였던 ‘직권남용죄’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항소심 재판이 11일 시작됐다.
서울고법 형사14-1부(재판장 박혜선)는 이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모두 47개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을 열었다.
사법농단 사건은 2011년 9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재직한 양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와 함께 ‘상고법원 도입’에 박근혜 정부 도움을 받을 목적으로 사법행정권을 남용하고 법관 독립을 침해했다는 사건이다. 대법원장이 직무와 관련해 형사재판에 넘겨진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처장은 재판 개입,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법관 비위 축소·은폐 의혹 등 47개 혐의로 2019년 1~2월 기소됐다. 기소된 지 5년 만인 지난 1월26일 1심 법원은 이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법원행정처에서 일부 재판 개입과 법관 독립 침해 행위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처장이 애초에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남용할 수 없다고 봤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직무 권한이 인정되는 공무원이 그 권한을 남용해야 하는데, 사법행정권자에게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애초에 없었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권한 없이 남용 없다”는 말로 요약된다.
검찰 “원심 직권남용 범위 오인”
피고인 측 “항소이유 법정 모욕죄 수준”
양 전 대법원장 등 피고인 측과 검찰은 항소심 첫 공판에서부터 ‘직권남용죄 성립’ 여부에 대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처장은 사법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외관을 갖췄으나 실질적으로는 구체적인 재판의 절차와 결과에 개입함으로써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적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정상적인 직무 권한인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것으로, 원심은 직권남용 범위를 오인했다”고 항소 이유를 설명했다.
검찰은 사법농단 사건으로 별도의 재판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사건을 병합해 심리해달라고도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임 전 차장 사건은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처장 사건 공소사실과 60%가 공통되고, 공통된 공소사실은 피고인들과 임 전 차장이 공범 관계에서 저지른 범행과 관련이 있다”며 “공통된 공소사실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이 내려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재판부에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 등과 달리 임 전 차장은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오는 26일 항소심 재판이 예정돼 있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은 “1심 재판부의 법리 판단은 적절하다”며 “다만 결과가 무죄이지만 1심 재판부가 검찰의 증거능력 주장을 대폭 수용하고 변호인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게 많아 이와 관련해 바로 잡히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전 처장 측 변호인은 “‘제 식구 감싸기’ 등 검사의 항소이유서 내용은 외국에서는 법정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는 정도”라며 “(항소이유서에 대한) 답변을 쓰면서 굉장히 분개했다”고 말했다. 이어 “원심에서 ‘피고인들이 공모하지 않았다’는 부분이 꽤 나오는데, 공모공동정범이 성립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직권남용죄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 무죄인 것이라 저희는 이 부분에 집중해 변론하겠다”고 말했다. 고 전 처장 측 변호인은 “이미 대법원은 확정 판결로 ‘사법행정권자는 재판권에 개입할 직권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검찰은 대법원 판단을 무시하겠다는 것이냐”고 말했다.
‘직권남용죄 성립’ 판단, 1·2심 다른 판결도
이번 사건의 핵심인 직권남용죄 성립 여부는 항소심 재판 내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앞서 사법농단 사건 관련 다른 사건에서 직권남용과 관련한 해석이 한 차례 나온 적 있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 대해 2021년 3월 1심 재판부는 직권남용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일반적 직권의 정당한 범위를 벗어났더라도 그 행위 내용과 일반적 직권에 속하는 내용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정도로 관련성이 인정된다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로 인정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2022년 1월 2심에선 판단이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직권남용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이들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시도를 하고 헌법재판소에 파견 법관을 이용해 내부 사건 정보와 동향 수집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이날 첫 재판을 연 항소심 재판부는 앞으로 4차례에 걸쳐 더 재판을 열고 쟁점을 살피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검찰 측에 증거계획서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검찰이 이날 요청한 임 전 차장 사건과의 병합 요청에 대해서는 “법정 외에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court-law/article/202401282057005
https://www.khan.co.kr/national/court-law/article/202401282057015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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