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가격' 하얀석유 추락의 역설…본격 전기차 시대 열린다

안정준 기자, 최경민 기자, 박미리 기자 2024. 9. 1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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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리튬 패러독스(上)
[편집자주] 전기차 시대를 이끄는 '하얀 석유', 리튬 가격이 추락한다. 리튬 가격이 뛰어야 돈을 버는 배터리 밸류체인 업계의 실적도 전기차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과 맞물려 추락한다. 하지만 리튬값이 여기서 반등하면 전기차 대중화의 필수조건인 전기차 가격 하락도 지연돼 캐즘 기간만 늘어난다. 이제 리튬 가치가 더 내려가야 역설적으로 전기차 시장이 산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리튬 패러독스'를 견뎌야 할 배터리 밸류체인 업계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11만원→1.3만원…'하얀석유'의 추락, 전기차 살린다
리튬가격 추이/그래픽=김지영

리튬 가격이 전기차 시대의 대명사 격인 테슬라가 첫 보급형 모델을 공개한 8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리튬은 그동안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 '하얀석유'로 통한 배터리 핵심 광물이지만 전기차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이 시작되자 가치가 순식간에 추락한다. 리튬 가격이 올라야 돈을 버는 배터리 밸류체인도 실적 둔화에 허덕인다. 하지만, 이젠 리튬 가격이 앞으로 더 내려가야 캐즘이 걷혀 역설적으로 밸류체인 전반이 되살아난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한다.

10일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탄산리튬(전기차 배터리 원료인 리튬 정제물) 가격은 지난 5일 기준 kg당 70.5위안(약 1만3000원)을 기록했다.

현재 가격은 리튬이 kg당 1만3000원에서 1만8800원 사이에 거래되던 2015~2016년 수준이다. 테슬라가 첫 보급형 전기차 '모델3'를 공개했고 현대차는 회사 최초 양산형 전기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내놓는 등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이제 막 전기차 시대로 진입하던 때였다. 리튬 가격은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이 지금의 16분의 1 정도에 불과하던 당시로 회귀한 셈이다.

8년 전으로의 도돌이표지만 가격 하락은 최근 순식간에 진행됐다. 리튬 가격의 사상 최고점은 2022년 11월의 kg당 581.5위안(약 11만원)이었다. 불과 1년 9개월 사이 가격은 고점대비 90% 폭락했다. 갑자기 찾아온 캐즘이 가격 폭락의 주범이다. 전체 잠재 수요의 16%에 해당하는 얼리어답터(초기 소비자)의 구매가 끝나자 전기차 판매 증가세가 눈에 띄게 둔화됐고 자연스레 리튬 수요도 줄었다. 캐즘을 예측 못한 전 세계 주요 광산 업체들은 공급을 경쟁적으로 늘려 가격 폭락을 부채질했다.

업계에선 리튬 가격의 이 같은 폭락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토로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리튬 가격 폭락이 시작되기 직전인 2022년 "리튬 가격이 미친 수준까지 올랐는데, 리튬이 부족한게 아니라 채굴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이라며 리튬 공급이 늘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내 A 배터리사 임원은 "수요 정체가 발생할 것으론 예상했지만, 지금처럼 빠르고 급격하게 진행될진 예측 못했다"며 "때문에 설비 투자와 공급 확대에 보다 주력했고 이는 리튬 채굴업체도 마찬가지 였다"고 말했다.

리튬 가격이 폭락하자 배터리 밸류체인 기업 전반의 실적도 꺾인다. 리튬은 배터리 핵심소재인 양극재 원가의 40%를 차지한다. 양극재는 배터리 원가의 40%고, 배터리는 전기차 원가의 40%다. 리튬 가격 폭락이 밸류체인 전반에 타격을 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 니켈, 코발트 등 배터리를 구성하는 다른 주요 광물의 가격까지 하락하며 밸류체인 실적을 끌어내린다.

출구가 없는 듯한 리튬 추락의 소용돌이로 보이지만, 업계에선 이제부터는 오히려 리튬 가격이 더 떨어져야 밸류체인 전반이 되살아난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와 관련, 업계는 골드만삭스의 전기차 배터리 가격 하락 전망 보고서에 주목한다. 골드만삭스는 리튬 가격의 지속적 하락 탓에 지난해 kWh당 151달러였던 배터리 가격도 올해 115달러를 거쳐 내년이면 91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는 그동안 배터리 가격이 kWh당 10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가격이 같아지는 '프라이스 패리티'(Price parity)가 도래해 캐즘이 걷히고 본격적 전기차 대중화 시대가 열릴 것으로 봤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제부터는 리튬 등 배터리 원자재 가격의 하락이 전기차 캐즘 기간을 단축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배터리 가격이 떨어지고 전기차 가격도 낮아지는 효과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힘 잃은 리튬, 탈캐즘 기회지만…내년까진 '치킨게임'
리튬, 배터리 가격 추이/그래픽=이지혜

이미 고점대비 90% 폭락한 리튬 가격은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현재 kg당 월평균 1만7000원 수준인 리튬 가격이 내년이면 1만4000원으로 약 18%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UBS는 2025~2026년 리튬 가격이 23% 떨어질 것으로 봤으며 씨티그룹 역시 15~20% 추가 하락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그동안 리튬 공급과 재고가 크게 늘어난 반면 리튬을 원료로 만든 배터리의 수요는 정체된 때문이다. 독일 리서치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15년 3만8000톤이었던 글로벌 리튬 생산량은 지난해 18만톤으로 4.7배 늘었다. 급증한 리튬 공급 탓에 호주 등 일부 광산업체들이 감산에 나섰지만 중국이 공급을 줄이지 않은 데다 아프리카에서의 신규 공급까지 추가될 가능성이 높아 리튬 가격은 최소 내년까진 더 내려간다는게 시장과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 같은 리튬 가격의 추가 하락이 현실화하면 그동안 배터리 밸류체인 업계가 기대한 '프라이스 패리티'(Price parity)가 시작된다. 배터리 가격이 kWh당 10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보조금 없이도 전기차 가격과 내연기관차 가격이 같아져 전기차 판매가 급증한다는게 업계 전망이었다. 이와 관련, 골드만삭스는 리튬 가격이 kg당 1만4000원 수준으로 내려가는 내년이면 배터리 가격이 kWh당 91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리튬의 추락으로 전기차 캐즘이 걷히는 시나리오다.

전 세계 리튬 공급량과 전기차 판매량 추이/그래픽=김지영

이 같은 시나리오를 보는 배터리 밸류체인 업계의 속내는 복잡하다. A 배터리사 관계자는 "캐즘이 마무리되려면 리튬 가격이 내려가야 하는게 맞다"면서도 "하지만 리튬 가격이 내려가는 동안엔 업계 실적도 악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게 딜레마"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동안 리튬 가격이 폭락하는 사이 업계 실적 추락의 골은 깊었다. 지난해 상반기 1조4421억원이던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의 합산 영업이익은 올해 상반기 92.4% 급락한 1086억원을 기록했다. 양극재 업체 등 배터리 주요 소재기업의 실적도 이와 다를 바 없었다.

리튬 가격 하락이 배터리 밸류체인 업계 실적 둔화로 연결되는 구조는 이렇다. 우선 배터리 핵심소재인 양극재 생산 기업이 배터리사에 양극재를 판매하는 가격은 판매 시점의 리튬 가격과 연동된다. 그런데 양극재사가 리튬을 매입하는 시점과 양극재를 판매하는 시점 간에는 2~3개월 시차가 있다. 지금처럼 리튬 가격이 계속 떨어지면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최악이 상황에 직면한다. 리튬 가격 하락기에 양극재를 싸게 산 배터리사는 완성차 업계에 공급하는 최종 제품 가격 역시 낮게 책정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완성차 업계의 사정까지 겹친다. 리튬과 양극재, 배터리가격이 연쇄적으로 떨어질게 뻔한 상황에서 완성차사는 당연히 배터리 구매를 미루게 된다. 이는 다시 배터리 업계와 양극재 업계의 재고누적과 공장 가동률 둔화로 연결된다. 이것이 리튬 가격이 90% 폭락한 사이 배터리 밸류체인 전반에서 진행된 악순환이다. 그리고 이 같은 악순환은 앞으로 리튬 가격이 추가로 떨어지면 또 다시 반복된다.

반기 기준 LG엔솔, 삼성SDI, SK온 합산 영업이익 추이/그래픽=윤선정

배터리 밸류체인 업계는 결국 리튬 가격이 더 떨어져 배터리 가격이 kWh당 100달러 아래로 내려갈 때 까지 버티는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B 배터리사 관계자는 "리튬 가격 하락을 예측 못한데다 가격 하락속도도 워낙 빨라 대응 자체가 늦었다"며 "현재로선 비용을 절감하고 재고를 조절해 나가는게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이에 배터리사는 조금이라도 싼 양극재 공급처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 특히 리튬을 직접 구매해야 하는 양극재 업계는 사실상 비용 절감 외엔 방법이 없다고 토로한다. 완성차 업계는 리튬값 하락이 그칠때까지 배터리 재고를 줄이고 하이브리드카 판매 확대 등으로 대응한다. 업계 전반에선 결국 이 같은 비용절감 총력전이 펼쳐진 가운데 재무구조가 튼튼한 곳이 살아남는 치킨게임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박태성 배터리협회 부회장은 "리튬 가격 하락을 버티지 못한 기업이 나오면 결과적으로 국내 배터리 관련 공급망이 무너지게 된다"며 "양극재 등 공급망 기업에 대한 충분한 정책 금융이 필요하며 기술 투자세액공제액을 현금으로 환급해 주는 직접환급제 도입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정준 기자 7up@mt.co.kr 최경민 기자 brown@mt.co.kr 박미리 기자 mil0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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