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겪는 세계[편집실에서]

2024. 9. 11.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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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수 편집장



몇 년 전 일입니다. 회사에서 새벽까지 일하고 택시를 탔습니다. 피곤했는지 목적지를 말하고 잠깐 졸았습니다. 당시 자주 야근을 했던 터라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창밖으로 낯선 풍경이 지나갔습니다. 어둡고 외진 길이었습니다.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택시기사의 뒤통수를 보면서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이런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강도가 수많은 승객 중에 비교적 건장한 체구의 남성을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역시나 기우였습니다. 택시기사가 길을 잘못 든 것뿐이었습니다.

다음날 제가 겪은 ‘촌극’을 제 개인 소셜미디어에 올렸습니다. 비슷한 일을 겪은 여성들이 댓글을 달아줬습니다. 저는 잠깐 긴장하다 끝났지만, 여성들은 훨씬 더 극심한 공포를 겪는다고 했습니다. 택시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일상에서 더 힘이 센 존재, 그러니까 대체로 남성들에게 위협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저는 살면서 거의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여성과 남성은 물리적으로는 같을지언정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여성이 겪는 다른 세계’는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28일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국 사이버 보안업체 시큐리티 히어로의 보고서 ‘2023 딥페이크 현황’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을 보면 딥페이크 성착취물 피해자의 99%는 여성입니다. 그리고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등장하는 개인은 한국인이 53%로 가장 많았는데 두 번째인 미국인(20%)의 2.5배 이상이었습니다. 딥페이크 범죄의 심각성이 공론화된 뒤 많은 여성은 소셜미디어에서 자신의 사진을 삭제하고 부모들은 미성년자 딸이 소셜미디어의 사진을 내리거나 계정을 폐쇄하도록 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이 집 밖에서 범죄의 표적이 될까 걱정하는 사회도 모자라 이제는 온라인에 사진 한 장 마음대로 올릴 수 없는 사회가 됐습니다.

정부는 지난 8월 딥페이크 성범죄 범정부 대응 전담팀(TF)을 꾸렸습니다. 국회도 딥페이크 관련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벌어지는 범죄라 근절이 쉽지 않아 보이지만, 이제라도 정부가 총력 대응을 한다니 다행입니다.

주간경향 이번 호도 딥페이크 문제를 심층적으로 짚어봅니다.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을 앞장서 외치는 여성 활동가들을 만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여성들이 느끼는 분노와 불안, 정부와 사회에 관한 요구를 담았습니다. 규탄 목소리와 별도로 실질적인 딥페이크 규제 방안도 찾아봤습니다. 플랫폼 직접 규제부터 이를 통제하는 기술 연구 상황까지 전해드립니다.

홍진수 편집장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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