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체증 내리는 덴 ‘책 소화제’ 최고지
마침내 가을이 당도했다. 풍요와 전환의 시기인 추석 연휴 기간에 많은 이들이 떠남과 만남의 계획을 세운다. 먼 곳으로 여행하거나 각양각색 친족을 만나는 것은 결단과 비용과 시간이 드는 일이지만 돌아올 땐 그 전과 달라진 나를 만날 수 있다. 시간과 비용 때문에 떠남과 만남이 어려웠던 사람이라도 책을 통한다면 지금까지 나와 다른 나를 만들 수 있다. 올 추석, 전문가들은 어떤 책을 권할까. 아래는 전화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한국인에게 소고기란 무엇일까
박찬일 셰프·작가 추천도서
위건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 2023, 1만6천원
노비와 쇠고기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 펴냄, 2023, 3만9천원
백년목 1·2
정선근 지음, 언탱글링 펴냄, 2024, 각 권 2만2천원
조지 오웰은 르포르타주가 진짜 끝내줘요 . 소설보다 훨씬 직설적이에요 . 이데올로기적으로 ‘혁명 전사’로서 ‘현장’에 가는 건데, 투덜거림이 장난 아니거든요. 사회주의 좌파인데 좌파를 자극하는 말을 쓰고 . 정말 순수한 인간이거나 , 나이 먹어서 노회하지도 않고 .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보면, 지역 폐광 얘기가 나와요 . 탄광 전성시대에 사람들이 얼마나 혹사됐는지 알 수 있어요. 우리나라도 탄광 100년사가 끝나고 마지막 탄광이 문을 닫게 됐잖아요. ( 2025년 삼척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게 됨 -편집자)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게 당시 희생한 사람들 덕이기도 한데요. 추석 때, 시간 좀 나면 평소 못 봤던 책 좀 보라는 차원에서. 추석이 지나면 곧 탄을 때는 시기가 오기도 하고요.
‘노비와 쇠고기’도 추천합니다. 강명관 선생이 작정하고 쓴 건데, 풍속사와 상업사를 연결해 소고기의 유통을 본격적으로 파헤친 거의 유일한 책 아닐까요. 성균관 근처 반촌의 소고기 과점에 대한 진면목을 보여주면서 경화세족 수탈과 반촌을 관리하는 ‘반인’의 미묘한 연대를 볼 수 있죠. 소고기를 맛있게 먹자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가 소고기를 좋아하게 된 까닭의 이면에는 아픈 수탈사가 있다는 거죠.
‘백년목’도 함께 추천해요. 목디스크 환자가 너무너무 많아요. 10대 소년들의 발병이 몇십 배 늘고 있다죠. 우리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질환은 목디스크일지도 몰라요. 스마트폰을 하루 10시간씩 보니까요. 이 책을 보면 수술이 아니라 체조로 목디스크를 방어할 수 있다고 해요. 요리사와 작가들한테 목디스크가 많습니다. 저는 ‘따불’이잖아요.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는 견결한 시선
김남희 여행작가 추천도서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반비 펴냄, 2018, 1만8천원
고뇌의 원근법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돌베개 펴냄, 2009, 1만6천원
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반비 펴냄, 2014, 1만8천원
이탈리아에서 1년 정도 살면서 어학연수를 할 계획이에요. ‘5개 국어 하는 민박집 할머니’가 꿈이거든요. 지금까지 이탈리아에 10차례 정도 갔지만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은 언제나 제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요. 늘 새로운 이탈리아를 보게 하죠.
1993년 이후에 서경식 교수님의 책을 모두 읽는 ‘전작주의 독서’를 해왔어요. 서경식의 그림 이야기는 소외와 억압에 시달린 사람들의 시선이 있어요. 서경식 교수님 자체가 경계인으로 살다가 간 디아스포라였잖아요. 경계인의 위치에서 보는 세상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또한 평생 견결한 좌파로 살았던 사람이 읽는 이탈리아 시대상과 사유의 깊이를 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보고 볼로냐의 화가 조르조 모란디의 생가와 미술관에 간 적도 있어요. ‘고뇌의 원근법’을 읽고는 독일 뉘른베르크에 가서 독일 화가 오토 딕스의 그림을 만나기도 했고요. ‘나의 조선미술 순례’도 추천합니다. 서경식의 여러 미술책은 미술 작품이 중심이지만 결국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는 사람의 이야기로서 끈질기게 묻고 답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임윤찬·조성진도 좋지만 글렌 굴드 못 잃어
김동연 출판사 프란츠 대표 추천도서
굴드의 피아노
케이티 해프너 지음, 정영목 옮김, 글항아리 펴냄, 2016, 1만8천원
글렌 굴드에게 듣다
글렌 굴드·조너선 콧 지음, 이석호 옮김, 경당 펴냄, 2024, 1만8천원
‘굴드의 피아노’는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인생이 아니라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피아노에 대한 책입니다. 소설책처럼 매끄럽게 쓰여져 너무 재밌게 보기 좋은 책이라 여러 사람에게 선물했어요. 굴드의 피아노를 주로 매만져준, 눈이 보이지 않는 테크니션(조율사)에 관한 이야기가 비중 있게 나오고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만드는 이야기도 들어 있어 피아노에 관한 상식도 얻을 수 있어요.
2024년 7월 발간된 ‘글렌 굴드에게 듣다’라는 인터뷰집이 있어요. 굴드는 50살까지 살았는데 30살 정도 됐을 때 무대에 서길 그만두고 레코딩만 고집했어요. 책에는 그때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나 레코딩에서 자신이 신경을 쓴 부분 등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어요. 이 인터뷰를 읽으면서 레코딩을 찾아 들으면 좋은 독서가 되지 않을까요. 2020년 1월부터 우리가 ‘아파트먼트 프란츠’라는 공간을 운영하면서 매달 음악모임을 했는데 첫해 처음과 마지막에 글렌 굴드의 음반을 들었어요. 연주 초기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레코딩을 남겼고 말년에 한번 더 녹음했는데 연주 스타일, 템포가 완전히 달라요. 지금의 젊은 연주자도 흉내 내기 어려울 것 같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무한정 질주할 수 있는, 굴드만이 가진 자유로운 힘이 있어요. 너무나 많은 것이 빨리 변하고 유행과 마음이 바뀌는 지금 이 시대에 오로지 자신의 명확한 길을 추구하는 굴드가 여전히 그리워요.
은근히 팬이 많은 만화책과 영화책
수신지 만화가 추천도서
지역의 사생활 99
삐약삐약북스 펴냄, 1만1천원
엔딩까지 천천히
이미화 지음, 오후의소묘 펴냄, 2024, 1만8천원
‘지역의 사생활 99’는 각 지역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만화책인데 지금까지 28권이 나왔습니다. 9권씩 시즌3까지 나왔고, ‘조선 편’이 특별판으로 출판되어 나와 있어요. 이 책을 낸 ‘삐약삐약북스’는 전북 군산의 독립만화출판사인데 2024년 8월31일부터 9월1일까지 연 제1회 군산북페어에도 출점했어요. 우리(귤프레스)도 망설이다 이번 군산북페어에 참여했는데 분위기가 너무 따뜻하고 좋았어요. 삐약삐약북스는 우리 바로 옆 부스였죠. 그래서 눈여겨봤는데 군산에 거주하는 분들뿐 아니라 군산에 처음 온 사람들이 ‘지역의 사생활 99: 군산’을 구매해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추석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 지역의 책을 사서 읽거나 친구 등에게 선물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역의 사진집들은 있지만 지역을 중심으로 다룬 만화책은 잘 없는 편이거든요.
에세이 ‘엔딩까지 천천히’도 추천하고 싶어요. ‘영화 처방 편지글’입니다. 이미화 작가는 ‘작업책방 씀’이라는 책방 겸 작업실을 운영하는 영화광인데요. 사연을 받아서 직접 영화를 처방하는 편지를 보내는 거예요. 조언이나 훈계 느낌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 편한 글이에요. 편지글 자체의 내용이 좋고, 글이 너무 위로가 돼요. 영화를 추천해주기 때문에 추석 때 시간이 있는 분들은 영화를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명절 가족 갈등 대비한다는 느낌으로
박혜진 문학평론가·민음사 한국문학팀장 추천도서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송지현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21, 1만5천원
옐로페이스
R. F. 쿠앙 지음, 신혜연 옮김, 문학사상 펴냄, 2024, 1만8천원
송지현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추천합니다. 송지현 소설에는 이모나 삼촌 등 직계가족이 아닌 친족들과 쌓아가는 친밀한 관계들이 자주 나와요. 수많은 가족소설 중에서 송지현의 가족소설이 갖는 가볍고도 친근한 느낌이 이런 특징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단편소설 ‘오늘의 가족’은 추석이라는 시간에 읽으면 훨씬 더 극적일 작품이에요. 장례식장에서의 ‘웃픈’ 장면들로 가득한 소설인데요. 괴상한 복장을 한 가족들, 이상한 곡소리, 나름의 종교적 이유로 빈소에 들어오지 않는 사촌오빠 등 엄숙함과는 거리를 둔, 그야말로 엉망진창 속에서 미운 정이란 무엇인가, 싫으면서도 없으면 서운한 관계란 무엇인가, 돌아보며 서로에 대한 애틋함을 회복할 수 있는 책입니다.
1996년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 작가 R. F. 쿠앙의 장편소설 ‘옐로페이스’는 작가 스스로 “경쟁이 치열한 출판업계의 공포소설”이라고 소개했는데요. 제게는 재미있고, 지적이며, 거침없는 소설이었습니다. 예술의 상품화, 인종차별과 역차별, 재현의 윤리, 트위터 담론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전쟁 등 최근 첨예해지는 출판 문화의 쟁점들을 미스터리한 이야기 속에 담았어요. 한국 문학계에서의 논란들과 겹치는 부분들도 있는데요. 논쟁적 문제를 다루면서도 재미와 직설적 의견들이 공존해 흥미롭게 읽힙니다. 추석 땐 여러 가족을 만나 설왕설래하면서 논쟁들을 하지 않나요. 경쟁적으로 판단하는 일에 익숙한 요즘인데 여러 의견을 두루 살필 수 있는, 뜨거우면서도 선선한 데가 있는 소설입니다.
*한겨레21 기자들의 추석 권장도서
곽진산 기자
이방인(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민음사 펴냄)
명절이라고 명절다워야 하나. 관습을 거절하고 싶은 사람에게.
김효실 기자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브룩 노엘·패멀라 D. 블레어 지음, 배승민·이지현 옮김, 글항아리 펴냄)
명절이라 더 생각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애도해야 한다면.
류석우 기자
1.5도 이코노믹 스타일(김병권 지음, 착한책가게 펴냄)
명절에도 기후붕괴는 계속된다. 기후붕괴를 막을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이 있다고?
서혜미 기자
개의 작동 원리(대니얼 타타스키·데이비드 험프리스 지음, 김다히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말하진 못하지만, 온몸으로 표현하는 털 뭉치들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유진 기자
악어의 눈(발 플럼우드 지음, 김지은 옮김, 연두 펴냄)
먹는 것뿐 아니라 먹히는 것을 생각하는 추석.
이재호 기자
순교자(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문학동네 펴냄)
진실 같은 거짓, 거짓 같은 진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나. 신앙은 어느 편인가.
이재훈 편집장
스승은 있다(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동섭 옮김, 민들레 펴냄)
배움은 거래가 아니다. 그렇다면 배움이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읽어야 할 책.
정인환 기자
퀸의 대각선(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펴냄)
지루한 명절 연휴, 박진감을 원한다면 영화 대신 펼쳐도 좋을 베르베르의 신작.
오세진 기자
차별 비용(리 배짓 지음, 김소희 옮김, 글항아리 펴냄)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를 당장 멈춰야 한다, 진정 나라 경제를 걱정한다면.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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