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라트라비아타’ 윤석호 감독 “영화는 나의 꿈...언제나 사랑이죠”
11일 개봉한 ‘여름이 끝날 무렵의 라트라비아타’(이하 ‘라트라비아타’)는 마음속 상처를 안고 제주에서 만난 영희와 준우가 클래식 음악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클래식 음악 멜로 영화다.
드라마 ‘가을동화’ ‘겨울연가’ ‘여름향기’ ‘봄의 왈츠’ 계절 시리즈로 한류 돌풍을 몰고왔던 윤석호 감독의 첫 국내 스크린 연출작이다. 앞서 감독은 2020년 마시마 히데카즈, 사나다 마스미 주연의 ‘마음에 부는 바람’을 통해 일본에서 첫 영화 연출을 맡은 바 있다.
‘사랑비’ 이후 12년 만에 돌아온 그는 “전 한 번도 떠나 있다는 생각은 안 했다. ‘사랑비’하고 머리 좀 식혔다. 자기 한계를 느낄 찰나에 아이템을 찾아보고자 영국에서 1년 있었다. 그때 영화와 뮤지컬을 보고 한류 강의를 했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영화 제의가 왔다. 기획하고 준비하다 보니 3년 걸리더라. 남들이 공백기라고 말하는 시간에도 저는 항상 뭘할까 고민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70대를 바라볼 때 영화를 시작하게 됐는데, 저는 ‘TV문학관’을 좋아했고 아주 오래 전부터 영화에 꿈이 있었다. 우리 때는 프랑스문화원이 외국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그렇게 예술 영화들을 봤고, 문학 음악 미술을 좋아했는데 그걸 종합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오랜 기간이 걸려서 첫 영화를 개봉하게 됐는데 버킷리스트를 이룬 것에 스스로 칭찬하고 싶다. 여기에 동력을 얻어서 앞으로 계속해 나가고 싶어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며 변함 없는 열정을 드러냈다.
윤 감독은 ‘라트라비아타’를 연출하게 된 계기를 묻자 “일본 영화를 먼저 연출하게 됐는데, 당시 일본 프로듀서들을 알게 됐고 저에게 맞는 소설이 있다고 원작을 추천해줬다. 한국어 번역본이 있어 읽어 보니 제 취향에 맞았다.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스토리도 짠한데 음악이 얽힌 작품이라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펜데믹 때 전체적으로 우울한 상황에서 ‘다정함의 과학’이란 책을 읽었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정함이 사람을 치유한다는 내용이 좋더라. 상처가 있는 사람이 다정함으로, 그건 공감일 수도 연민일 수도 있다. 그렇게 치유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아름다운 영상미를 담은 작품들로 ‘영상 시인’이라고 불리는 윤석호 감독은 이번 작품을 위해서 1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 김녕과 제주를 찾았다.
그는 “저예산이라 동해 남해를 돌며 촬영 장소를 물색했는데 바다 색깔 이미지가 잘 안나오더라. 제주도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가파도가 있는데 동화 같은 모습이 남아 있었다. 자전거 길이나 동네 길은 가파도에서, 영화 속 배경의 집은 김녕에서 촬영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찾았을 때는 영화의 배경이 될 9월에 태풍이 없어 좋더라. 그런데 막상 다음 해 촬영할 때는 태풍을 3번이나 만나서 애를 먹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한해에 태풍이 없으면, 다음 해 온다고 하더라. 첫 영화지만 스케줄대로 촬영을 진행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더라. 그래도 실제 태풍이 부니까 자전거 바닷가 장면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건, 제가 생각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흐린 날이 많아서 그런 이미지를 다 담지 못한게 아쉬웠다”고 털어놨다.
‘영상 시인’이란 표현에는 손사래를 치며 “그렇게 봐주면 좋지만, 제가 법접할 수 없는 용어다. 저도 시인을 좋아한다. 풍경화 같은, 시정이 있는 그런 게 좋다. 함축적인 단어로 군더더기 없이 통찰력있게 진실을 꿰뚫는 게 시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저 역시 그렇게 연출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윤 감독은 ‘라트라바이타’에서 함께한 김지영과 배수빈과 작업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김지영은 ‘전원일기’의 복길이 이미지가 세서 그런 유형의 작품을 많이 했더라. 그런데 뭘해도 밉지 않고 여성적인 매력이 있다. 그건 김지영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영희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배수빈도 주로 빌런 역할을 많이 하더라. 배수빈의 눈을 보면 눈매가 고독해 보이고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 초반에 못되게 하다가 자기 속내가 드러나고 영희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자기도 치유되는 준우 캐릭터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영희와 준우를 잘 살려줬다”고 칭찬했다.
그는 “원빈 배용준 류시원 이정재 등 신인들을 발굴해 작업을 했다. 그냥 끌리는 게 스타성이라고 생각한다. 카메라 테스트와 실제로 보는 게 다른데, 롱테이크로 모니터를 봐도 지루하지 않고 자꾸 줌을 들어가고 싶다. 그런 타고난 매력을 보는 눈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신인을 많이 쓴 이유는 ‘뭐든지 시키세요’라는, 다 집어먹을 듯한 의욕과 에너지를 갖고 있어서다. 경험이 없어서 서투르지만, 그들이 주는 에너지와 힘이 있어서 함께 작업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함께했던 배우들과 재회할 계획은 없냐는 질문에는 “원빈도 제가 데뷔시켰고, 예전에 불발됐지만 일본에서 함께할 작품을 갖고 접촉한 적이 있긴 하다. 그런데 성향이 멜로보단 ‘아저씨’ 같은 장르를 좋아하더라”며 “저 역시 제가 함께 작업한 배우들과 언젠가 다시 작업해보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런데 옛날 인연 보고 무작정 해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 캐릭터와도 잘 맞고 저도 자신 있는 이야기가 있을 때 만나야 하지 않겠나. 호시탐탐 기회는 보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동안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어온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색깔을 지켜가고 싶다고 했다. 다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의 사랑 이야기도 조금 더 넓고 깊어질 예정이다.
윤 감독은 “자극적이고 강한 장르물이 많아졌더라. 드라마도 요즘엔 사랑 이야기가 철저하게 주류는 아니니까 상업적으로 투자받기 어렵긴 하다”며 “콘텐츠를 만드는 데 행복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소수가 좋아하더라도 계속 만들고 싶다. 다양성 측면에서도 저희 같은 작품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저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고통도 이별의 아픔도 있지만, 사랑은 인간에게 설렘과 에너지를 준다. 나이 드신 분들도 연애 시절 이야기를 하면 얼굴에 꽃이 핀다. 수줍어하면서도 웃지 않나. 인간은 이기적인데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이타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저는 그런 사랑 이야기가 좋다. 그래서 사랑 이야기가 폄하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랑 이야기가 좋았어요. 우리 때는 ‘러브스토리’ ‘남과여’ ‘비포선라이즈’ 같은 사랑 영화들을 좋아했죠. 40대에 ‘가을동화’, 50대에 ‘겨울연가’를 했는데, 그때는 젊은이의 감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70대를 바라보니 젊은이의 사랑 이야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나이 맞게 중년과 노년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
[양소영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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