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인터뷰]황정민에게 매너리즘은 없다

손정빈 기자 2024. 9. 1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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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만에 속편 '베테랑2'로 돌아온 황정민
"시리즈물 주인공 영광스럽고 행복한 일"
"류승완 감독과 형사 영화 또 하고 싶다"
"악인 연기보다 서도철 연기가 더 어려워"
"내 작품 골라 볼 수 있게 최대한 열심히"
"3편 정해진 거 없어 이번 영화 잘 돼야"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그가 돌아왔다. 안하무인 재벌 3세를 말 그대로 시원하게 때려잡아 관객에게 '사이다'를 선사한 바로 그 형사 서도철이 9년만에 우리를 다시 찾는다. 2000년대를 상징하는 형사가 '공공의 적' 시리즈의 강철중이라면, 2020년대엔 '범죄도시' 시리즈의 마석도가 있을 것이다. 강철중과 마석도 사이 2010년대에 바로 '베테랑'의 서도철이 있다. 강철중만큼 무대뽀는 아니고 마석도만큼 힘이 세진 않다. 그래도 역시나 거침 없이 밀어 붙일줄 알고 맞고만 있지 않고 아프게 때릴 줄도 안다. 게다가 꽤나 스마트하기까지하다. 정의로운 건 당연하다.

까칠한 피부, 헝클어진 머리카락, 대충 걸쳐 입은 점퍼, 걸걸한 입담, 여전히 뛰고 또 뛰는 서도철은 이번엔 연쇄 살인마 '해치'에 맞선다. 해치는 죽어 마땅한 범죄자를 골라 죽이는 인물. 만화에나 나올 법한 자경단이 등장하자 일부 대중은 환호하지만 서도철은 잘라 말한다. "나쁜 살인이 있고 좋은 살인이 있어? 살인은 그냥 살인이야." 그리고 해치를 잡기 위해 달려든다.

2015년 '베테랑'에서 2024년 '베테랑2'(9월13일 공개)로 서도철이 돌아왔듯 배우 황정민(54)도 왔다. 클로즈업이 유독 많은 영화라서 그런지 9년 사이 얼굴에 늘어난 주름이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하지만 관객 심장을 뛰게 만드는 황정민 특유의 에너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같은 캐릭터를 똑같이 연기하는 것도 아니다. 서도철은 정의가 뭔지 다시 한 번 생각하며 한 발 더 나아간다. 그러면서 사이다처럼 시원한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사이다만으로는 정의를 회복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황정민을 만났다. "마치 첫 영화를 하는 것처럼 떨린다"고 말한 그는 "배우가 시리즈물을 갖게 된다는 것, 특히 영화로 시리즈물을 갖게 된다는 건 영광스럽고 행복한 일"이라고 했다.


-9년만에 나온 속편이다. 개봉 기다리는 마음이 어떤가.

"너무 떨린다. 이만큼 했으면 덜 떨리지 않을까 싶은데…영화를 처음 한 사람처럼 떨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내 필모그래피에서 정말 아끼는 작품이다. 음…좀 더 깊이 이야기하자면…1편을 만들게 된 게 내가 '신세계'를 할 때였고, 감독님은 '베를린'을 할 때였다. 그때 저희가 인천에서 엔딩 신(scene)을 찍고 있는데 감독님이 놀러왔다. 그런데 너무 야위었더라. 그 영화 하면서 힘들었나보더라. 우리 둘이 친하니까, 따로 앉아서 얘기했다. 왜 그렇게 스트레스 받고 있냐고. 우리끼리 재밌게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니까 스트레스 받지 말고 정말 즐겁게 하자고. 그렇게 낄낄 대며 이야기하다가 나온 게 '베테랑'이었다. 그걸 정말 복에 겹게 많은 관객이 봐주셨다. 그때 그 에너지를 아직 잘 간직하고 있으니까 이번 영화도 그 에너지를 받아서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

-속편 나오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 이유를 따지자면 감독님 때문이다.(웃음) 농담이고. 1편이 너무 잘 돼다 보니까 우리가 이 작품을 빠르게 추스르지 못했다. 게다가 1편의 그 큰 에너지를 2편으로 이어간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어쨌든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하지 않나. 그리고 감독님은 '베테랑' 다음에 하려는 작품이 있었고, 나 역시 약속한 작품들이 있었다. 그 사이에 '베테랑' 속편을 넣기는 어려웠다."

-1편에서 함께했던 배우들을 다시 만났다. 어땠나.

"뭐라고 말로 설명이 안 된다. 너무 행복했다. 현장에서 각자 옷 입고 나오니까 1편 생각 많이 나더라. 1편을 했으니까, 2편에선 굳이 맞추고 이야기하고 그럴 게 없더라. 각자 알아서 잘 움직이니까. 내 첫 촬영이 국과수 장면이었다. 복도 걸어가는 장면 촬영하려고 의상 입고 딱 들어가니까, 그냥 1편 찍는 바로 그 느낌이었다."

-류승완 감독과 '부당거래'(2010)를 함께하면서 형사 역할을 했고, '베테랑' 시리즈(2015·2024)를 하면서 또 형사를 연기했다. 류 감독과 함께하는 형사물이라는 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감독님 머릿속엔 영화 밖에 없다. 쉴 때도 영화만 생각한다. 웬만한 개봉 영화는 다 본다. 취미가 영화 보는 거다. 삶이 영화다. 감독님의 그런 부분을 존경한다. 이런 사람과 영화 친구, 영화 동료가 된다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다. 감독님과 작품 이야기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한다. 너무 재밌다. 감독님이 또 어떤 형사물을 만들게 될지는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난 꼭 다시 한 번 감독님과 형사물을 같이 하고 싶다."

-류 감독도 속편이 처음이고, 당신도 속편이 처음이다. 시리즈 영화를 찍는 재미는 무엇이었나.

"'베테랑' 할 때 감독님과 '리썰 웨폰'처럼 시리즈가 되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리썰 웨폰' 4편 마지막에 보면 같이 작업했던 배우·스태프가 모두 모여서 찍은 단체 사진이 나온다. 그들이 함께 나이 들어가는 그 모습이 정말 근사했다.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었다. 배우가 시리즈물을, 그것도 영화에서 갖게 된다는 건 필모그래피에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전작이 잘 돼야 다음 작품을 찍을 수 있으니까. 시리즈물을 할 수 있다는 건 영광이고, 행복한 일이다."


-다시 한 번 서도철이 됐다. 류승완 감독은 서도철이 실제 황정민 배우와 많이 닮아 있는 배우라고 했다.

"글쎄. 내가 연기했으니까 당연히 나랑 닮았을 거다. 서도철은 겁이 없는 사람인데, 난 겁이 많다.(웃음) 어쨌든 서도철은 삶을 잘 살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런 부분은 분명 닮았다. 남한테 피해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이번에 서도철을 준비하면서 의견을 많이 냈다고 했다. 류 감독과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눴나.

"1편에서 서도철은 통통 튀는 느낌이 있다. 그 에너지를 2편에서 어떤 식으로 이어가고 변화시켜갈지 얘기한 거다. 정확하게 애기를 하지 않고 하면 실수를 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캐릭터 라인을 잘못 탈 수가 있는 거다. 그런 부분들을 감독님께 물어보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서도철을 만들어 가려고 했다. '베테랑'의 중심은 서도철이다. 아무리 빌런이 날뛰어도 서도철이 극 중심에 뿌리를 정확히 박지 못하면 극 전체가 흔들려 버린다."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나 격한 액션을 소화했다. 멋지다기보다는 참 아파보이더라. 전작에서 9년이 지났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힘든 점은 없었나.

"물론 체력적으로는 더 힘들었다. 농담 삼아서 더 이상 액션 못하겠다는 얘기도 했는데, 사실은 보이는 것만큼 힘들진 않았다. 감독님과 무술감독님이 짜놓은 게 워낙 정교했다. 배우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정확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가령 남산 계단 액션 같은 경우엔 실제 계단이 아니라 아기들 어린이집에 깔아 놓는 매트 같은 재질로 된 계단 위에서 찍었다. 배우들이 다치지 않고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물론 시간이 흐르고 나도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까지는 액션 연기를 무리 없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사에 "힘들다"는 말이 많더라.

"그건 아마도 애드리브였던 것 같다. 실제로 촬영할 때 힘든 게 없지 않으니까. 그리고 전체적인 상황에서 서도철이 할 만한 말이기도 하다.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전작에선 강력범죄수사대가 팀으로서 보여진다면, 이번 작품에선 팀보다는 서도철과 박선우 두 사람이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박선우를 연기한 정해인은 어땠나.

"'서울의 봄'에서도 봤듯이 해인이가 나오면 관객이 무장해제 되지 않나. 이 친구가 가진 묘한 매력이 있다. 그 매력이 '베테랑2'에서 충분히 발산된 것 같다. 게다가 이런 배우가 빌런으로 나오니까, 극에 좋은 에너지를 더해준 것 같다. 해인이는 국화 같다. 그 뽀송뽀송한 얼굴이 박선우를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박선우의 그 묘한 눈빛을 정말 희안하게 잘 표현해줬다."


-서도철은 어쨌든 정의로운 인물이다. 당신은 이처럼 정의로운 사람을 연기하기도 하지만 전두광이나 전요환 같은 극악무도한 캐릭터도 맡은 적이 있다. 굳이 나누자면 어떤 게 더 연기하기 힘든가.

"악한 인물들은 직접 경험해볼 수가 없어서 상상을 해서, 가공을 해서 만들어내게 되고 관객은 그걸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당연히 이것도 어렵다. 그런데 더 어려운 건 서도철 같은 인물이다. 선을 넘으면 오바하는 게 되고, 선에 너무 못 미치지면 밋밋하다. 외줄타기를 해야 한다. 서도철은 내가 정의롭다고 울부짖는 사람이 아니지 않나. 관객이 서도철을 보면서 정의롭다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연기하는 건 정말 어렵다."

-영화·시리즈 뿐만 아니라 연극까지 정말 쉴 틈 없이 일을 한다. 왜 이렇게 하는 건가.

"이게 내 직업이니까 열심히 한다. 나는 광대다. 아이스크림도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고 하는데, 내가 열심히 해서 관객 이 내 작품을 골라 먹는 재미를 주고 싶다. 그게 내 몫이다. 잘할 수 있는 게 이거 밖에 없으니까 열심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열심히 해도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지 않나.

"내가 복 받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배우는 똑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만약에 '베테랑' 같은 작품을 10년 20년 했다고 하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매 작품이 다르고, 캐릭터도 다르고, 함께하는 사람도 다르니까 늘 새롭다. 늘 처음 같다. 다 첫 작품인데 매너리즘에 빠질 수 없다. 매번 새롭고 신기하고 재밌다."


-전작은 역대 한국영화 흥행 순위 5위에 올라 있다. 당시에 속편을 향한 지지가 꽤나 컸던 걸로 기억한다. 게다가 올해 추석엔 사실상 '베테랑2'가 유일한 한국영화다. 흥행에 대한 부담 있을 것 같다.

"음…일단 우린 상품을 잘 만들어서 관객 여러분께 이런 선물이 있다고 내보이는 거고, 관객이 잘 봐주면 너무 좋을 거다. 1편은 1편으로서, 2편은 2편으로서 장점이 분명히 있다. 관객은 그런 장점을 충분히 알아줄 거라고 생각한다. 입소문이 잘 퍼져서 잘 될 거라고 믿고 있다."

-1000만에 대한 기대감은 있나.

"그게 얼마나 어려운 숫자인지 알지 않나.(웃음)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일단 손익분기점 넘기고 나서 숨 좀 돌리고, 그때 가서 생각해보겠다."

-영화 마지막 대목에 3편을 암시한다. 3편에 대한 얘기는 얼마나 진행된 건가.

"정확히 말씀드리겠다. 아직 계획이 없다. 알다시피 속편은 지금 나온 영화가 잘 돼야 나올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떠들어봤자다.(웃음)"

-앞으로 계획은 뭔가.

"지금은 딱히 계획이 없다. 나홍진 감독님 '호프' 촬영 끝내고 지금 후반 작업 중인데, 그거 후시 녹음하고 있다. 꼭 빨리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웃음)"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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