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설득 나서라"…'용산'의 진심을 보여줄 때 [기자의눈]

한상희 기자 2024. 9. 1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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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4일 경기 의정부 권역응급의료센터인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을 방문, 응급의료 상황을 점검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4.9.4/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최근 쿠팡플레이의 SNL 코리아 시즌2 정치 풍자 프로그램 '심(여)야식당'이 응급실 위기를 다뤄 주목을 받았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용산 식당 주인은 '응급실 위기'라는 손님들에게 "응급실이 위기다 뭐다 말들이 많으신데, 걱정마세요. 응급실은 여러분을 위해서 언제나 열려 있으니까요"라며 "제가 가봤는데 응급실 아주 원활하게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달 29일 국정 브리핑 후 기자회견에서 의료 공백 사태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비상진료체제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답한 윤석열 대통령의 상황 인식을 꼬집은 것이다.

어떤 문제든 현실을 똑바로 직시해야 해결할 수 있다. 정부는 "전체 409개의 응급실 중 99%인 406곳은 24시간 운영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의사들 사이에선 "의료 인프라가 이미 깨졌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7개월이 지나는 사이 군대를 가거나 외국으로 나가는 등 뿔뿔이 흩어졌다. 의사 출신 의원은 "전공의는 더이상 하나의 집단이 아니다. 2024년 2월 이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전공의 이탈은 전문의 보조 인력부족으로 이어졌고, 과로에 시달린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하나둘 현장을 떠나며 전국적으로 응급실 운영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의사들에게 수차례 증원안을 가져오라고 요청했으나, 의사들은 증원 전면 백지화를 고수한 채 정부의 대화 제안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때로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응급실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 개혁을 추진했지만, 현재의 상황은 전공의 이탈로 악화됐다. 그런데도 마치 정부가 의료 위기를 초래한 것처럼 야당과 언론은 물론 여당까지도 상황을 곡해하고 있다는 것이다.또 정치권과 언론이 과장된 위기 인식으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의료계가 다양한 형태의 대화 제안을 모두 거부했다'며 답답해 하거나 '이제 무엇을 더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또한 '정책을 추진할 땐 여론의 흐름에 휘둘려선 안 된다'며 '윤석열 정부 의료 개혁의 성과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개혁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출구가 보이지 않던 상황에서 여야와 정부가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에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협의체 합의 후 닷새가 지나도록 상황은 여전히 원점에 머물고 있다. 현재 의료계는 내년과 내후년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에게 "의료계를 잘 설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의료계를 향해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고 거듭 요청했다.

그러나 의료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단순한 말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유화 제스처가 필요하다. 의료계는 대통령의 사과와 보건복지부 장·차관의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유감 표명과 같은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고, "인사권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라는 완강한 태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여야의정 협의체의 기본 정신은 대통령(정부)의 권한을 내려놓고 의료단체와 동등한 위치에서 모든 문제를 논의하고 결정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선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 문제는 부차적이라며, '우리가 해결할테니 너희는 따라와라'는 정부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의료계는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 중 '공정한 보상 체계 확립' 부분에서 비급여 영역의 축소와 급여 제한이 의사의 직업적 자유를 침해하고 장기적으로 의료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의료 사고 안전망 구축'은 민사 소송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면서 형사 소송에 약간의 면책을 주거나 공제조합에 보험 가입을 유도하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공제보험이 결국 민영화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로 인해 더 높은 리스크를 안고 있는 분야에서는 더 높은 보험료를 부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의료계의 주장이다.

한 의사 출신 의원은 "당장의 회유책으로는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정부가 기존 정책을 수정하고, 의료계 현장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들을 대화에 참여시켜 실질적인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료계는 필수·지역 의료의 중요성에는 동의하고 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서 정부와 갈등을 겪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기보다는 반 걸음씩 양보하며 함께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게 정부와 의료계, 그리고 국민 모두를 위한 길이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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