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포커스] 法 시행 두 달 지났는데… 가상자산위원회 설치 ‘감감무소식’
가계부채·대출 혼선에 우선순위 밀려
업계와 이해 관계 얽힌 전문가 많아 구성 난항
가상자산 정책 자문을 위해 각계 전문가로 구성되는 가상자산위원회의 출범이 기약 없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금융 당국이 가계 부채 관리에 집중하면서 업무 우선순위에서 밀린 데다, 여러 민간 전문가들이 업계와 각종 이해관계로 엮여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되면서 위원회 구성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합니다.
11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 19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에 맞춰 산하에 가상자산위원회를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약 2개월이 지난 지금껏 위원회에 합류할 인사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제5조에서는 “가상자산 시장과 사업자에 대한 정책과 제도에 관한 사항의 자문을 위해 금융위에 가상자산위원회를 두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죠. 위원장은 금융위 부위원장이 맡고, 총 15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됩니다. 금융위 소속 고위 공무원과 7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법조인과 학자, 가상자산 관련 기관·단체에서 3년 이상 근무한 전문가 등에게 위원 자격이 주어집니다.
가상자산위원회 설치는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가진 사안입니다.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증했지만, 금융 당국이 규제에 중점을 둔 정책을 시행하고 있어 적극적으로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된 후에도 위원회 구성이 늦어지자, 국회에서는 조속한 출범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7월 22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의 인사청문회에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굉장히 기초적인 수준의 법이다”라며 “가상자산위원회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언제 만들 계획인가”라고 물었죠. 김 위원장은 “필요한 상황이 오면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최근 금융위가 가계 부채 관리와 대출 규제에 따른 혼란을 수습하는데 매진하면서, 가상자산 관련 정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달 들어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시작된 이후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제한이 강화됐죠. 2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몰리는 ‘풍선 효과’가 나타나고, 주택 실수요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등 금융 시장이 혼란을 겪는 상황입니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법 시행 후 2개월이 지난 만큼 김소영 부위원장 등 금융위 고위직이 주도해 위원회 구성에 신속히 나서야 할 상황이지만, 가계 부채와 대출 문제 해결이 급박해 가상자산에 대해선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습니다.
위원회에 합류할 것으로 점쳐졌던 여러 민간 전문가들이 가상자산 거래소 등 업계와 밀접한 이해관계로 엮여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 것도 위원회 구성이 늦어지고 있는 이유로 꼽힙니다. 위원 후보로 거론됐던 모 대학 교수의 경우 국내 대형 거래소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데다, 몸 담고 있는 학회를 통해 지원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져 위촉이 불발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가상자산위원회는 시장에 대한 규제 마련과 신규 정책 도입 등을 자문하는 조직인 만큼 사업자들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거래소 등 사업자들과 이해관계로 엮일 경우 이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결정하는데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죠. 또 사업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인물들이 위원회에 합류할 경우 금융 당국에 대한 새로운 로비 창구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가상자산위원회 설치가 계속 늦어질 경우 가뜩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점차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국내 가상자산·블록체인 시장의 경쟁력이 더욱 약화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법조계 관계자는 “미국이 이미 올해 초에 승인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출시조차 국내 금융 당국은 완고하게 반대하고 있다”면서 “당국이 자신들과 반대되는 목소리를 낼 수도 있는 가상자산위원회의 출범을 썩 반기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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