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항소심 첫 재판, 양승태 전 대법원장 “혐의 부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76·사법연수원 2기)이 항소심 첫 재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월 1심 재판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4-1부(부장판사 박혜선 오영상 임종효)는 11일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69·11기)·박병대(67·12기) 전 대법관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에 대한 2심 첫 공판을 열었다. 통상 첫 공판에서는 검찰과 피고인 측의 항소 요지, 증인신청 관련 내용을 논의한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 측은 “원심의 판단에 사실을 오인하고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항소 이유를 밝혔다. 검찰 측은 “피고인들은 사법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외관을 갖췄으나, 실질적으로는 구체적인 재판의 절차와 결과에 개입함으로써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적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이런 피고인들의 행위는 정상적인 직무 권한인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원, 고 전 대법관 측은 모두 혐의를 부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결론적으로 저희 입장은 검사의 항소를 기각해달라는 취지”라고 했다. 그는 “검사가 원심 판단이 왜 부당한지, 왜 위법한지에 대해서 오늘 구술 뿐만 아니라 서면에 의해서도 냈는데, 별다른 주장이 없다”며 “검사의 주장으로 현재 상태에서 원심의 판단을 뒤집기에 부족하다고 보인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또 “1심 판단 결론(무죄)과 별개로,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가) 검사의 주장을 대폭 수용하고 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다”며 “항소심 재판부에서 그런 부분을 면밀히 검토해달라”고 했다.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검찰의 항소 이유서를 보면 낯이 뜨겁고 울분을 다스리기 어렵다”며 “(검찰 측은) ‘원심이 부화뇌동해 피고인들을 위한 재판을 진행했다’ ‘제 식구 감싸기’ ‘우리 대법원장님, 행정처장님 구하기에 급급했다’ ‘온정주의, 조직 이기주의에 따라 재판을 진행했다’ ‘법관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태도다’ 등 (라고 썼는데) 이러한 항소 이유서는 외국에서는 법정 모욕죄로도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 전 대법관 측 변호인은 “사법부의 위상을 강화한다는 기본적인 목적은 법원에게 부여된 헌법적인 사명”이라며 “이것을 공소사실마다 왜곡하고 있는 것부터 비현실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에 기하는 프레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검사가 항소 이유서에서 주장하는 사실 오인 법리 오해의 주장들 모두 부당하므로 무죄를 유지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재판부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과 이 사건 재판을 병합해서 심리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임 전 차장은 직권남용, 직무 유기, 공무상 비밀누설, 위계공무집행방해 등 30여개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지난 2월 1심은 임 전 차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임 전 차장은 이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이에 고 전 대법관 측은 “1심에서도 이미 동일한 취지의 병합신청이 있었으나 당시 재판부는 분리해서 진행하는 것이 절차 진행과 실체적 진실 발견 측면에서 더 좋다고 판단했다” 반대 의견을 밝혔다.
재판부는 두 사건의 병합 여부를 별도로 판단하겠다고 했다. 다음 공판은 오는 10월 23일로 잡혔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2017년 대법원장으로 재직 당시 상고법원 설립 등 대법원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박 전 대법관, 고 전 대법관 등과 함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청구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 등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를 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대법원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헌재 파견 법관을 이용해 헌재 내부 정보를 수집하고 대법원과 중복으로 진행하는 사건에 대해선 조기 선고 절차를 진행하도록 한 혐의,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하고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 국제인권법연구회와 그 소모임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압박을 검토한 혐의 등도 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총 47개에 달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2019년 2월 기소됐다. 290여회 재판 끝에, 검찰은 지난해 9월 결심 공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에게는 각각 징역 5년, 징역 4년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1월, 양 전 대법원장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대법원 관계자들이 일부 재판 개입 등을 시도한 점은 인정했지만,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가담하거나 지시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함께 기소된 고 전 대법관과 박 전 대법관도 같은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李 ‘대권가도’ 최대 위기… 434억 반환시 黨도 존립 기로
- 정부효율부 구인 나선 머스크 “주 80시간 근무에 무보수, 초고지능이어야”
- TSMC, 美 공장 ‘미국인 차별’로 고소 당해… 가동 전부터 파열음
- [절세의神] 판례 바뀌어 ‘경정청구’했더니… 양도세 1.6억 돌려받았다
- 무비자에 급 높인 주한대사, 정상회담까지… 한국에 공들이는 中, 속내는
- 금투세 폐지시킨 개미들... “이번엔 민주당 지지해야겠다”는 이유는
- 5년 전 알테오젠이 맺은 계약 가치 알아봤다면… 지금 증권가는 바이오 공부 삼매경
- 반도체 업계, 트럼프 재집권에 中 ‘엑소더스’ 가속… 베트남에는 투자 러시
- [단독] 中企 수수료 더 받아 시정명령… 불복한 홈앤쇼핑, 과기부에 행정訴 패소
- 고려아연이 꺼낸 ‘소수주주 과반결의제’, 영풍·MBK 견제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