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다" 도발에 얼굴 붉어진 트럼프… 공화당도 해리스 '승'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TV토론에서 맞붙었다. 양측은 경제, 불법이민, 낙태, 전쟁 등 주요 정책 이슈를 놓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해리스 부통령에게 다소 승기가 기울었다는 평가와 함께 이번 토론이 여론조사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회자가 한 첫 질문은 미국 유권자의 최대 관심사인 경제와 물가였다.
해리스 부통령은 자신을 중산층을 위한 “유일한 후보”로 내세우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가장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감세”라고 비판했다.
그는 최고의 경제학자들이 검토한 결과라며 “와튼 스쿨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의 계획이 사실 재정적자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와튼 스쿨 출신임을 겨냥한 공격이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녀는 마르크스주의자”라며 “그녀의 부친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교수이며 그녀를 잘 가르쳤다”고 맞받아쳤다.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공약을 전 미국인의 물가 부담을 키우는 “트럼프 부가세”라고 비판했는데,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물가가 더 높아지는 것은 중국과 수년간 우리에게서 훔쳐 간 모든 나라들이다”라고 반박했다.
두 후보는 외교, 낙태권, 이민, 에너지 정책 등을 두고도 충돌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가자지구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및 인질 석방 협상을 타결시키려고 쉬지 않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안보를 동시에 보장하는 ‘두 국가 해법’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녀는 이스라엘을 혐오한다”면서 “그녀가 대통령이 되면 이스라엘은 2년 내에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그는 독재자들을 존경하고, 취임 첫날 독재자가 되고 싶어한다”면서 ‘러브레터’라고 칭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친서들을 주고받은 사실을 언급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낙태권에 대해 “지난 52년간 우리나라를 분열시킨 문제”라면서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헌법 권리로 보호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덕분에 모두가 원했던 대로 주(州)별로 낙태 허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대통령이 되면 낙태권을 연방정부 차원에서 보호하는 법안에 서명하겠다면서 “자기 몸에 관한 결정을 내릴 자유를 정부가 해서는 안된다”고 트럼프 전 대통령을 몰아세웠다.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발언하는 동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이후 자신의 발언 차례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해 ‘지루하다’는 쓴소리도 이어갔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을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이며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또 해리스 부통령이 고개만 흔들었는데도 “지금 내가 말하고 있다”며 예민하게 굴기도 했다.
우선 해리스 부통령을 향한 호평이 이어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민주당 전략가 카렌 피니는 “이것은 현대 정치에서 가장 인상적인 토론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라며 “부통령은 그녀가 해야 할 일을 정확히 했다”고 말했다.
친(親) 공화당 인사들도 이번 토론에서는 해리스 부통령이 돋보였다는 점을 인정했다.
보수 논객인 에릭 에릭슨은 “트럼프는 토론에서 졌다. 진행자에 대해 징징거린다고 해도 이는 바뀌지 않는다”고 전했다.
다만 토론이 두 후보의 지지율에 미칠 즉각적인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뮐렌베르그대 여론연구소 이사인 크리스 보릭은 “나는 이 토론이 여론조사에서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리스는 어느 정도 성공하면서 트럼프를 유인했지만, 그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기환 기자 k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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