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폭력에 대처하는 뉴스룸의 자세
[이슬기의 미다시]
[미디어오늘 이슬기 전 서울신문 기자]
최근 딥페이크를 취재·보도한 기자들은 삼중고를 겪어야만 했다. 범행 양상을 목도하는 데서 오는 충격, '기자 합성방' 등 여성 기자를 타깃으로 한 공격과 더불어 이것을 기사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서 오는 고민까지 수반됐다.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범행 현장을 목도하는 데서 오는 고통이 일차적이었다. 딥페이크의 여러 양상을 다각도로 보도한 박상혁 프레시안 기자는 “가해 장면을 보는 게 제일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남성인 박 기자는 “남성 가해자들이 하는 대화와 이들이 만들어내는 성착취물의 폭력성, 여성을 인격체로 보지 않는 모습과 더불어 동료 여성 기자들이 성착취 당하는 장면을 보는 데서 오는 무력감”을 토로했다.
여성 기자들로서는 당연히 '기자 합성방'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22만 명 딥페이크 텔레그램방'을 최초 보도한 박고은 한겨레 기자는 “그들의 가해 수준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대로 '위축'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다. “네, 그래서 계속 취재는 멈추지 않을 거예요.”
그들 고민의 종착지는 딥페이크 성범죄를 기사로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있었다. '어린 남자애들의 장난'이라거나 '그래봤자 가상 아니냐'라는 얘기를 듣는 딥페이크 성폭력의 실상을 독자,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일은 많은 고민이 뒤따랐다. 피해자들에 '2차 가해'가 되지 않기 위해 표현을 정제하고 고르는 한편으로, 실상을 그대로 보여줘야 대중들이 심각성을 인식하리라는 판단이 자주 교차했다.
'기자 합성방'의 존재를 단독 보도한 정지혜 세계일보 기자는 딥페이크 성범죄를 다루는 데 있어 '기사'라는 형식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기사라는 게 형식이나 표현할 수 있는 수위가 정해져 있으니까 이걸(딥페이크 성범죄) 그대로 전달할 수 없다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언어가 정제되고, 이미지가 재가공되는 과정에서 심각성이 어쩔 수 없이 축소되는구나… 그런 것들이 딜레마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기자가 택한 전략은 성착취물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텔레그램방의 가해자 워딩을 잘라서 보여주거나, 혹은 이들 대화를 아예 그래픽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대화 내용은 그 자체로 성적 폭력이지만, 그들의 사고 체계를 분석하고 상황을 진단하기 위해 다루어야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나 또한 딥페이크 성범죄를 취재해 '오마이뉴스'를 통해 기사화했다. 언론사 소속이 아닌 프리랜서 신분이어서, 기사 형식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내가 선택한 방식은 '취재기'였다. 딥페이크를 취재하는 기자이자 시민의 한 사람, 젠더 관련 이슈를 다루며 여성 기자를 향한 백래시 위협을 겪어온 나의 감정 등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가 선정적인 '어그로성' 게시물이 되는 것은 지양해야 했기 때문에,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자의 발언을 불필요하게 인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편집기자와 함께 부단히도 크로스 체크했다.
그 과정에서 동료 기자가 추천해 준 영국의 저널리스트 로라 베이츠의 책 '인셀 테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남초 커뮤니티를 1년 간 잠입해서 쓴 르포르타주인 '인셀 테러'는 나에게 취재·보도 방법론에 있어 여러 길잡이가 됐다. 저자는 책의 앞머리에 자신이 목도한 표현이나 상황들을 순화하지 않았다고 썼다. '집단으로서의 우리가 비위가 약하면 이것은 아주 해결하기 곤란한 문제가 되고 만다. 우리는 그것을 직시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해야 한다.'(22쪽)
우리 사회가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처하는 자세에 있어서, 내가 가장 돌려주고 싶은 말이 저것이다. 공적 담론을 다루는 언론에도 마찬가지다.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고전적 언설은, 악인을 합리화할 서사를 주지 말라는 것이지 악인에 대한 분석과 진단을 그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특히나 몇십 만 명 규모의 딥페이크 텔레그램방을 마주한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뉴스룸 내 환경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주 자주, 기자가 자신이 다루는 이슈의 화제성을 따라 수면 위로 부상했다 함께 침잠하는 모습을 본다. 딥페이크 성범죄처럼 가시화에 어려움이 따르고 선정성 여부가 고민되는 이슈는, 더욱이 취재 기자를 고립시킬 가능성이 커진다. 데스크와 뉴스룸을 설득하는 데서부터 많은 어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상황을 가장 먼저 '직시'한 이들일 수 있다. 우리의 언론 환경은 이들 기자를 잘 보호해왔는지,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나아가 함께 고민해왔는지, 이번 일을 기화로 치열하게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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