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는 개 먹어" 트럼프 실언에 해리스 실소…'90분 혈투' 승자는?
미국의 11월 대선을 위한 첫 공개 TV토론이 결정타 없는 대결로 막을 내렸다. 전체적인 평은 준비를 단단히 해온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공세가 수세적이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빈틈을 자극해 실언을 자주 내뱉게 했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6월 도전자 입장에서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을 상대로 팔순이 넘은 그의 나이와 기억력 등을 조롱하며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석 달 만에 바뀐 상대방을 맞이한 그는 방어적인 입장에서 19살이나 차이 나는 해리스를 상대로 자주 흥분하면서 약점을 노출했다는 지적이다.
10일(현지시간) ABC 뉴스가 주최한 첫 대선후보 양자토론은 첫 인사부터 이날의 분위기를 반영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먼저 트럼프 쪽으로 다가가 "카멀라 해리스"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악수를 청했다. 6월에 바이든과 트럼프가 인사 없이 토론을 시작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으로 트럼프는 멋쩍게 손을 내밀었지만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경제문제와 관련한 사회자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토론에서 해리스는 "미국 중산층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집 장만과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세제혜택 등으로 늘려나가 경제 도약의 기회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트럼프가 내놓은 관세 부과 정책은 단지 20% 판매세를 부과하는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미국 재정적자를 증가시키고 중산층에 큰 부담을 가져올 것"이라고 공세를 시작했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전임 시절에도 관세를 부과했지만 물가는 오르지 않았다"며 "물가가 전례 없는 수준까지 오른 건 바이든 행정부 때였다"고 반박했다. 또 "바이든 정부가 관세를 유지하면서 중산층뿐만 아니라 모든 가계가 타격을 받았다"며 "바이든은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인데, 만약 해리스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를 넘어서는 최악이 될 것"이라고 힐난했다.
해리스는 낙태권과 관련해 "트럼프는 여성들의 권리를 뒤집은 판결을 내놓은 세 명의 대법원 판사를 직접 임명했다"고 다시 포문을 열었다. 해리스는 낙태를 결정했을 때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 그리고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없을 때 여성들이 겪는 의학적 결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이에 대한 주도권을 국가가 박탈한 것이 트럼프 정부의 탓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해리스가 또 거짓말을 한다"고 부정하며 "나는 그것을 주 정부들에게 맡기자는 입장"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면 연방정부의 임신 중절 금지정책에 서명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며 "그런 법안이 내 책상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에 해리스는 "20개 주 이상이 낙태죄를 물어 의사까지 범죄인으로 만들고 있다"며 "이는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에도 적용되고 있으며, 트럼프가 재선되면 연방 낙태 금지법에 서명할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트럼프는 논쟁거리가 나올 때마다 느슨해진 국경과 불법이민자 문제를 과장해 꺼내들었다. 바이든 정부가 국경을 허술하게 관리하면서 나라가 망가지고 있다는 논리였다. 트럼프는 "이민자 때문에 정작 미국인들은 일자리를 빼앗기고 범죄에 시달리고 있다"며 "바이든 정부에서 생긴 일자리는 제 임기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주장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해리스는 발언 기회가 오자 "트럼프가 남긴 건 최악의 팬데믹과 대공황 이후 최고 실업률, 민주주의에 대한 최악의 공격이었다"며 "트럼프는 국민 여러분을 위한 약속이 없고, 오직 자신과 지인을 위한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러 범죄 혐의로 기소돼 법의 처벌을 받는 사람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게 대단하다"며 "트럼프는 미국 헌법을 무시했고 국가안보와 선거개입, 성폭력 등 혐의로 앞으로도 법정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리스의 공격에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트럼프는 무분별한 주장을 펼쳤다. 그는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고 있다"며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에서 (불법) 이민자들은 많은 수의 개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을 잡아먹고 있다"고 했다. 아이티 이민자들과 관련된 인터넷 음모론을 스스로 공개토론에서 꺼내놓으며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과 혐오를 조장한 것이다.
사회자는 이에 대해 근거가 없다고 제지했지만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장을 계속 반복해 주변에서 실소가 터져나오게 했다. 이런 음모론과 관련해 오하이오 지역 경찰이 이미 주장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지만 보수 언론이 이를 확대 재생산한 것처럼 소문을 대선토론에서 사실처럼 얘기한 것이다.
외교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는 자화자찬식 평가를 늘어놓았다.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이 자신을 칭찬한 것을 소개하면서 과거 임기에 권위주의 국가 리더들과도 친분을 쌓으며 분쟁을 일으키지 않는 외교를 펼쳤다고 주장했다. 해리스는 이에 대해 "트럼프가 북한 독재자 김정은과 러브레터를 주고받은 것처럼, 이 독재자들이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그들이 아첨과 호의로 당신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세계 정상들은 트럼프를 비웃으며 미국의 군 사령관들도 그를 너무 수치스러워 했다"고 강조했다.
해리스는 중동전쟁과 관련해선 "전쟁은 지난해 10·7 하마스의 테러로 시작됐고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국가를 방어할 권한을 가졌던 것"이라며 "그러나 양측의 군사공세로 너무 많은 무고한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해리스는 이스라엘을 싫어한다"며 "해리스가 대통령이 되면 중동문제는 더 비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무리 발언에서도 양자의 차이는 두드러졌다.
해리스는 "오늘 여러분은 미국에 대한 두 가지 매우 다른 비전을 들었을 것"이라며 "하나는 미래에 초점을 맞춘 비전이지만 남은 하나는 과거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를 후퇴하게 하려는 시도가 있지만, 우리는 결코 과거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해리스는 많은 공약을 내놨지만 그렇다면 지난 4년간은 대체 무엇을 한 것이냐"고 비난하면서 "이들은 미국을 파괴했고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과 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뉴욕=박준식 특파원 win047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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