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과 유인촌, 그리고 정의선[광화문]
"사실 저의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 준 저희 대표팀한테 조금 많이 실망을 했다.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과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협회는 모든 것을 다 막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선수를) 방임한다."
지난달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세계랭킹 9위 허빙자오(중국)를 꺾고 28년만에 금메달을 거머쥔 안세영 선수가 경기가 끝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쏟아낸 말이다. '은퇴'를 암시하는 배수진까지 치며 던진 그의 작심 발언은 대한배드민턴협회를 넘어 각 종목별 협회와 대한체육회, 대한축구협회 등 체육계 내부에 곪아있던 문제들을 되짚어보게 하는 트리거로 작용했다. 실제로 관할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진상조사가 시작됐고, 국회에서도 관련 질타가 빗발치고 있다.
'안세영 나비효과'의 포문은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이 열었다.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한사격연맹(이하 연맹)의 부실 운영 실태를 폭로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명주병원) 직원들의 임금 체불 논란으로 자진 사퇴한 신명주 전 회장의 비위 의혹을 제기한 것.
진 의원은 "파리 올림픽에서 최고의 성적을 낸 (사격) 메달리스트들의 포상금이 미지급된 상태로 (이는) 선수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행동"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내부 직원이 성과·포상 등 수천만원을 절차와 절차 승인 없이 지급했다는 점 등의 제보가 들어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 전 회장이 취임했단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며 "연맹 모 사무처장의 채용 관련 비리 의혹이 제기됐고, 개인 비리 의혹을 포함한 예산 부분까지 사무처에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체부도 10일 '안세영 사태'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배드민턴협회에 대한 중간 조사 결과를 내놨다. 배드민턴협회와 김택규 회장의 배임·횡령 등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책임을 피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최근 '셔틀콕 페이백' 의혹으로 불리며 논란이 된 김 회장의 '후원 물품 배임 및 유용' 혐의가 사실상 확인됐단 얘기다. 이 의혹은 배드민턴협회가 국고 지원 사업(승강제리그·유청소년 클럽리그)을 통해 셔틀콕 등을 구매하면서 40%의 물량을 '페이백'으로 받아 불투명하게 집행했다는게 핵심 골자다. 이정우 문체부 체육국장은 "현재까지 파악된 사항만으로도 보조금 관리에 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횡령 및 배임의 가능성도 있고 이미 전 회장에 대한 고발 사건이 수사기관에 접수된 만큼 추가적인 조사를 마치는 대로 수사 참고자료로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체부는 배드민턴협회와 함께 축구팬들의 비난 여론이 거센 축구협회에 대한 감사 결과도 이르면 이달말에 발표할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체육회 운영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들여다본단 방침이다. 앞서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선수들의 피와 땀으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좋은 성적을 낸 걸 체육회가 뺏어가면 안 된다"며 "체육회와 협회·연맹은 선수들 뒷바라지하도록 만든 조직인데 주인 행세를 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축구협회에 대해서도 "현장 감사를 하고 있는데 굉장히 비협조적"이라며 "버틴다고 그냥 두진 않을 것이고 꼭 바로 잡겠다"고 했다.
파리올림픽이 끝난 이후 온 국민의 관심이 체육계의 개혁에 쏠린 만큼 유 장관의 이번 약속은 꼭 지켜져야 한다. 아울러 "체육계 비리와 부패를 뿌리 뽑고 정의와 상식을 세우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일갈한 진 의원의 진심도 반드시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포츠 후원의 모범이자 '협회의 정석'으로 주목받고 있는 대한양궁협회의 정의선 회장(현대차그룹 회장)이 평소 실천해온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운영 원칙은 두고두고 곱씹어볼 만하다.
최석환 정책사회부장 겸 문회부장 neokis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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