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말고 SSD도 있다···AI 열풍 타고 ‘불티’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의 파급력이 데이터 저장용 낸드플래시 반도체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요가 적어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낸드가 이제는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기업 고객들에게 ‘귀한 몸’ 대접을 받게 됐다.
SK하이닉스는 데이터센터용 고성능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PEB110 E1.S’를 개발했다고 11일 밝혔다. 이 제품에 적용된 PCIe(데이터 전송용 연결단자 표준) 5세대는 기존 4세대보다 대역폭이 2배로 넓어졌다. 이에 따라 PEB110은 이전 세대 대비 성능이 2배 향상됐고, 전력 효율도 30% 이상 개선됐다. 2테라바이트(TB), 4TB, 8TB 세 가지 종류로 지원된다.
해당 제품은 기업용이다. SK하이닉스는 “현재 글로벌 데이터센터 고객사와 PEB110 인증 작업을 진행 중이며, 인증이 마무리되는 대로 내년 2분기부터 제품 양산을 시작해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낸드는 메모리 반도체의 일종이다. 속도는 느리지만 용량이 크고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아 보조기억장치로 쓰인다. SSD, USB, SD카드 등이 대표적이다. 데이터 전송·처리 속도가 빠르지만 용량이 작고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사라지는 주기억장치 D램을 보완한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낸드는 국내 메모리 회사들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생성형 AI 열풍으로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 같은 연산용 칩은 물론이고 고대역폭메모리(HBM)·DDR5 등 고성능 D램을 찾는 기업들은 늘었으나, 데이터를 ‘저장’만 하는 낸드는 무풍지대에 놓여 있었다. 더군다나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까지 겹쳐 낸드는 기업들의 투자 우선순위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을 비롯한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들이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경쟁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면서 e(기업용)SSD시장이 개화하기 시작했다. AI용 데이터센터는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20배 이상의 서버 용량이 필요하다. 대형언어모델(LLM) 훈련에 막대한 텍스트·이미지·영상이 필요한 데다, 이 모델이 사용자들의 요구를 처리한 결과물 또한 서버에 저장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올해에만 AI 관련 SSD 필요 용량이 45엑사바이트(EB·1EB는 100만TB)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AI 시장이 초기 형성 단계여서 낸드가 주목을 못 받았으나 올해는 긍정적인 영향이 스토리지(저장장치) 시장까지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이날 공개한 PEB110 외에도 eSSD 전문 자회사 솔리다임을 통해 64TB 고용량 제품을 지원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업계 최고 용량(128TB) ‘BM1743’을 오는 11월 선보일 계획이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낸드 총 매출은 전분기 대비 14.2% 증가한 167억9700만달러(약 22조5600억원)를 기록했다. AI가 고용량 제품 수요를 이끈 덕택이다. 삼성전자의 2분기 낸드 매출은 전분기 대비 14.8%, SK하이닉스의 낸드 매출은 13.6% 증가했다.
다만 기업간거래(B2B) 시장과 달리 개인용 PC·모바일 수요는 주춤하면서 전체적인 낸드 비트 출하량(데이터 저장 용량을 비트 단위로 측정한 반도체 출하량)은 전분기 대비 1% 감소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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