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비즈] 록밴드도 기후변화 막는 데 동참...저탄소 라이브 콘서트
과학자들과 친환경 콘서트 설계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영국 브리스톨에서 열린 밴드 매시브어택(Massive Attack)의 콘서트는 관객 3만4000명 이상이 모인 가운데 성황리에 끝났다. 언뜻 보기엔 여느 콘서트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이 곳곳에 담겼다. 콘서트가 열리는 동안 매점에서 탄소 배출을 유발하는 고기 대신 채소로 만든 비건식만 팔았다. 화장실의 배설물도 퇴비로 활용했다. 전기는 화석연료를 쓰는 디젤 발전기 대신 이동형 전기저장장치(ESS)를 실은 트럭이 공급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지난 4일 탄소 배출원으로 지목된 라이브 공연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사례로 최근 열린 매시브 어택의 사례를 소개했다. 주최측은 자동차를 통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주차장도 만들지 않았다. 관객들은 대부분 걷거나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공연장을 오갔다. 매시브어택 멤버들도 평소 트럭 6대로 옮기던 장비를 줄여서 2대로 장비를 실어 날랐다. 매시브어택 측은 이번 공연에서 과거 공연보다 배출량을 57% 가량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5년간 설계한 친환경 라이브 콘서트
‘액트 1.5 기후 행동 액셀러레이터’라는 이름의 이번 행사는 기후과학자들이 치밀하게 준비했다. 매시브어택은 맨체스터대 틴달 기후변화연구센터에 ‘초저탄소 라이브 음악’을 위한 로드맵을 의뢰했고, 5년 만에 그에 맞춰 행사가 열렸다. 로드맵을 준비한 과학자들도 이날 무대에 올랐다.
지난 2021년에 발표된 로드맵은 파리협약에 따라 2035년까지 공연장 건물과 공연을 위한 지상 이동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0으로 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2015년 195국이 합의한 파리협약은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각국이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정해 실천하자는 것이다. 매시브어텍 멤버인 로버트 델 나자는 “관객들은 평소처럼 멋진 음악과 무대를 즐길 수 있다”면서 “라이브 음악 산업 전체가 따라할 수 있는 본보기를 제공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기후과학자들은 라이브 공연이 인기를 얻으면서 탄소 배출도 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국적 기업인 라이브네이션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전 세계에서 5만회 이상 라이브 공연이 열렸다. 관객수만 1억4500만명에 이른다. 공연장에 24시간 전기를 공급하려면 거대한 디젤 발전기들이 동원된다. 행사가 열리면 쓰레기 배출량도 엄청나다. 2주간 25만명이 참가하는 미국의 코첼라 페스티벌만 해도 하루 평균 106t의 폐기물이 방출된났다. 이는 보잉757기에 승객300명과 화물을 가득 실었을 때보다 많은 양이다.
영국 서리대와 옥스퍼드대, 미국 애리조나대 공동 연구진은 지난 2010년 영국 음악 산업이 연간 약 54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고 국제 학술지 ‘환경연구 레터스’에 보고했다. 라이브 공연은 이 가운데 74%를 차지했다. 연구자들은 당시 수치는 2007년 기준이라는 점에서 17년이 지난 지금은 훨씬 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이미 탄소 배출을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올해 열린 칸 국제영화제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전기차를 도입하고 공식 행사에서 육류가 들어간 음식 대신 야채로 만든 식사를 제공했다. 영국 록밴드인 콜드플레이와 라디오헤드, 1975,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인 빌리 아일리시가 라이브 공연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계획을 선언했다.
콜드플레이는 12단계 계획을 활용해 월드 투어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검증한 결과 자신들의 월드 투어의 탄소 배출량이 2016~2017년보다 60%가량 줄고 18회 공연은 전적으로 배터리 시스템으로 운용했다고 밝혔다. 공연에서 나온 폐기물의 72%를 재활용하기도 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기후머신 그룹은 워너 뮤직 그룹, 라이브 네이션 엔터테인먼트, 콜드플레이의 투자를 받아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라이브 음악 산업의 탄소 배출 실태를 분석하고 2025년까지 실질적 감축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관객들도 기후변화 문제 적극 수용
관객들도 기후변화 문제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 환경단체인 플래닛 리이매진드가 미국 전역의 라이브 공연 팬 35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72%가 ‘기후 변화는 중요한 문제’라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70%는 아티스트가 기후 변화에 대해 발언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지난 2022년 영국 글래스고대 연구진은 교내 보고서에서 음악팬은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보다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결과를 소개했다.
음악팬들이 직접 행동에 나선 경우도 있다.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은 전 세계 K팝 음악팬들이 운영하는 기후 행동 온라인 플랫폼이다. 이들은 방탄소년단(BTS)이 전기차 브랜드 모델로 활동하는 현대자동차를 압박해 전기차에 필요한 알루미늄 생산에서 화력발전을 고집하던 인도네시아 공급사와의 계약을 끝내게 했다.
물론 라이브 공연계의 탈탄소 움직임이 항상 좋은 평가를 받는 것만은 아니다. 콜드플레이는 지난 2022년 세계 최대 바이오 디젤 기업인 핀란드의 네스테와 협력해 월드 투어 배출량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가 환경단체로부터 “그린 워싱(greenwashing)에 이용당한 바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린워싱은 환경친화적이지 않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사려고 친환경 경영을 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네스테는 당시 자신들을 세계 최대의 지속 가능한 바이오 연료 생산업체라고 주장했지만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국제 환경단체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에 따르면 이 회사의 팜유 공급업체들은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1만헥타르(100㎢)의 숲을 파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일부에선 라이브 공연이 탄소 감축에 방해가 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된다. 가수들이 월드 투어를 완전히 중단하는 것은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영국 엑서터대 기상학자인 리처드 베츠 교수는 “음악 산업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주도하고 훌륭한 과학이 뒷받침될 때 진정한 변화가 올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네이처(2024),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4-02828-1
글래스고대 출판부(2022), https://eprints.gla.ac.uk/270449/
Environ. Res. Lett. 5(2010), DOI: https://doi.org/10.1088/1748-9326/5/1/014019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정부효율부 구인 나선 머스크 “주 80시간 근무에 무보수, 초고지능이어야”
- 5년 전 알테오젠이 맺은 계약 가치 알아봤다면… 지금 증권가는 바이오 공부 삼매경
- [절세의神] 판례 바뀌어 ‘경정청구’했더니… 양도세 1.6억 돌려받았다
- 반도체 업계, 트럼프 재집권에 中 ‘엑소더스’ 가속… 베트남에는 투자 러시
- [단독] 中企 수수료 더 받아 시정명령… 불복한 홈앤쇼핑, 과기부에 행정訴 패소
- 고려아연이 꺼낸 ‘소수주주 과반결의제’, 영풍·MBK 견제 가능할까
- 무비자에 급 높인 주한대사, 정상회담까지… 한국에 공들이는 中, 속내는
- 역대급 모금에도 수백억 원 빚… 선거 후폭풍 직면한 해리스
- 금투세 폐지시킨 개미들... “이번엔 민주당 지지해야겠다”는 이유는
- ‘머스크 시대’ 올 것 알았나… 스페이스X에 4000억 베팅한 박현주 선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