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허리 숙였다…‘폭염 사망’ 에어컨 설치기사 유족에 사과

하청노동자 사망 사과
“폭염 대책 강화할 것”

11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지방노동청 앞에 마련된 에어컨 설치기사 고 양준혁씨의 분향소에서 원청 삼성전자 관계자가 유족에게 사죄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폭염 속에 에어컨을 설치하다가 숨진 노동자의 유족이 사고 발생 한 달 만에 사쪽으로부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았다.

11일 오전 오치오 삼성전자 한국총괄 부사장은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지방노동청 앞에 설치된 고 양준혁(27)씨의 분향소를 찾아 유족에게 사과했다.

오 부사장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모든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폭염 대비 대책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양씨는 입사 이틀째인 지난달 13일 전남 장성의 한 중학교 급식실 에어컨 교체설치 현장에서 일하다 열사병 증세를 보이며 학교 화단에 쓰러졌다.

양씨는 이 상태로 1시간가량 방치된 뒤 사망했다. 이 공사는 전남도교육청이 삼성전자와 계약했으며, 삼성전자는 유진테크시스템과 설치 공사 하청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양준혁씨가 전남 장성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온열질환으로 쓰러져 있다. 회사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이 사진을 유족에게 그대로 보냈다. 유족 제공

유족들은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며 지난 3일부터 광주 정부종합청사 앞에 분향소를 차렸다.

양씨의 소속 회사인 유진테크시스템 대표이사도 분향소를 찾아 눈물을 보이며 유족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고인의 어머니와 외할머니 등 유족은 “대책을 잘 세워서 현장 노동자들이 다시는 죽지 않게 해달라. 약속을 꼭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또 이날 전남도교육청이 납득할 만한 사죄와 대책을 발표한다면 분향소 운영을 마치고 고인의 장례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원청인 삼성전자와 소속회사가 사과하면서 애초 이날 오전 유족들이 서울 삼성전자 빌딩 앞에서 열기로 했던 규탄 기자회견은 취소됐다.

‘삼성에어컨 설치기사 20대 청년노동자 폭염 사망사고 대책회의’는 “삼성전자의 사과와 합의가 있기까지 광주시민, 민주당·정의당·조국혁신당·개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 등 국회의원들과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등 노동단체, 천주교광주대교구 등 종교단체가 많은 도움을 주셨다”며 “산업현장에서 모든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유족 등은 유진테크시스템 대표 등을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경찰에 고소하는 한편, 삼성전자 등은 중대재해처벌법·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광주노동청에 고발한 뒤 수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