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내수 연결고리 끊은 주범 : 고금리일까 대기업일까 [마켓톡톡]
한은-KDI 경기 논쟁 1편
한은 “실질소득·고용연계↓” 문제
KDI “고금리 때문에 내수 부진"
수출 11개월 증가에도 소비 실종
2분기 경제 역성장 원인 놓고 이견
# 수출은 11개월 연속 증가했다. 코스피 상장사들은 올해 상반기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소비는 27개월(9개 분기), 가구 흑자는 24개월(8개 분기) 동안 줄어들었고, 그 결과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역성장했다.
#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과 KDI는 수출의 온기가 내수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를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수출과 내수의 연결고리는 왜 끊어진 걸까. 더스쿠프 마켓톡톡 'KDI-한은 경기 논쟁'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수출 호황에도 우리나라 경제가 후퇴한 이유가 고금리에 있다고 확신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뒤로 미루면서 민간 소비가 살아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KDI는 8월 '2024년 경제전망 수정'과 9월 '경제동향 9월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한국은행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고금리와 고물가 국면이긴 하지만, 수출 기업들이 물가를 반영한 실질임금을 줄였고, 취업자도 늘리지 않으면서 수출과 내수의 연결고리가 끊겼다고 본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한 위원은 지난 7월 11일 회의에서 "수출 증가로 유입된 자금이 설비투자, 민간소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부동산시장으로 흘러갔다"고 진단했다.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이 8월 2.0%를 기록하며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다가오자, 최소한 10월에는 금리인하를 결정지으려는 정부와 아직 금융안정에 확신을 갖지 못한 한은이 부닥치는 모양새다. 그 핵심에는 이른바 낙수효과의 실종사태가 자리한다.
■ 관점➊ 끊어진 연결고리=한은과 KDI의 논쟁 아닌 논쟁은 결국 '수출의 오랜 증가세가 내수로 이어지지 않아서 경제가 후퇴하는 현재 상황'을 해석하려는 시도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법인세 인하, 대기업과 부유층 감세를 관철했고, 상속세 인하를 통한 증시의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추진하고 있다. 재벌 총수의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면, 이들이 자신이 지배하는 상장사의 주가를 부양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정부는 대기업과 부유층에 세금 혜택을 줘서 이들이 더 부자가 되면, 경제 규모를 키우고 결국 더 많은 세금을 낼 것으로 생각한다.
일정 부분 결실이 있긴 하다. 대기업이 이끄는 우리나라 수출은 지난 8월까지 11개월 연속 전년 대비 증가했다. 특히 2분기 수출을 보면 5월에 580억 달러를 기록하는 등 안정적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한국경제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0.2% 감소하며 경제가 후퇴했다. 수출의 증가가 기업투자, 가계 소비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소비 지표인 소매판매는 2분기에 1년 전보다 2.9% 줄면서 9개 분기 연속 감소했다. 소매판매의 감소폭은 2009년 1분기 -4.5% 이후 14년 만에 최대였다. 민간 투자도 얼어붙었다. 설비투자는 4월 0.4% 증가했지만, 5월에 -1.5%, 6월에 -2.7%로 축소했다. 국내기계수주 증감률은 4월 -8.0%, 5월 5.7%, 6월 -3.8%였다. 건설수주는 토목 공사가 증가해 4월과 6월 각각 51.2%, 25.9% 증가했지만, 5월에는 -30.1%였다.
■ 관점➋ 한은의 주장=한국은행이 지난 9월 5일 공개한 '경제 지표의 그늘, 체감되지 않는 숫자' 보고서는 수출의 증가가 내수로 연결되지 않은 이유로 가계 실질소득의 감소와 수출 기업들의 산업구조를 꼽았다.
보고서는 "고금리와 고물가로 가계의 실질소득 증가가 제약받으면서 소비 여력이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월평균 실질임금은 2019년 340만7000원에서 2020년 352만7000원, 2021년 359만9000원으로 증가하다가 2022년 359만2000원, 2023년 355만4000원으로 2년 연속 감소했다. 소득에서 이자 비용, 세금, 소비지출을 모두 뺀 가구의 실질 흑자액이 8개 분기 연속 감소한 이유다. 여윳돈이 없으니 소비가 줄 수밖에 없다.
한은 보고서는 또 "수출 업종이 반도체·IT 등 자본집약적 산업으로 재편하면서 수출이 고용 및 가계소득에 미치는 영향이 약화했다"고 지적했다. 업종별 고용유발계수를 보면 우리나라 수출 증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반도체의 경우 100만 달러당 2.6명 고용에 불과해 총수출 평균인 100만 달러당 7.6명 고용에도 못미쳤다.
우리 기업들은 2020년 이후 해외생산비중은 지속적으로 늘렸지만, 국내 설비투자는 2022년 이후 큰 폭으로 줄였다. 건설사의 수주실적도 2023년 중반 이후 해외가 국내 실적을 크게 앞질렀다. 수출의 온기가 국내로 들어오기 힘든 구조라는 얘기다.
■ 관점➌ KDI의 주장=KDI가 지난 9월 9일 발표한 '9월 경제동향'은 본문에서 네차례 고금리를 언급했다. 이를 모두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금리 기조가 설비투자 회복세를 제약하고 있으나, 운송장비가 급증하며 설비투자지수는 증가로 전환했다. 둘째, 고금리 기조가 지속하면서 내구재 등 금리에 민감한 품목을 중심으로 물가 상승세 둔화 흐름이 유지됐다.
셋째, 고금리 기조에 따른 내수 부진으로 개인사업자의 부채 상환 부담이 지속됐다. 넷째, 세계 경제는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완만한 성장세가 유지되고 있으나, 고금리 기조와 지정학적 위험, 주요국 제조업경기 불안 등 하방 위험 요인이 다수 존재한다.
KDI의 주장도 정론이다. 기본적으로 기업의 투자는 경기변동에 따라 출렁인다. 금리(이자율)가 변하면 예상 수익이 변하기 때문이다. 예상 수익이 같다고 해도 현재 금리가 높으면, 미래에 얻는 수익의 현재 가치가 그만큼 작아진다. 그래서 경제학에서 금리와 투자는 반비례한다. 금리가 높아지면, 부채 상환 부담 등으로 소비가 줄어든다는 지적도 사실이다.
다만, 이런 논리만으로 현재 수출과 내수의 고리가 끊긴 것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의 명목 지출 중에서 월평균 이자비용은 13만원으로 크게 증가했지만, 기준금리가 설령 0.50%포인트 떨어지더라도 실제 이자비용 감소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기업의 투자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이익 증가가 구조적인 이유로 고용과 임금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변하는 건 없다는 얘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출과 내수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이유는 뭘까. 답은 '낙수효과의 맹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이야기는 'KDI-한은 경기 논쟁' 두번째 편에서 이어나가보자.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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