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주가에도 경영진은 ‘그대로’···구멍뚫린 ‘K-밸류업’[경제밥도둑]
7년 전 코스닥에 상장한 닭고기 전문기업 하림의 지주회사 하림지주는 최근 주가가 상장일 종가의 25%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런 경우 주가 부진에 책임이 있는 경영진이 대대적인 쇄신을 단행하거나 경영자를 교체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K-기업에게 이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총수 중심의 가족경영 시스템에서 이사회는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지배주주인 총수일가는 계속된 부진에도 지배권을 내놓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업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한 밸류업 프로그램이 시행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고질적인 국내 증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선 총수일가의 권한을 견제할 수 있는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지만, 당장 생색내기에 용이한 주주 환원 늘리기에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기업 밸류업을 위해선 주주행동주의를 활성화하는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에 주주들은 ‘무력’
국내 기업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가족경영’이다. 기업의 창업주인 총수일가가 소유만 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에 맡기는 사례도 늘고는 있지만, 총수일가가 소유와 경영을 동시에 하는 직접경영체제가 일반적인 형태다. 가족경영 하에서 총수는 인사권을 비롯한 기업의 지배력을 독점한다. 총수를 견제하는 사외이사가 있지만, 총수일가의 지배력이 크다보니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가족경영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뛰어난 총수의 판단 하에 일사불란한 경영과 과감한 투자가 가능한 것은 가족경영체제의 독보적인 장점이다. 전기차 등 지속적으로 미래자동차 사업에 투자해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키워가고 있는 현대차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엔 가족경영이 그대로 독이 된다. 총수가 경영 실패를 거듭해도 제동을 걸 방법이 없어 경영 부진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참호 효과’가 발생한다. 안전한 참호에서 꼼짝하지 않는 것처럼 경영자의 교체가 불가능해 경영진이 경영 부진에도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다.
일례로 2018년 2월 주당 30만원을 넘겼던 이마트 주가는 올해 6월 말 주당 5만5500원까지 내려가며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2018년 약 8조8500억원에 달했던 시가총액은 6년 만에 7조원 넘게 증발해 1조7650억원(지난 6일 기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마트 부문을 총괄하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2018년~2024년 1분기엔 부회장)이 추진한 대규모 인수합병의 성과가 좋지 않은데다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의 부진 등이 겹치며 주가를 끌어내렸다. 지난해 이마트 대표를 교체하는 등 쇄신에 나섰지만 미래 가치를 반영하는 주가는 오히려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주가가 끝없이 하락하다보니 이마트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지난 6일 기준 0.15배로, 주가가 장부가인 순자산가치보다 크게 낮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마트의 PBR은 코스피 상장사 중 하위 9번째다.
게임 ‘리니지’로 유명한 엔씨소프트의 주가도 경영 부진에 가파른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2021년 2월만 해도 주가가 100만원을 넘겼지만, 최근 주가는 18만원대에서 등락하고 있다. 시총도 3년 사이 약 19조원 증발했다. 그럼에도 정 회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자리는 견고하다. 정 회장 일가는 지분의 28.56%, 김 대표는 11.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주가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만 봐야하는 소액주주들이다.
주주 환원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
지배주주가 주가를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마트는 2022년, 엔씨소프트는 올해 주주환원을 명목으로 1000억원 안팎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그러나 자사주 매입의 효과는 일시적인 주가 반등에 그쳤다. 이마트의 주가는 자사주 매입 이후 2년 만에 반토막이 났고, 엔씨소프트 주가도 매입 이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자사주 소각을 하더라도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유통주식 수 감소로 지배주주의 지분이 올라 경영권이 더 견고해지다보니 참호 효과만 강화될 수 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주주환원 움직임이 커지고 있지만, 근본적인 체질 개선 없인 주주환원은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다름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가족경영의 참호효과가 국내 증시의 저평가를 야기하는 대표적인 지배구조 리스크라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능력 있는 경영자를 선임하고 잘 보상해 열심히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 지배구조의 중요한 역할”이라며 “(경영진의) 무능과 비도덕을 감시하고 경영자 선임과 보상 평가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일례로 미국의 패스트푸드 체인 ‘치폴레 멕시칸 그릴’은 식중독 논란 등으로 주가가 바닥을 횡보했지만, 2018년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로 브라이언 니콜(현 스타벅스 CEO)을 선임한 뒤 체질 개선에 성공하며 그의 임기 6년 동안 주가가 약 800% 상승했다. 국내 기업도 주가의 반전을 위해선 이같은 과정이 작동할 수 있도록 총수의 인사권 등을 견제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총수가 자발적으로 인사권을 내려놓을 가능성은 적고,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일감몰아주기 등 이해상충 사안이 아닌 일상적인 경영활동에 대해 책임을 묻긴 쉽지 않다. 때문에 주주 행동주의를 통해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이사회가 구성될 수 있도록 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을 하는 것 등이 현실적인 방법으로 거론된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가족경영에 한계가 드러나고 있고 여러 가지 이슈로 (견제가) 쉽지 않다보니 주주들은 주식을 팔고 떠나는 것”이라며 “가능한 모든 처방을 다 하는 수밖에 없고, 처방이 효과를 볼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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