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렁더우렁 만든 한과, 월매나 맛있게요~

김명진 기자 2024. 9. 1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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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스퀘어]마을공동체 활성화하는 충남 당진 백석올미영농조합… 모든 재료 지역 생산물로
백석올미영농조합 조합원들이 2024년 9월3일 낮 충남 당진시 순성면 백석리 조합 건물 앞에서 대표상품인 매실한과와 고추장, 된장 등 지역특산품을 들고 있다.

“재미나니까 오지. 집에만 있으면 늙은이에게 치매만 와. 공장에 나와 마을 사람들과 어우렁더우렁 지내니 얼마나 좋아.”

성정옥(89) 할머니가 2024년 9월3일 낮 충남 당진시 순성면 백석리 백석올미영농조합 한과 공장에 출근하던 도중 기자를 만나 신나게 말했다. 조합 설립 초기부터 공장에서 일했던 성 할머니는 몇 년 전에 정규직을 그만두고 화요일 오후에만 아르바이트로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조청을 묻힌 반대기에 튀밥을 입히고 있다.

110여 가구가 사는 백석리에는 한 해 1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영농조합 ‘백석올미마을’이 있다. 마을 할매들이 모여 조합을 만들고 한과를 생산해 유명해졌다. 한과를 생산하기 시작한 건 2011년이다. 부녀회장을 맡고 있던 김금순 백석올미마을 초대 대표가 부녀회원 33명에게 출자금 200만원씩 거두고 정부지원금을 합쳐 백석올미영농조합 공장을 설립했다. 2024년 9월 현재 조합원은 80명으로 늘어났다. 올미는 으뜸 올(兀)과 맛 미(味)가 합쳐져 ‘최고의 맛’이라는 뜻이다. 최고의 한과를 만들겠다는 조합원들의 염원을 담았다.

한과의 뼈대가 되는 반대기를 기름에 튀기고 있다.

할머니들이 만든 한과가 입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밀려들기도 했다. 한때 20명이 넘는 마을 할매가 공장에서 일했다. 지금은 50대부터 70대까지 10명이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1년 중 한과 공장이 가장 바쁜 추석과 설날 등에는 마을주민 10여 명이 아르바이트로 일하기도 한다. 이날도 8명의 주민이 공장에 나와 일손을 더했다.

튀긴 반대기에 조청을 입히고 있다.

공장 안에서는 위생복을 착용한 할매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한과의 뼈대가 되는 반대기를 기름에 튀기고 조청을 발랐다. 기계를 이용해 조청이 발라진 반대기에 튀밥을 얹으면 한과가 완성됐다. 완성된 한과는 바로 포장돼 택배로 주문자에게 발송됐다.

한과에는 쌀이 많이 쓰인다. 구자만 백석올미영농조합 대표는 “공장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재료는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활용하고 있다. 쌀만 한 해에 40t 이상을 수매한다. 조청에 쓰이는 매실 등 지역 농산물을 소매가에 구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석리에는 왕매실나무가 10만 그루 이상 자라고 있다. 한과에 들어가는 조청에 매실을 사용해 새콤달콤한 맛을 내고 있다. 구 대표는 “우리 한과는 크게 달지 않으면서 입에 달라붙지 않는다. 재구매율이 30%가 넘을 정도로 소비자 만족도가 높다”고 자랑했다. 명절에만 주문이 몰리는 한과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조합은 매실과 지역 농산물을 이용한 고추장·약과·쌀과자·매실조청·누룽지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든다. 조합은 설립 이래 조합원들에게 매년 10만원을 배당해 마을 주민들의 소득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조합 건물 마당에 고추장, 된장 등이 익어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장 직원들의 구성도 바뀌었다. 2023년부터 캄보디아에서 온 결혼이민여성 상 마라(27)씨가 함께 일하고 있다. 마라씨는 “일은 힘들지만 돈도 벌고 사람들과 만나서 어울리는 것이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정년퇴직한 배무한(64)씨는 ‘당진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백석리에 정착했다. 배씨는 “전통식품인 한과 만드는 과정을 자세하게 배우는 게 너무 재밌다. 이곳 생활에 만족하고 있어 농촌생활이 즐겁다”고 말했다.

조합에도 고민은 있다. 설립 초기와 다르게 백석올미마을과 같은 조합이 전국에 많이 생겨 경쟁이 심해졌다. 직원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퇴직하는 사람은 있는데 대체할 인력이 없다. 공장장으로 일하는 백석리 부녀회장 유희숙(59)씨는 “공장은 마을공동체 형성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며 “마을에 사람이 없다. 그래서 공장이 계속 유지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구자만 대표는 “우리 조합은 이익을 크게 남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공장을 크게 확장하거나 판매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려는 계획은 없다. 마을공동체를 유지하고 기여하는 데 의미가 있다”며 “사람이 살고 싶어 하는 마을을 만들어 귀촌하려는 분들을 많이 유치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조합원들이 완성된 한과를 포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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