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군부 한복판에 있는 비정상 정권 [박찬수 칼럼]

박찬수 기자 2024. 9. 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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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의 국방부 건물에 입주한 대통령실 전경. 대통령실로 바뀌면서 정문에 한국 대통령의 상징인 봉황 문양이 붙어 있다. 왼쪽 건물은 국방부가 옮겨 간 합동참모본부 청사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박찬수 | 대기자

30년 전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 바로 옆 경복궁에 주둔하던 수방사 30경비단을 해체하려 하자, 군 장교가 한밤중에 청와대 상황실로 전화를 걸어 협박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30경비단은 영화 ‘서울의 봄’에서 반란군 수뇌부가 모여 군 병력을 운용했던 바로 그 부대다. 김 대통령은 경복궁의 군부대가 유사시 쿠데타에 동원될 수 있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항상 청와대를 지켜보며 압박하는 듯한 분위기를 누구보다 싫어했을 것이다.

지금 대통령실이 용산의 군 관할지역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서 쿠데타를 걱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직접적인 병력 동원의 위험은 없어도 대통령실과 군 수뇌부가 한 자리에 위치함으로써 발생하는 심리적인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군부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상황이 아닌데도 대통령과 군 수뇌부가 한 공간에 자리 잡은 건 분명 정상은 아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계엄령 논란을 비난하기만 할 뿐, 대통령실과 군부의 기이한 동거를 어떻게 해소할지에 대해선 아무런 고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전직 국방부 고위관리는 이런 얘기를 했다. “국방부 청사나 장관 공관에서의 의장 사열을 비롯한 군 공식 행사의 횟수가 대통령실 이전 이후 크게 줄었을 게 확실하다. 대통령과 한 공간에 있는데, 어느 국방부 장관이 활발한 대내·대외 활동을 하려 하겠나. 국방부 전체가 대통령실 눈치를 보면서 좀 더 충성스런 모습을 과시하려 애쓰는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 반대로, 장기적으로는 군부가 대통령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은 바로 옆의 군 지휘관들을 훨씬 믿을만한 사람들로 채워야 심리적 안정을 얻게 되고, 군부를 잘 통제하고 지휘하는 게 국정운영에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에 빠지기 쉽다. 과거 군사정부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대통령 경호처장의 국방부 장관 임명은 문민 대통령과 군부와의 적절한 경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징표로 읽힌다. 현 정부에서 특정 고등학교 출신이 군 정보기관을 장악했다는 얘기가 나도는 건, 검찰을 권력 기반으로 활용했던 것처럼 군 역시 그렇게 바라보고 싶어하는 대통령의 성향 때문일 수 있다.

최근 국방부의 비밀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것도 비슷한 단면이다. 7월28일 도쿄에서 한·미·일 국방부 장관은 3국 공동 군사훈련과 북한 미사일 정보공유 등을 담은 ‘안보협력 프레임워크(TSCF) 협력각서’에 서명했다. 당시 신원식 장관(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안보협력을 되돌릴 수 없게 하기 위해’ 협력각서를 맺었다고 말했다. 국회 국방위에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되돌릴 수 없는 내용’이 뭔지, 왜 공개하지 않는지, 최소한 국회엔 보고해야 하는 것 아닌지 따졌지만, 신 장관은 “3국이 합의해야 공개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되돌릴 수 없는 각서’에 서명하고도 국회에 설명하지 않는 건 삼권분립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며, 군의 비밀주의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상징적 사례다.

이명박 대통령은 광화문 촛불시위 때 청와대 뒷산에서 아침이슬 노랫소리를 들으며 자책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군의 관할지역에 둘러싸인 윤 대통령은 시위와 집회로부터 안전함을 느낄지 모르나, 그런 무감각이 오히려 정권 위기를 심화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시사인’이 최근 공개한 국가기관 신뢰도 조사를 보면, 대통령실의 신뢰도(10점 만점에 2.75)가 국회 신뢰도(3.38)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신뢰도 역전은 처음 있는 일이다. ‘아무리 못난 대통령이라도 국회의원보다 낫다’는 세간의 통념이 깨진 건 의미심장하다. 이미 ‘심리적 탄핵 상태’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용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21세기에 무슨 계엄령 선동이냐”고 말한다. 대통령실의 한 인사는 “계엄군이 출동하는 순간 인터넷으로 그 광경이 실시간 중계될 텐데 계엄령이 가능하겠나”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져도 대통령제 아래서 대통령과 군부의 경계는 있어야 한다. 군이 물리적 힘을 기반으로 민간 정부를 압박해서도 안 되지만, 대통령이 사적 친분과 충성심만으로 군 인사를 좌우하는 것도 위험스럽긴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이런 의구심과 논란은 청와대에서 단 하루도 잠을 자지 않겠다는, 무속 외엔 달리 이유를 추측하기 힘든 졸속적인 대통령 집무실 이전 결정에서 비롯했다. “제왕적 대통령을 벗어나려고” 청와대를 나온 윤 대통령은 지금 군부대에 둘러싸여 전임 대통령들보다 훨씬 더 민심과 멀어진 군주처럼 행동하고 있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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