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했는데 나쁜 사람이 됐다”…‘티메프’ 임금체불 피해 눈덩이

최유경 2024. 9. 1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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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2,000억 원대 대규모 미정산 사태를 일으킨 티몬과 위메프가 회생절차를 밟게 됐습니다.

서울회생법원은 어제(10일)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하며 오는 12월 27일까지 최종 회생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했는데,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 파산 선고를 할 수도 있습니다.

티메프 채권단은 "작게나마 희망을 갖고 회생 절차에 임하겠다"고 했고, 피해 업계에서도 파산이 아닌 회생 개시 결정이 내려져 다행이라는 분위기가 읽혔습니다.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티몬·위메프가 판매업체에 지급하지 못한 미정산 금액은 1조 2,790억 원에 이릅니다. 피해업체는 4만 8,124개이고, 액수와 관계없이 개별 소비자들의 피해도 컸습니다.

이들과 달리 말 못하는 피해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티몬과 위메프 등 큐텐그룹 계열사 소속 직원들입니다.

월급과 퇴직금 체불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데, 앞으로 줄퇴사가 이어지며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습니다.

티몬과 위메프의 회생절차 개시 결정이 내려진 어제(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에서 류화현 위메프 대표(왼쪽)와 류광진 티몬 대표(오른쪽)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일만 했는데 나쁜 회사에 나쁜 사람이 됐다"…회사와 운명공동체가 된 사람들

KBS가 어제(10일) 만난 위메프 직원 김 모 씨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직원들은 어떻게 보면 그냥 일만 했는데 나쁜 회사에 나쁜 사람이 됐다. 그래서 심적으로 많이들 힘들어한다"고 토로했습니다.

특히 거래처와 직접적인 소통을 해왔던 MD들의 고통이 크다며, 직원들 역시 사전에 회사로부터 별다른 위험 신호를 전달받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금액으로 따지면 거래처 분들이 엄청난 피해를 봤잖아요. 그곳 임직원들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금액이 많든 적든 소비자들도 큰 피해를 봤고, 우리도 너무 많이 알고 있죠. 저는 (지난주에) 사무실 짐을 빼러 제 자리에 갔는데 고객이 들어와서 돈 달라고 자필로 막 써놨더라고요. 너무 마음이 찡하더라고요. 다들 비슷해요. 우리도 안타깝고 이런 상황에 대해서 구제받고 싶은 마음이 매우 크긴 한데 회사가 나쁜 회사가 돼 놓으니까 그 안에 임직원들도 나쁜 사람이 된 기분. 그래서 우리도 참 '왜 이렇게 됐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고…"

김 씨는 "(경영 자체가) 무리하고 무지했고 무능했다"며 "리스크에 대해 점검하고 의견을 개진하면 회사가 싫어했다. 건강하지 않은 매출도 상관없었고, '그냥 무조건 숫자만 찍어야 해'가 계속 반복됐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직원 절반 가까이가 퇴사했고, 남은 직원들도 대부분 퇴사를 고민하는 상황. 김 씨도 이번 주 퇴사를 결심했지만, 앞으로 일자리를 구할 길은 막막하기만 합니다.

"지금 저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퇴사를 생각하고 있고, 단지 퇴사를 못 하는 거는 퇴직금이나 임금에 대한 소통이 아예 끊어져 버리잖아요. 퇴직하는 순간 메일이나 계정 자체가 삭제되니까 그래서 그런 부분 때문에 좀 불안한 거죠. 또는, 이직하기 전에 그래도 적을 두고 있어야 이직할 때 조금 유리한 부분이 있으니까 대응하는 거고요. (이직도) 쉽지가 않은 게 이커머스 시장 자체가 워낙 안 좋은 데다가 큐텐 이미지도 워낙 안 좋아졌고요. 거기다가 갑자기 유통 이커머스라는 직군에 비슷한 유형의 포지션들이 대거 나오는 상황이라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 임금체불 본격화…진정 400여 건 접수·피해액 100억 원대

티메프 직원들의 임금체불 피해는 이제 가시화됐습니다. 티몬 등 일부 계열사에선 이미 8월 임금이 지급되지 않았고, 퇴직금은 일절 지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티몬은 매월 10일, 위메프는 매월 30일, 나머지 계열사는 매월 25일 임금이 지급되는데, 이번 달엔 더 많은 체불이 발생할 거로 보입니다.

게다가 전 계열사가 희망퇴직을 받고 있고, 티몬과 인터파크커머스는 일부 직원들에게 권고사직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위메프는 최근 9월 급여 지급이 어렵다며 무급휴직 공고를 냈습니다.

위메프는 최근 9월 급여 지급이 어렵다며 임직원들에게 무급휴직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이메일을 발송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위상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까지 접수된 티몬·위메프 등 큐텐그룹 계열사 임금체불은 모두 400여 건입니다.

금액은 100억 원 대에 이르는 거로 알려졌습니다.

이 가운데 종결된 사건은 진정이 취하된 13건과 10만 원짜리 소액 사건 1건 등 14건뿐입니다.

대부분은 퇴직금 관련인데, 티몬·위메프 등은 퇴직연금에도 가입돼 있지 않고 별도 적립금도 없는 거로 알려졌습니다.

사실상 퇴직금을 지급할 길이 없는 셈입니다.

티몬과 위메프 등 큐텐그룹 계열사 소속 직원들은 퇴직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 회생절차 개시됐지만 "희망 고문 같아"…대규모 피해 우려

회생절차 개시 결정에도 김 씨 표정은 밝지 않았습니다. 별다른 기대가 없다는 겁니다.

"거의 희망 고문"이라며 "임금체불 같은 경우 채권 우선순위가 있으니까 그래도 조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의 국가에서 제공하는 대지급금만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씨는 회사 측의 책임 있는 사과와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청문회에서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한 발언 중의 하나가 '구조조정'을 통해서 뭔가를 해결하겠다는 얘기를 해요. 너무 좀 무책임한 것 같아요. 자기는 시켰고 우리는 일을 했는데, 생각을 하면 싫어하니까 생산성이 있든 없든 시키는 일만 하라고 했는데,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제는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니까 배신감이 더욱 크고요. 끝까지 일관성 있게 무책임하고 무능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이라도 대안을 제시할 수 없으면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이라도 제대로 좀 하거나 아니면 진정성 있는 사과라도 좀 했으면 좋겠어요. 외부가 됐건 내부가 됐건 미안해하질 않아요. 그냥 그게 제일 안타까운 것 같아요."

고용노동부는 이번 사태 이후 큐텐그룹 전담 대응반을 꾸리고, 최대 2,100만 원까지 국가가 회사 대신 체불임금을 대신 지급하는 '대지급금' 지원 계획을 밝혔습니다.

또, 체불 근로자 1인당 1,000만 원 한도에서 연 1.5%의 생계비 융자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자구책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직원들이 잇따라 퇴사를 택할 경우, 결국 티메프 사태는 대규모 임금체불 사태로 번질 수밖에 없을 거란 우려가 나옵니다.

티몬과 위메프에게 법원이 허락한 시간은 오는 12월 27일까지입니다. 다음 달 10일까지 두 회사는 채권자 목록을 작성해야 합니다. 채권자들은 일단 모두 피해자들입니다. 티몬과 위메프의 시간은 멈췄고, 한 번의 회생 기회를 얻었지만, 피해자들의 시간은 현재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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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기자 (6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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