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레이더] '응급실 뺑뺑이' 추석 연휴 때 내가 당하면 어쩌나
시민들 '아프면 병원 찾기도 힘들다' 불안감 팽배
(전국종합=연합뉴스) 추석 연휴 응급 의료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 가운데 정부 대책에 이어 지방자치단체들도 필수 의료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대형병원들은 '정상 진료'를 하고 동네 병원들도 지난 설 연휴보다 갑절 이상 문을 열기로 했다.
하지만 한시가 급한 환자의 '응급실 뺑뺑이'에 대한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반년 넘게 이어지는 의정 갈등 속에 처음으로 맞는 명절이고 연휴 기간 늘어나는 유동 인구와 119 신고로 인해 응급 의료 체계의 구멍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미 전국 각지에서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거나 상태가 나빠지는 안타까운 사례가 속속 나오면서 지병이 있는 노인이나 영ㆍ유아를 둔 집에서는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지자체 비상반이 응급기관 일대일 전담…문 여는 동네병원 '갑절 이상'
11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지자체마다 추석 연휴 기간 응급실 진료상황실을 운영하며 응급 현황을 지속해 모니터링한다.
또 응급의료 및 코로나19 등 감염병 발생 시 시민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비상 의료 관리 상황반을 가동하고 당직 병의원을 확대하는 등 비상 진료체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지자체들은 특히 소방 구급 상황과 연계해 최적 시간 내 중증 응급환자를 이송하고 전원하는데 역량을 모을 방침이다.
경기, 충북, 경남, 대전, 울산 등은 응급의료기관별 일대일 전담 책임관을 지정해 상황 관리와 진료 차질을 최소화한다.
경북대병원과 계명대동산병원 등 대구시 6개 응급의료센터는 추석 연휴 기간 의료진을 보강한다.
강원대병원은 성인 야간 진료를 중단했다가 시민 불편이 가중되자 지난 7일부터 주말과 공휴일에만 응급의료센터 진료를 오후 9시까지 3시간 연장 운영하기로 했다.
각 지자체는 또 특정 병원 응급실로 환자가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형 병원은 중증 응급 환자 위주로 받고 그 외 응급환자는 2차 병원으로 적극 유도하기로 했다.
비응급 경증 환자는 응급실 방문 자제를 권고하며 대신 연휴 기간 문 여는 동네 병의원과 약국 수를 늘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연휴 기간 응급의료기관·시설은 매일 전국 518곳이 가동되고, 하루 평균 8천곳(7천931곳)에 가까운 병의원이 문을 연다.
이는 올해 설 연휴 기간 운영한 당직 병의원(하루 평균 3천643곳)보다 갑절이 넘는 수준이다.
정부는 경증 환자가 줄고 후속 진료 상황도 개선됐다면서도 명절 기간에 응급실을 포함한 의료기관 운영을 최대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추석 연휴 기간에 문 열 의향이 있는데도 신청을 못 한 의료기관은 지자체를 통해 추가 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정부는 군의관 250여명을 순차적으로 전국 응급실 대체 인력으로 파견하기로 했으며 추석 연휴 건강보험 수가(의료서비스 대가)도 추가 지원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연휴 119 신고 급증할 텐데, 재이송 사례 언제까지
경기도 용인에 사는 60대 권모씨는 "가족 모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몸을 사리게 될 것 같다"며 '응급실 뺑뺑이'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 추석 때 성묘하러 갔다가 말벌에 쏘여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실려 갔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추석 때 또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응급 치료를 제때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전했다.
수원에 사는 30대 박모씨는 "생후 17개월 된 아이가 말을 잘하지 못해 아프면 중증인지, 경증인지 부모가 쉽게 알 수 없다"며 "일단 의사를 만나 진찰을 받게 된다면 마음이 놓일 텐데 발만 구르고 있는 일이 생길까 봐서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29·경남 김해)씨도 "제아무리 대책을 마련한다고 해도 추석 연휴에는 의료진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며 "평상시에도 응급실 뺑뺑이가 일어나는 마당인데 연휴에 혹시라도 아프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많다"고 불안해했다.
인천에 가족들이 모인다는 가정주부 윤모(55)씨는 카톡 가족회의를 통해 "시간을 맞춰서 모였다가 간단히 차례를 지내고 일찍 흩어지기로 했다"면서 "예전에는 아침부터 종일 모여서 먹고 마시고 수다를 떨었지만, 이번 추석에는 과식조차 맘껏 할 수 없어 간소하게 모였다가 해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 10일까지 119 구급대가 환자를 4차례 이상 재이송한 사례는 전국적으로 17건이나 된다.
상반기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지난해(16건)와 2022년(10건) 연간 기록을 웃돌았다.
2차례 재이송 사례는 올해 상반기 78건으로 지난해 1년간(84건)의 기록을 거의 따라잡았다.
또 의료 공백 사태 속에 올해 2월부터 최근까지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구급대원들이 119구급상황관리센터에 "병원을 찾아달라"고 요청한 경우는 1천19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19건)보다 131% 급증했다.
그만큼 응급 환자들이 병원 찾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특히 추석 연휴 기간에는 이동하는 차량도 많고 가족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119 신고 증가로 이러한 사태가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020∼2022년 3년간 추석 연휴 전국에서 들어온 119 신고 건수는 일평균 4만2천731건으로, 평시 하루 평균 신고 3만2천753건보다 1만건가량 많았다.
응급실 의료 인력 부족 상황을 만회하려고 대형병원 응급실에는 중증 환자만 받기로 하면서 환자가 큰 고통을 호소해도 응급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까지 있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 의사는 "병원이 정상 운영되고 응급실에 다소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이면에는 응급실 앞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있다"며 "외관상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면 중증 환자가 아니라고 판단해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받아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병원의 의사는 "정부가 추석 연휴를 전후로 진찰료를 평소의 3.5 배로 인상해준다고는 하지만 얼마 안 되는 의사들이 돌아가면서 당직을 서고 진료를 하니 피로도가 쌓일 대로 쌓였다"며 "이런 땜질식 처방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정부와 지자체가 대책 마련에 분주하지만, 실제 일선 병원들이 응급실 운영을 강화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하소연도 있다.
한 병원 관계자는 "현재까지 추석 연휴 기간 응급실 운영 체계와 관련해 변동사항이 정해지지는 않았다"며 "평시에 준해 응급실을 운영하되 동향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했다.
다른 병원 관계자도 "군의관 등 인력지원을 받지 못했다. 추석 연휴라고 해서 응급실 운영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해용, 이승형, 오수희, 신민재, 손상원, 노승혁, 전창해, 허광무, 임채두, 김준범, 정종호, 김솔, 권준우, 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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