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규제 남발...외국 투기자본에 기회, 국부유출 우려”
상법개정안 18건 중 14건이 규제강화법
“SK 경영권 노린 소버린 사태 재발 가능성”
상법개정안 등 기업 지배구조 규제를 과도하게 강화하는 법안들이 국회에서 다수 발의되고 있다는 경제계 지적이 제기됐다. 이 여파로 국내 기업의 가치가 떨어지는 ‘K-디스카운트’는 물론, 국내 기업에 대한 외국 투기자본 공격으로 국부 유출 가능성까지 우려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8개 경제단체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정무위원회에 상정된 법안들 중 기업경영과 투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규제사항에 대한 의견을 모아 국회와 정부에 공동 건의했다고 11일 밝혔다.
경제단체들은 국회 발의된 법안들이 개인투자자 보호 효과는 미미한 반면, 경영권 공격세력이나 단기수익을 노리는 글로벌 헤지펀드에게만 유리할 수 있고, 기업가치 훼손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킬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5월 30일 22대 국회 개원 후 8월 말까지 법제사법위원에 올라온 총 18건의 상법 개정안 중 14건이 지배구조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무위에도 최근 ‘상장회사지배구조법 제정안’이 올라왔다.
발의안들은 지배주주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키는 강행 규정들을 내놓았다. 경제단체들은 이 규정이 소수주주 권한을 강화시키기 보다는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영권 공격세력만 유리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선, 발의안들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회사가 이사를 선임할 때 집중투표제를 실시하도록 강제하고, 감사위원을 전원(현행 1명) 분리선출하도록 한다. 집중투표제란 2인 이상 이사 선임시 1주당 선임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경우 최대주주 대신 2~3대 주주들 입맛에 맞는 이사들이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감사위원회가 막강한 권한을 가졌음을 감안하면, 투기자본에게 유리한 무기를 제공할 수도 있다. 2003년 외국계 행동주의펀드 소버린이 SK를 공격해 약 1조원의 단기차익을 거두고 한국에서 철수한 사례가 실제 있었다. 이런 제도가 현실화되면 투기자본에 의한 경영권 공격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국부유출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경제단체들은 현행 상법상의 이사회 구성방식이 해외 사례와 비교해도 법적 강제가 심하다며, 발의 법안들은 이를 더욱 강화해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를 들어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하거나, ▷정관에 이사회 총원의 상한 규정을 없애고, ▷현재 이사 총수의 4분의 1을 사외이사로 구성해야 하는데 이 비중을 3분의 1 로 확대하는 것 등이다.
또한, ‘이사 충실의무 확대’나 이사에게 공정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불만 주주들의 소송 남발로 기업들의 신산업 진출 및 인수합병(M&A) 등 투자 집행에 차질을 초래할 수 있거나 자금조달 위축 등 각종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봤다.
‘권고적 주주제안’ 역시 주총에 상정·결의할 수 있는 주주제안 범위를 대폭 완화해 주총 진행을 매우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주주들이 기업 주총을 사회운동의 장(場)으로 변질시키거나 행동주의펀드가 주주제안권을 남발해 기업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주주총회 도입 의무화도 인터넷 등 전자적 매체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사회적 약자들을 소외시킬 우려가 있다고 봤다.
경제단체들은 고금리·고환율, 보호무역주의 확산,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 등 경영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해당 법안들이 통과될 경우, 국내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는 물론 기업가정신 훼손으로 한국 경제 체질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20년 상법 개정으로 이미 과도한 지배구조 규제가 도입된 상황에서 더 이상의 규제 강화 입법을 멈춰야 한다고 국회에 호소했다.
아울러,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내 증시의 MSCI 선진지수 편입을 통한 대규모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 유도 ▷상속세 등 불합리한 과세체계 개편, ▷기업 성장과 미래 신성장동력 촉진 등을 통해 국내 증시에 대한 투자 매력도를 높여나가는 정책 지원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김민지 기자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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