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으로 돌아 본 부산의 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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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수도기념관은 한국전쟁 정전 71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고무신' 개최하고 있다.
임시수도기념관(부산 서구)은 한국전쟁 이후 부산지역의 대표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던 고무신 산업 발전사와 근·현대사 속 고무신이 갖는 의미와 역할을 조명하기 위해 특별기획전을 마련했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고무신의 도입과 국산화 ▷부산 고무신 시대 ▷일상 속의 고무신 등 세 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부산의 고무신 산업은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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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정인성 부자의 사진 등 11월 30일까지 전시
임시수도기념관은 한국전쟁 정전 71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고무신’ 개최하고 있다.
임시수도기념관(부산 서구)은 한국전쟁 이후 부산지역의 대표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던 고무신 산업 발전사와 근·현대사 속 고무신이 갖는 의미와 역할을 조명하기 위해 특별기획전을 마련했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고무신의 도입과 국산화 ▷부산 고무신 시대 ▷일상 속의 고무신 등 세 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일상 속의 고무신’에서는 부산의 대표적인 사진작가 정인성과 그의 아들 정영모 씨가 카메라로 담아낸 1950~60년대 사진을 전시한다. 1955년 충무동 미끄럼타기, 1957년 부민동 산마을 골목, 1956년 다대포 갯마을 아이들 등 그 당시 부산 시민의 모습을 고무신을 통해 보여준다.
대한제국 외부대신을 지낸 이하영(李夏榮)이 1919년 서울 용산에 대륙고무주식회사를 설립, 우리나라에 고무산업이 시작됐다. 1921년 김성수(金性洙)가 중앙상공주식회사를, 김동원(金東元)은 정창고무공장을 평양에 설립했다. 고무신은 갖신 짚신보다 방수가 잘 되어 실용적이었으며, 가격 면으로도 경쟁력을 갖췄다. 한국형 고무신은 폭이 넓고 굽이 낮으며, 신발 덮개가 반만 있는 형태다. 남자 고무신은 짚신을 모양으로, 여자용은 가죽 당혜 디자인을 참고하여 만들었다.
부산의 고무신 산업은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특히 수많은 피란민은 고무신 산업의 풍부한 노동력이기도 했고, 거대한 수요층이었다. 삼화고무 보생고무 국제화학 동양고무 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흰 고무신과 검정 고무신이 일반적이었는데, 흰 고무신의 경우 고급품 대접을 받아 어르신들이 신거나 결혼식 돌잔치 등 주요 행사에서 신었다. ‘다이알표 새아씨 여성 고무신’은 빨간 코고무신에 빨간색 테두리가 당시에 인기가 많았을 것 같다.
임시수도기념관 전시관을 찾은 어르신들은 고무신을 보면서 옛날을 떠올렸다. “이 고무신이 아직도 남아 있나?” “내 흰 고무신 신고 싶었는데 살기가 어려워서 못 신어봤다” 등 고무신에 얽힌 어린 시절을 추억했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국민 신발이었던 고무신을 기억하는 어르신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린이까지 부산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고무신 특별전은 오는 11월 3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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