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본질은 '포르노 대량제작 사태'…정부가 공범"
권김현영 소장 "성착취의 방식·경로 진단 필요"
서지현 전 검사 "보여주기식으론 아이들 못 지켜"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여성단체들이 긴급 집담회를 열어 딥페이크 성착취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정부와 정치권의 대책을 촉구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6개 여성단체는 전날(10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중부여성발전센터에서 '일상을 위협하는 사이버 생태계의 여성주의적 전환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긴급 집담회를 열었다.
집담회에는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서지현 전 검사(전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TF' 팀장), 강현주 전기전자공학부 박사, 장병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장이 참여해 이번 사태에 대한 각계의 경험을 공유하고 진단을 내놨다.
첫 발제자로 나선 권김 소장은 이번 사태를 '성착취'가 아닌 '딥페이크 포르노 대량제작 사태'로 명명해야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김 소장은 "성착취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경로로 일어났는지에 대한 설명과 진단이 필요하다"며 "포르노라는 오랜 문제가 새롭게 다시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성착취'라는 말은 상황을 제대로 보게 만드는 언어라기엔 광범위해서 설명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권김 소장은 포르노의 특징을 짚으며 산업으로 구축된 포르노 생태계가 이번 사태의 토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포르노는 출연 여성을 인격적인 공감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연출하고 이때 여성은 성적 존재가 아니라 남성 성욕을 위한 감정적 상호 교류가 불가능한 존재로 그려진다"며 "여기서 상당수의 남성들은 집단적으로 계열화되어서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사회 정의의 감각을 상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포르노를 통해) 남자들은 여성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남성 자신의 관점으로만 알게 된다"며 "남자들이 자신과 함께 해던 의미 있고 구체적 개인으로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 것과 연관된다"고 '지인능욕' 등을 가능케 한 맥락을 설명했다.
집담회에는 성범죄 전담 검사이자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이었던 서지현 전 검사도 참여했다. 서 전 검사는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티에프(TF) 팀장을 맡으면서 지난 2022년 4월 60여개 법률개정안을 담은 권고안 11개를 내놓은 바 있다.
당시 권고안의 주제는 ▲성범죄 피해자 원스톱 지원 ▲불법영상물 삭제 차단을 위한 응급조치 ▲언론 등 2차 가해 방지 ▲솜방망이 처벌 방지 ▲비신체적 성범죄 대응 ▲법정의 마녀사냥 방지 ▲피해 영상물의 효율적 압수와 재유포 방지 ▲성적 수치심 등 부적절한 용어 개선 ▲성범죄 관련 몰수 개선과 피해자 지원 ▲피해자 알권리 보장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를 위한 형사배상명령제도 개선이었다.
서 전 검사는 이같은 권고안의 주요 내용을 조목조목 짚으며 정부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보여주기식 처방만 할 뿐 제대로 된 역할을 해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정보통신망법·방송통신위원회법 등 현행법상 영상물의 차단·삭제를 요청하는 기관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제한돼 있어 수사기관이 범죄 영상물을 인지하더라도 방심위를 거쳐야만 이를 차단·삭제하도록 요청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서 서 전 검사는 당시 수사기관의 디지털성범죄물 초기 차단·삭제를 위한 '응급조치법' 신설을 제안했으나 "기관에서는 '예산과 인력을 뺏기기 싫다' '일이 많아지니까 싫다'라고 반응했다"고 전했다.
서 전 검사는 또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만들어야 할 법과 제도를 만들지 않아서 생겨난 고통"이라며 "지금도 기술은 발전하고 있는데 국가는 일이 생길 때만 보여주기식 처방을 하고 이내 다시 '제로'가 된다. 이렇게 해선 절대로 성범죄를 막을 수 없고 아이들을 지킬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고 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기구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여성단체로 피해자 곁을 지키며 피해자의 고통을 키운 법적·제도적 미비점을 지적했고, 강현주 전기전자공학부 박사는 현재 AI 딥페이크 기술과 이것이 만들 미래를, 장병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장은 학교 현장의 부족한 성교육 문제를 지적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집담회에는 현장에 100여명, 유튜브 생중계에 500여명이 모여 모두 600여명이 집담회에 참여했다. 이들은 "성평등 퇴행시킨 정부가 공범이다"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일상을 쟁취하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공감언론 뉴시스 f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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